공포

9월에 태풍 솔릭 와서 서울에도 비 엄청 내렸잖아.

앞이 안 보이도록 비가 내리는데 한 이틀 정도는 번개까지 쳤어.

그 날 밤은 바깥에서 몇 시간째 5초 10초 간격으로 번개가 번쩍번쩍 하더라고.

주변 건물들이 낮고 한쪽은 개활지라 그런가 소리도 엄청 크게 울렸는데

나는 비오는 소리도 천둥 소리도 좋아해서 새벽 늦게까지 컴퓨터 하고 있었어.


그런데 천둥 소리가 점차 가까워진다 싶더니,

순간 팍 하고 뭔가 전자기기 터지는 소리가 들리면서 깜깜하게 정전이 된 거야.

1, 2초도 안 돼서 다시 불이 켜지긴 했는데,

솔직히 요즘 도시에서 정전 겪을 일이 어디 있겠어. 나도 엄청 어릴 때 이후로 처음이라 좀 당황했거든.


하지만 놀란 건 그것 때문이 아니고, 그 직후에 들린 이상한 소음 때문이었어.

인터폰이 갑자기 커다란 소리로

삐비빅!! 삐비빅!!

경고음을 내더니,

남자도 여자도 아닌 이상한 목소리로

"어으어으어으어으...."

하고, 우는 것 같기도 하고 앓는 것 같기도 하는 소음이

인터폰에서 흘러나오는 거야.


오빠가 놀라서 어리둥절한 표정을 하고 복도로 나왔어. 이게 뭔 소리냐고.

깜깜한 거실에서 인터폰만 빨간 불빛 내면서 계속 커다랗게 삐비빅! 삐비빅! 그리고 감정없는 목소리로 어으어으어으... 를 반복하니까 

뒷골에서 소름이 쫙 돋는, 그 생물적인 거부감 있잖아.

이 소리는 더 듣고 싶지 않다, 하는..


나도 쫄보인데 오빠는 더 막강한 쫄보라서, 둘이 같이 인터폰으로 갔어.

'긴급' '이상전류'라고 빨간 불이 들어와 있더라고. 건물에 벼락이 맞은 거 같았어.

일단 인터폰 전원 내리고 거실 불을 켰어.

혹시 모르니까 내가 두꺼비집 내리자고 제안해서 가스 확인하고 전기를 차단했어.


이제 한밤중에 불 다 끄고 깜깜한 거실에서, 휴대폰 라이트에 의지한 채였지.

그 때 부모님이 타지에 며칠 가 있었고 오빠랑 나 둘이만 있었는데

꼭두새벽에 이상한 소릴 들으니까 소름끼치고 겁나고 기분 나쁘잖아.


밖에는 계속 추적추적 비가 내리고 어두운 곳에서 서로 멍해진 채 라이트로 얼굴을 보고 있으니까

굉장히 현실감이 없더라고..ㅋㅋ

마치 공포게임 플레이하는 것 같은...

쫄보 둘이 쫄아가지고 있는 것도 웃기구.


그래서 내가 웃으면서 인터폰 다시 켜보자고 했어.

전원 껐다 켜면 괜찮아져있지 않을까 해서.

오빠는 싫은 기색이었는데, 난 혹시나 그 소리가

인터폰에 저장되어 있는 비상시 안내 메시지인데, 합선되어 저렇게 들리는 거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어.


그렇잖아? 수화기를 들어야 소리가 나오는 구조인데

수화기는 건드리지도 않았건만..

삐비빅 소리는 그렇다치고 사람 소리가 나오는 건 이상하잖아.

아무튼 켜봤거든.


잠시 조용했다가,

삐비빅!! 삐비빅!!!

다시 그 공포영화 효과음으로 써도 좋을 어으어으..하고 앓는 소리가 터졌어.


솔직히 어둠 속에서 그런 곡성을 들으니까 쫄았지만

일부러 허탈하게 웃었어. 안 그럼 겁나니까ㅠ

웃으면서 캠 켜보자, 밖에 누구 있는 거 아니야?

라고 하니까 오빠가 창백한 얼굴로 따라 웃으면서도 막 소름끼친단 표정을 하면서 

싫다고, 진짜로 누구 있으면 어떡하냐고 질색을 했어.


설마 진짜 뭐가 있을 거 같진 않았어ㅋㅋ

여지껏 심령체험 비스무리한 걸 몇 번 겪긴 했더라도

대놓고 목격한 적은 없으니까. 에이, 설마.. 싶은 마음이었다고 할까.


쫄보 주제에 뭔 용기였는지는 몰라도, 현관 캠이랑 건물 밖 카메라를 눌러 확인해봤지.

당연하게도 현관엔 아무도 없고, 1층도 역시 그냥 텅 비어서 어둑하기만 했어.

숭한 걸 목격하지 않아서 얼마나 다행이야.


소음 때문에 인터폰을 끄고

그렇게 한 오분 정도 말없이 어둠 속에 나란히 앉아있다가,

이제 괜찮겠지 해서 다시 전기 스위치 올리고, 온 집에 불을 다 켰어.

정전과 이상한 소리 때문에 놀랐던 가슴은 좀 진정했지만,

찜찜하고 괜히 소름돋아서.

그 뒤엔 돌연 피곤해져서 불 켠 채로 금방 잠들었어.






다음날 날 밝은 뒤 인터폰을 다시 켜봤어.

이상전류에 불 들어오면서 삐비빅 거리는 건 여전했어.

벼락맞아서 완전 고장났구나, 했지. 인터넷 선도 태웠는지 텔레비전, 인터넷 다 안 되더라고.


오빠가 혹시 인터폰 아예 망가졌는지 보자고 1층 내려가서 벨을 눌렀어.

신호가 와서 수화기를 드니까 캠이 켜지고, 곧 다시 이상 전류에 불이 들어오면서 삐비빅 경고음이 들렸어.


그런데 이상하지.

간밤에 들었던 사람 곡소리는 간데없이 사라진 거야.

원래 없었다는 듯이.


문 열어준 다음에 인터폰 전원을 내렸어.

오빠가 돌아와서 하는 말이 1층 인터폰도 소리가 안 나고 치직거리는 거 보니 건물 전체가 다 망가진 거 같대.

그리고 삐비빅거리는 경고음이,

우리집이 저층인데 1층 건물 밖까지 다 들릴 정도로 시끄러웠다는 거야.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뭔가 희한하더라.

우리 아파트는 방음이 굉장히 안 좋아서 조금만 큰 소리로 얘기하거나 청소기만 돌려도 위아래 층에 다 들려. 

그런데 1층에도 들릴 정도의 소음을, 그것도 한밤중에 이웃이 못 들었을까?

그 정도면 앞집에서 확인하러 올 정도였거든.

게다가 다른 집도 똑같이 전기를 맞았을 텐데, 다른집에서 비상벨이 울리는 건 전혀 듣지 못했어.


며칠 뒤에 반장이랑 마주쳐서 물어보니까, 현관 인터폰을 새로 교체하면서 본인 집도 교환했대.

비오는 날 새벽녘에 번개를 맞아서 비상벨 울리고 깜짝 놀랐다고, 고장났다고...

우리도 기사 불러서 교체했는데 아저씨가 이 동에 회로가 탄 건지 며칠 사이 인터폰 교체를 엄청나게 했다더라고.

알고 보니 다른 층 사람들도 벼락친 날에 인터폰에서 비상벨이 울리고 고장이 났다는 거야.

다른 집들도 다 자기 집만 고장난 줄 알고 있었던 거지.


그 정도의 소음이 모든 집에서 터졌다면..

건물 전체가 시끄럽지 않았을까...?


그리고 기사 아저씨가 말하길 예전 인터폰에 녹음된 안내 메시지같은 건 없대.



당시에는 당황해서 미처 생각하지 못했지만 이상한 점이 계속 떠올랐어.

그 때 거실이 왜 그렇게 어두웠던 걸까?

거실엔 커튼이 없고, 저 앞에 큰 도로가 있어서 조명이 엄청나게 많다 보니 거실은 24시간 책을 읽어도 될 정도로 밝아.

그런데 그날밤은 거실쪽에도, 반대편 주방쪽에서도 가로등 불빛이 하나도 안 들어오고

오빠랑 서로 휴대폰 라이트로 얼굴과 상반신만 보였어.

무서워서 그렇게 느낀 게 아니라, 정말 앞이 안 보여서 라이트에 의지해 손 더듬거리면서 움직였었거든.


또 인터폰 카메라도 그래.

딴집은 어떤지 모르겠는데, 우리집 인터폰은 1층에서 누군가 벨을 누르지 않으면

아무 때나 캠을 켜서 볼 수 없거든.

그런데 어떻게 캠으로 보였던 거지..

그것도 아무도 없어 조명이 켜지지 않은 캄캄한 문 앞을.






인터폰에서 소리난 이야기를 들려주니 부모님도 주변에서도 반신반의했어. 그 소름돋는 소리를 못 들어봤으니까.

솔직히, 그냥 합선되어 기계 소리가 이상하게 흘렀을 뿐인데

쫄보 둘이 그 상황에 쫄았으니까 사람소리로 착각한 걸지도 모르지.



하지만 왜 그 소리는 그 날밤만 들렸던 건지, 왜 다음날 사라진 건지. 어째서 이웃들이 서로 못 들었는지.

왜 그렇게 어두웠고 그 깜깜한 캠 화면은 뭔지.

아직도 모르겠어.

진짜같지가 않고 차라리 착각이었다고 웃어넘기는 편이 나을 정도라서, 찝찝한 경험이야.

  • tory_1 2018.10.13 20:13

    으악 뭐가 나오지도 않는데 은근히 찜찜함을 남기네...

    언뜻 그냥저냥 납득하고 넘어갈 수 있지만 꼼꼼히 따져보면 이상한게 많은 경험이었구나.

  • tory_2 2018.10.13 20:47
    토리글 보니...나 예전에 쓰던 32화음 폰 떨궈서 고장났을때 벨소리가 무슨 공포영화에서 나올법한 소리가 나서...음산한 종소리랑 지지직 거리는 기계음이랑 삐-하는 소리? 그래서 반 애들이 나톨꺼 핸드폰에 귀신들렸다고 뒤집어졌던 기억이 난다...
  • tory_3 2018.10.14 11:04
    아 개무섭다....진짜ㅠㅠ 뭔가 묘하게 찝찝한 그 느낌ㅠㅠ
  • tory_4 2018.10.14 12:16
    ㅠㅠㅠㅠㅠㅠㅇㅇ응아아아아ㅏㅏㅏ 너무 무섭다ㅠㅠㅠㅠㅠ
  • tory_5 2018.10.14 15:01
    삭제된 댓글입니다. (삭제일시: 2019/11/13 11:27:52)
  • tory_6 2018.10.14 15:19
    아니ㅠㅠㅠㅠㅠㅠ초반까지는 담담하게 읽었는뎈ㅋㅋ뒤로 갈 수록 너무 무섭자나ㅠㅠㅠㅠ
  • tory_7 2018.10.14 19:29
    흐어...정말 무서웠겠다 ㅠㅠ소름
  • tory_8 2018.10.14 20:32
    ㅜㅜㅜㅠㅠㅠㅠ무서워 토리야아
  • tory_9 2018.10.15 09:57

    기계라서 뭐 ㅎㅎ

  • tory_10 2018.10.15 10:05

    헐...ㅠㅠ 넘나 무서워ㅠㅠㅠㅠㅠㅠ

  • tory_11 2018.10.16 08:50

    와 진짜 무서웠을 거 같아..

  • tory_12 2018.10.16 10:29

    음 나머지는 다 설명가능할 것 같은데. 번개가 치면서 아파트였다면 아파트 공용 변전기가 나갔으면 아파트 전체가 정전일테니 일단 어두울거고 비오고 번개치는 날은 새벽이라는 시간대가 겹치면 극단적으로 통행량이 적을 걸. 아니면 그 시간대에 전봇대가 당했으면 그 구역 전체가 다 정전 상태였을지도(나 학교 다닐때는 전봇대가 쓰러지면서 학교가 있는 블록 전체가 정전 ㅋㅋㅋ)

    소리 같은 건 자기네 집 소음이 너무 커서 딴 집의 소음이 들릴 여지가 없었다 로 보면 되지 않을까. 당황하기도 했고 말이야.

    근데 캠 커진거랑 벨소리에 맞춰 신음소리는 신기하다.  원래부터 안되는 거면 어떻게 되고 안되고가 되질 않는데 말이야

  • tory_13 2018.10.16 18:47
    소리는 정말 소름이지만 불빛은 이해감 9월에 연휴가 길었잖아 울집앞도 불빛땜에 훤한 편인데 비오거나 연휴기간엔 불빛이 적어져서 어두움
  • tory_14 2018.10.16 20:09

    귀신이 번개 맞았나부다............그래서 곡소리 내면서 톨 집에 찾아온 거 아닐까.....?

  • W 2018.10.17 17:11

    아잇ㅋㅋㅋ 그럴지도 몰라! 문안열어줄거야 ㅠ

  • tory_15 2018.10.17 08:17
    삭제된 댓글입니다. (삭제일시: 2021/01/19 18:59:21)
  • tory_16 2018.10.17 15:13
    핵쫄보 톨이라서 상상했다가 너무 무서워.......
  • W 2018.10.17 17:11

    그게 참 이상한 게 여기 도로가 고속도로랑 이어지는 데라 24시간 통행량이 많고 반년 전부턴가 증축공사 한다고 가로등이 더 늘어났어. 조명이 꺼질 일은 없음.. 주변에서 다들 별 거 아니라는 듯이 말하니까 나도 이젠 찜찜하기만 하지 무섭진 않아 ㅋㅋㅋ 하지만 그 분위기에 그 소리 듣는 건 과학적 설명을 차치하고 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네ㅜㅠ

  • tory_18 2018.10.29 20:50

    끼야아아아아 무서워퓨ㅠㅍㅍㅍㅍ퓨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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