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
누군가 힘없는 걸음걸이로 다가온다.

가까워지자 여성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조금 더 가까워져 얼굴을 확인할 수 있는 거리까지 다가오자, 그 여자가 겨우 20살 남짓한 나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여자가 난간을 붙잡는 순간, 나는 이번에도 나의 예상이 빗나가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그만 둬요!"

여자가 비명을 지르며 주저앉았다. 당연하다. 아무도 없던 곳에 내가 갑자기 불쑥 나타났으니까. 무엇보다 그는 다리에서 떨어져 자살하기로 마음먹은 사람이다. 정신이 몹시 불안정하고 예민한 상태일 것이다.

"도, 도대체 무슨..."

나는 대답대신 내 발을 가리켰다. 아니, '발이 있어야 하는 부분'을 가리켰다. 여자가 겁에 질려 눈물이 그렁그렁해졌다.

"진정해요. 적어도 당신을 해치려고 나타난 건 아니니까. 오히려 그 반대예요"

나는 숨을 훅 들이쉬었다.(폐가 없는데 이런 표현을 써도 되나?) 지금부터가 어려운 부분이다. 처음 보는 사람을 설득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당신, 여기 죽으려고 온 것 맞죠?왜 죽으려고 하는 거예요?"

여자를 어르고 달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아버지가 폭력을 휘두르고 학교에서는 왕따를 당했고 그래도 대학에 가서 새 인생을 살아보려고 했는데 친구를 잘못 사귀어 어느새 사이비종교에 빠져 빚까지 수천만원을 졌다는 것이다.

"제 인생은...바꿀 수 없어요. 그냥 죽어서 편해지고 싶어요."

"아뇨,바꿀 수 있어요. 가족과는 인연을 끊으면 돼요. 학창시절의 상처도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치유할 수 있어요. 종교단체도 빠져나오면 되고, 돈도 일해서 갚거나 개인파산신청이라도 하면 돼요. 물론 힘든 과정이겠지만, 전부 되돌릴 방법이 있어요.그렇지만 딱 하나 되돌릴 수 없는 게 있어요. 그게 뭔 줄 알아요?"

"뭔데요?"

"바로 죽는 거예요. 살아있다면 희망은 언제나 있지만,죽어버리면 아무것도 되돌릴 수 없어요. 나는 이 말을 해주고 싶어서 여기 남아있는 거예요."

"그런..."

나는 여자를 버스정류장까지 바래다 주었다. 돈을 아껴야 하니 택시는 타지 않겠다고 했다. 성공이다. 여자는 이제 다시 여기 오지 않을 것이다. 수많은 자살시도자들을 저지해본 나의 경험에 입각한 결론이다.

여자를 배웅하고 오자 동료들이 반겨주었다.

"성공했어?"

"그럼!내가 누군데!너희들은 전부 나한테 감사해야 해."

"그렇지,네가 없었다면 우리가 이렇게 편하게 지낼 수 없지.어쩌면 다른 곳으로 쫓겨났을 수도 있어!"

이곳은 자살명소. 그냥 놔뒀다가는 귀신들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불어난다. 귀신들에게도 자신만의 공간이 필요하다.

"멍청한 것들! 죽으니까 이렇게 좋은데! 돈 없어도 돼, 상사 없어, 아프지도 않아!왜 아득바득 살아있으려고 하는 거야?"

그 여자는 스물이 갓 넘었으니 특별한 일이 없다면 최소한 40년은 살겠지. 가난하고 고통스러운 삶을. 진짜 희망을 눈 앞에 두고서 가망없는 가짜 희망을 쫓으며 허덕이며 살 것이다.

신은 자비롭다. 누구에게든, 인생에는 언제나 희망이 있다. 영원한 안식이라는 희망이
  • tory_1 2021.07.18 09:38
    어디로도 가지 못 한 저 영혼들에게 그들이 생각하는 진짜 희망-안식이 정말 주어진 걸까
  • tory_2 2021.07.20 17:08
    와 글 잘썼다 사고의 전환이 재밌어!!!!!!!!!!!
  • tory_3 2021.07.29 00:09
    쭉쭉 읽다가 갑자기 생각지도 못한 반전이네!! 흥미롭게 잘 읽었어
  • tory_4 2021.08.02 23:18
    삭제된 댓글입니다. (삭제일시: 2021/09/22 13:3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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