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
머리에 쏴주길 바래. 관자놀이에 대고 살짝 아래쪽을 향해 쏴줘. 
총알이 내 측두엽 해마를 뚫기 전까지 가장 짧은 경로로 내 머리를 뚫고 지나갔으면 해. 
내가 운이 좋다면, 총탄이 내 두개골을 찢어발기는 느낌을 몇 세기 정도만 느낄 수 있을 거야.

끔찍하게 들릴 수 있겠지만, 당신은 나한테 어마어마한 은혜를 베푸는 거야.
가능한 빠르게 머리에 총을 맞아 죽는 게, 다른 대안보다 훨씬 나은 일이니까.

내 불행은 만 년 전부터 시작했어. 오늘 아침 10시 15분 부터 였지. 
난 생동성 실험에 자원해서 용돈을 좀 벌려 했어. 
난 소위 말하는 "건강한 실험군" 이었고, 개발중인 약을 먹어서 어떤 부작용이 있는지 확인하는 역할을 맡았지. 
이게 신장에 영향을 주는 약이기 때문에, 몇 번은 혈압이나 콜레스테롤에 영향을 받긴 했어. 
오늘 아침엔 그들은 내가 복용하게 될 약이 향정신성 약물이고, 뇌 기능을 가속하는 작용을 하게 될 거라고 했지.

긍정적으로 생각해 보자면, 지금까지 먹은 어떤 약도 나에게 직접적인 어떤 영향을 미치진 못했어. 
달리 말하자면 그 어떤 약도 나에게 끔찍한 통증을 유발하거나 맛이 가게 하거나 그러진 않았다는 거야. 
어쩌면, 난 지금까지 매번 플라시보 그룹에 포함되었을 수도 있지만, 그 어느 약품도 나에게 영향을 주진 못했어.

오늘 먹은 약은 달랐어. 이 씹것이 효과가 있었던 거야. 
그들은 10시 15분에 나에게 약을 투여했고, 몇 가지 추가적인 테스트를 하기 전에 대기실에 가서 좀 쉬고 있으라고 말했어. 
연구소 조수는 "한 30분만 기다리시면 될 거에요" 라고 말했지. 

난 대기실 쇼파에 몸을 던지곤 커피 테이블 위에 놓여있던 심리학 오늘 이라는 잡지에 기사를 몇 개 읽었어. 
그 잡지를 다 읽을 때 까지 부르지 않길래, 난 뉴스 잡지를 꺼내서 처음부터 끝까지 읽었어. 
그 다음엔 고전 미국 과학 역사서도 읽었고. 대체 뭐가 이렇게 오래 걸리는 거람?

난 천천히 고개를 돌려서 벽에 걸린 시계를 보았어. 10시 23분 밖에 되지 않았지. 
난 잡지 3권을 8분 만에 모두 읽었던 거야. 난 이때, 아 오늘 하루가 아주 험난하겠다고 생각했어.
그리고 그 예상은 적중했지.

대기실엔 자그마한 책장이 있었고, 표지가 닳아있는 책이 몇 권 꽂혀 있었어. 
일어나서 책이 있는 곳으로 걸어가려 했을 때, 난 내 다리가 둔하게 움직이고 있다고 느꼈어. 
힘이 빠진 느낌이 아니었어. 그저 느리게 움직인다고 느껴진 거였어. 
쇼파에서 일어나는데 거의 1분이 걸린 것 같았고, 책장으로 두 걸음 걸어가는 동안 또다시 1분은 족히 걸린 것 같았어.

난 오래 된 책들을 살펴보고 그 중에서 모비딕을 꺼내 들었어. 
내 팔도 다리와 같은 문제가 생긴 것 같더라. 팔을 앞으로 뻗어 책을 집어 드는데 한참이 걸리는 거야. 
심지어 내 손이 책등에 닿기 까지 기다리는 게 지루하게 느껴질 정도였어. 

그리곤 쇼파에 다가가 우주 비행사들이 낮은 중력을 받을 때 떨어지는 걸 
연상 되게 하는 슬로우 모션으로 털썩 하고 앉았어. 난 모비딕을 펼치고(슬로우 모션으로) 읽기 시작했어. 
난 '날 이슈마엘이라 불러다오' 에서 시작해서 
아하브 선장이 파이프를 바다에 던지는 장면까지(바로 그 챕터 30이다) 읽었을 때, 그들이 날 불렀어.



"지금 기분이 어떠세요?" 연구 조수가 나에게 묻더라.

"느리게 느껴져요" 내가 말했어.

"사실, 반대에요. 당신이 너무 빠르게 인식하고 있어서, 다른 모든 게 느리게 느껴지는 거지요"

"하지만, 제 다리와, 팔이, 슬로우 모션처럼 움직여요"

"당신의 뇌가 너무 빠르기 때문에, 몸이 느리게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는 거에요. 
정상보다 열 배에서 스무 배 정도 빠르게 돌아가고 있지요. 당신은 가속된 상태로 사고하고 현실은 인지하고 있어요. 
하지만 당신의 몸은 여전히 생화학적 법칙에 지배를 받고 있죠.
솔직히, 지금 당신은 보통 사람보다 훨씬 빠르게 움직이고 있어요. " 그녀는 조깅 하는 동작을 취해 보였다. 

"하지만 지금은 뇌가 너무 빠르게 돌아가고 있기 때문에, 
당신의 빠른 움직임 조차도 당신에겐 아주 느리게 인식되는 거죠"

난 내가 슬로우 모션으로 대기실 쇼파에 앉던 모습을 떠올렸어. 
하지만 근육들이 느려졌다 해도, 내 몸은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 중력에 반응해야 할 터. 
하지만 대기실에서, 난 슬로우 모션으로 떨어지기도 했었어. 근육이 느리게 반응한다는 말은, 
왜 중력이 약한 것처럼 느껴지는지 설명이 되지 않잖아. 

내 뇌가 10배로 가속되었다 했지. 내가 15분 만에 잡지 세 권과 모비딕 30챕터를 읽을 수 있었던 이유였어.

그들은 나에게 일련의 테스트를 시켜보았어. 육체적 테스트는 재미있었어. 
그들은 나에게 3개의 공으로 저글링을 해보라고 했지. 
그 다음엔 네 게로, 그 다음엔 여섯 개로. 난 여섯 개의 공으로 저글링을 하는데 아무런 부담도 느끼지 않았어. 
공들은 너무나 느리게 움직이며 공중에 떠 있는 채로 보였거든. 

솔직히, 조금 지루하기도 했어. 
다음 공이 아치를 그리며 내려와 내가 잡을 수 있기까지(나의 슬로우-모션 손으로 말야), 
그리고 다시 공중으로 던져 올리는 과정이 너무나 길었거든. 

그들은 나에게 콘푸로스트 씨리얼 조각들을 던졌고, 난 그것들을 공중에서 젓가락으로 잡아내었어. 
또, 내 앞에서 동전 한 움큼을 떨어뜨리고, 그것들이 땅에 떨어지기 전까지 모두 합쳐서 얼마인지 더하는 테스트도 했어.

인지 테스트는 그보다 좀 덜 재미있었어. 하지만 지금 내 상황에 대해 이해를 더해주었지. 
워드 써치에서 50단어 찾기(3초만에 찾았어). 포스터 크기의 종이에 그려진 복잡한 미로 풀기(2초만에 찾았지). 
1초에 열 개의 이미지가 지나가는 슬라이드 쇼를 본 뒤, 
각 이미지에 대한 아주 세세한 질문에 답하기도 했어(95% 정답률 이었어).

그들은 내가 지금 250 노프 점수 정도를 보이고 있다고 했어. 
이건, 확실히 초능력자들의 영역에 들어간 사고 속도라는 거야.

그리고 그들은 날 집에 돌려 보냈어. "약효는 몇 시간 정도 지속될 거에요" 그들이 말했지. 
"당신에게는 며칠처럼 느껴지겠죠. 약효가 남아있는 동안 밀려서 못 해왔던 걸 한번 해보시는 게 어때요? 
초고속 상태일 때 밀린 이메일을 확인하거나 업무를 마쳐버리는 거에요!"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끔찍했어. 실제 시간대의 세상에선 지하철로 세 정거장 밖에 떨어지지 않은 거리인데다, 
35분밖에 걸리지 않는 길이었지. 하지만 약으로 초 가속된 내 시간 감각으로는, 마치 며칠이나 걸리는 것처럼 느껴졌어. 

단순히 제약 연구실에서 나와 엘리베이터로 걸어가는 것만 해도 한 시간 쯤 걸렸다고 느껴졌어. 
난 사무실에서부터 전속력으로 질주했어. 내 다리가 더 빨리 움직였으면 하는 바램에서 말야. 
하지만, 생화학의 법칙이 마치 날 죄수처럼 옭아맸지. 
내 뇌는 엄청나게 가속되어 있었지만, 내 다리를 더 빠르게 움직일 수는 없었어.

몸과 정신의 거대한 인지 부조화는 내가 언제 속도를 줄이고, 돌고, 
몸을 회전 시켜야 할 지 판단하는 걸 엄청나게 어렵게 만들었어. 
난 바보처럼 과장된 동작으로 커다랗게 슬로우 모션을 취하며 돌아야 했어. 

그러고도 내 속도를 잘못 판단했던 난 엘리베이터가 있는 벽에 꽤나 빠른 속도로 들이받아 버렸지. 
심지어 벽이 내게 다가오는 걸 보고 있었는데도, 난 엘리베이터 버튼으로 뻗은 내 손가락을 움직일 수 없었고, 
벽에 그대로 갖다 박은거야. 무지 아팠어. 고통은 격렬했지. 만약 내 뇌가 정상적인 속도였다면, 
이런 아픔은 한 30초면 사라졌겠지만, 이 가속된 상태에서, 
내 뇌는 이 극심한 고통을 거의 30분, 아니 45분 동안이나 지속되게 느꼈지.

엘리베이터를 타는 건 더더욱 끔찍했어. 
단순히 7층을 내려가는 동안, 난 4시간이나 5시간 쯤 걸린다고 느꼈으니까. 
더욱이 엘리베이터 내부의 인테리어 말고는 아무것도 볼 게 없는 곳에서 말이지.

난 지하철 역으로 질주했어. 인정할게. 이 순간 만큼은 조금 재미있었다고 말야. 
내 몸이, 내가 느끼기에, 엄청나게 느리게 움직이고 있었음에도, 난 아주 신중하게 내 발을 어디에 딛을 지, 
어떻게 팔을 흔들지, 몸을 언제 돌릴지  판단을 내릴 수 있었어. 

내 몸보다 열 두 배는 빠른 내 뇌에 적응하는데 고작 한, 두 블럭 뛰어가는 시간이면 충분했지. 
그 다음은 거의 나는 듯 달려갔어. 건널목의 인파들 사이로 몸을 이리저리 비틀고 요리조리 피하면서, 
달리는 차를 딱 몇 인치 차이로(그 말은, 나에게 몇 분의 시간은 있다는 뜻이지) 피하면서 말야.

난, 내 시간 기준으로, 한 시간 정도 걸려서 지하철로 내려갔어. 그리고 플랫폼을 향해 달려갔지. 
그리고 레드 라인 지하철이 들어오기까지 6분의 끝없이 지루한 시간을 견뎌냈어. 
엘리베이터 안에 있는 것 보다 지하철 플랫폼엔 볼게 훨씬 많긴 했지만, 
그래도 무지하게 지루한 기다림이었지. 연구실에서 모비딕 책이라도 훔쳐올걸 그랬어.

레드 라인 지하철이 슬로우 모션으로 지하철 역 안으로 포효하며 들어왔어. 
보통이라면 높은 소리의 끼이익 하는 브레이크 소리가 들려야 할 텐데,
이 가속된 청력으로는 아주 낮은, 그러니까 튜바가 솔로로 연주하는 듯한 소리로 바뀌어 들렸지.

보통 소리보다 세 옥타브 낮게 들리는 건 지하철 열차가 내는 끼이익 소리만이 아니었어. 
모든 소리가 가 청범위 안에 아슬아슬하게 들어올 정도로 낮게 들렸지. 사람 목소리는 들리지도 않어. 
내 귀가 들을 수 있는 주파수 범위보다 한참 아래로 내려가 버렸지.

열차 안에서 울고 있는 아기 소리는 들리더라 - 걔가 우는 소리는 마치 고래 울음소리처럼 들렸어. 
자동차 경적하고 트럭이 과속방지턱에서 위 아래로 삐걱거리는 소리가 느리고 탁한, 
멀리서 들리는 천둥소리처럼 들렸지.

연구실에 있을 때를 돌이켜 보니, 그때까지만 해도 난 연구원들과 대화는 할 수 있는 수준이었단 말야. 
그런데 지금은 그 누구와 말로 대화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워 졌어. 약효가 지금까지도 계속 증폭되고 있었던 거였어.

난 그 씨발 것 같은 레드 라인 지하철에서 며칠을 보냈어. 며칠이나 말야. 
고래 울음 소리같은 아기의 비명 소리와 튜바 소리같은 브레이크 소리를 들으면서.
보통 사람들의 목소리는 내가 들을 수 있는 주파수보다 훨씬 아래로 내려가 버렸지만, 후각은 영향을 받지 않은 듯 했어. 
그 수많은 사람들의 몸에서 나는 냄새와 열차 브레이크가 마모 되면서 나는 냄새, 
끔찍한 방귀들과 다른 악취들이 객차 안에서 소용돌이치는데, 도저히 적응할 수 없더라.

난 마침내 아파트에 도착했어. 문을 열어 젖히고 현관으로 뛰어들었지. 
너무나 느려서, 아주 느린 강물이 흐르는 속도처럼 느껴지는, 내 최고 속력으로 말야.

난 집에 도착하니 좀 안심이 되더라고. 최소한, 난 뭔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었거든.
난 내가 읽고 있던 책을 집어 들었어, '백 년간의 고독' 이었어. 그리고 그걸 마저 다 읽었어. 
비록 너무 빠른 속도로 페이지를 넘기는 바람에 수십 장을 찢어 먹었지만 말야. 
책을 읽는 것 보단 페이지를 넘기는데 대부분의 시간을 쓴 것처럼 느껴졌지만 뭐. 집에 도착한 지 3분이 지나 있었어.

난 인터넷을 해보려 했어(세상에, 요즘 컴퓨터가 이렇게 느리게 켜지다니) 
하지만 인터넷 속도가 너무나 절망적으로 느렸어. 새로운 페이지가 열리는데 몇 시간이(나한테는) 걸렸고, 
그 페이지를 다 읽는 덴 1초도 걸리지 않았어. 
내 뉴스피드에 있던 수 백 개의 기사들을 모조리 읽는데 또 다른 3분이 걸렸지.

난 읽으려고 쌓아 놨던 책들을 펼쳐 들고 두 권을 끝냈어. 4분이 더 가더라.

난 약효가 지속되는 시간을 잠으로 때워버리기로 했어. 
불행히도, 내 뇌에서 인식을 담당하는 어떤 부분, 그러니까 약으로 인해서 엄청나게 가속되어 버린 그 부분은, 
잠을 총괄하는 부분 하고는 다른 부위인 것 같았어. 내가 인지하기로 난 며칠 동안 깨어있었지만, 
내 뇌는 지금 이 순간이 아직 오늘 오후 1시 25분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어. 잠들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거야.

그럼에도, 난 잠들려고 노력했어. 난 침실로 걸어가(거기까지 걸어 가는 데만 45분이 걸렸어) 
침대 속으로 들어갔어(천천히 떨어지는 깃털처럼 매트리스에 누웠지). 
난 눈을 감고 거기에 몇 시간이고 누워있었어(현실 시간으로는 10분이 지나있었어). 
그리곤 포기했어. 잠이 오지 않았어. 난 며칠 아니, 몇 주처럼 느껴질 슬로우 모션의 지옥에 갇힌 거야.



그래서 난 수면제를 먹었어.

내가 삼킨 물과 약이 내 식도를 타고 내려가는 느낌은 아주 구역질이 나왔어. 
식도를 따라 구불구불 마치 달팽이처럼 내려가며 내 호흡을 막았어.

난 책을 읽었어. 10분이 지났어. 또 한 권을 집었어. 수면제를 먹은 지 18분이 지났어. 
난 내가 처한 상황이 너무나 끔찍해서 반대편 벽을 향해 책을 집어 던져 버렸어. 
책은 천천히 발레하듯 돌면서 공중을 날아갔어, 마치 산들바람에 잎사귀가 나풀거리듯 말야. 

그리고 천천히, 희미한 울림을 내며 - 내가 이 몇 시간 만에 들은 유일한 소리야 - 
벽에 부딪히곤, 수영장에서 샌들이 가라앉는 것처럼 땅에 떨어졌어.

내가 약을 먹은 이후에, 중력의 법칙은 변한 게 없었어. 물리 법칙도 마찬가지였지. 
그저 시간에 대한 내 인지 능력이 맛이 가 버린 거야. 그 말은, 물건들이 땅에 떨어지는 속도를 재 보면서, 
약효가 어느 정도 되는지 대충 알아보는 게 가능하다는 소리였어. 
책이 벽에 부딪히고 땅에 떨어지는 속도를 볼 때, 난 아직 까지도, 약효가 강해지고 있다고 짐작했어.

난 잡지를 펼처 들었고, TV를 틀었지 - 난 영상이 마치 슬라이드 쇼처럼 한 프레임씩 지나가는 걸 똑똑하게 볼 수 있었어. 
너무나 실망해서, 난 다시 TV를 꺼버렸어.

난 조금 더 많이 독서를 해보려 했어. '처칠의 영어를 쓰는 사람들의 역사' 시리즈의 첫 두 권을 읽었지. 
가볍게 읽을만한 책은 아니었어. 솔직히, 난 그 책을 정말 싫어했어. 
하지만 책장까지 걸어가는 시간이 너무나 지루할 게 뻔했기 때문에, 그냥 처칠의 책을 읽는 게 더 낫다고 생각했어. 
최소한 더 나쁘진 않을 거란 말이야.

이제 내가 수면제를 먹은 지 35분이 지나고 있었어. 난 쇼파에 드러누워 눈을 감았어.
시간이 흘렀지. 난 깊게 숨을 들이마셨어 - 몇 시간이 걸리는 작업이었지. 
시간이 흘렀고, 난 다시 몇 시간에 걸쳐 숨을 내쉬었어.

도저히. 잠이. 오지. 않았어.


새로운 계획이 필요했어. 난 나에게 약을 준 사람들의 연구실로 돌아가려 마음먹었어. 
어쩌면, 이 약의 반대 작용을 하는 약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르잖아. 
아니면, 최소한, 약효가 다 될 때 까지 날 기절이라도 시켜 주겠지.

난 내가 낼 수 있는 최고의 속도로 아파트를 빠져 나왔어 - 내가 인지하는 시간으로는 몇 시간이 걸렸지. 
심지어 난 문을 잠그지도 않았어. 그러기엔 너무나 많은 시간이 걸릴걸 알고 있었거든.

계단을 내려가서 (달려간다면, 엘리베이터보다 더 빨리 내려갈 수 있어), 현관을 통과해서, 거리로 나왔어. 
이 간단한 동작이 사무실에서 하루 종일 보내는 것처럼 느껴졌어.

거리에 지나다니는 사람들 사이를 현란하게 피하면서 난 질주했어. 
그들에겐 초인적인 민첩성을 가진 사람으로 보였겠지. 그리고 지하철로 내려가는 첫 번째 층계참으로 향했어. 
첫 번째 계단을 내려왔어. 거의 한 시간 쯤 걸렸지. 그리고 두 번째 층계참을 마주했어. 
그리고 그 때 수면제의 약효가 내 몸을 덮쳤어.

수면제는 날 졸리게 만들지 않았어. 
전혀. 그 대신, 수면제는 내가 오늘 아침에 먹어버린 실험용 약과 끔찍한 상호작용을 했지. 
난 두 번째 층계참을 뛰어 내려가고 있었어, 슬로우 모션으로, 하지만 최소한 인지할 수 있는 진행을 하면서 말야. 
그리고 그 순간, 둥 - 모든 것이 멈춰버렸어.

둔중한 울림으로 들려오던 거리와 지하철의 소음이 멎고, 내가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완벽한 정적이 찾아왔어.
아래로 달려 내려가는 내 동작은 완벽하게 정지했어. 
수면제가 약효를 발휘하기 전에, 시간에 대한 내 감각은 현실에 비해 몇 백 배 정도 느리게 흘러가고 있었지. 

하지만 수면제가 돌기 시작한 지금, 내 시간은 현실에 비해 수천 배 느리게 흘러가기 시작했어. 
1초 1초가, 나에겐 며칠로 느껴졌지. 내 시야 안의, 한 지점에서 다른 지점으로 눈의 초점을 맞추는 것도 
끔찍하게 느려 터진 컴퓨터의 마우스 포인터를 움직이는 것처럼 느리게 움직였어.

오후 내내, 난 내 지각 능력이 몸보다 몇 백 배 빠를 때 어떻게 걷고, 달리고, 뛰어오르는지 몸으로 체득했어. 
하지만 수면제가 초래한 그 수십 배나 증폭된 감각 속에선, 내 몸을 통제하는 게 불가능에 가까웠어. 
난 계단에서 굴러 넘어졌어. 걷는 중간에 내가 멈춰버린 거였지만, 내 근육을 통제하는 건 불가능했어.

난 내 발에게 앞으로 가라고 몇 시간이고 명령한 뒤에, 
또 그 다음 몇 시간 동안 뒤로 움직여서 다음 스텝을 준비하도록 했어. 
몇 시간 동안 발목의 각도를 조정했고, 뭔가 느낌이 이상할 땐, 다시 몇 시간 동안 각도를 재 조정하려 했어.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난 그 다음 한 걸음에서, 발목을 접지르고 말았어. 
고통은, 느려진 와중에도, 전혀 줄어들지 않았어. 고통은 틀어진 발목에서 몇 시간에 걸쳐 점점 더 커져 갔어. 
귀에 연결된 신경하고, 고통을 담당하는 신경하고 분명 다른 방식으로 작동하는 거야. 

음파 에너지는 몇 백 배 확대된 이후에, 결국 인지하지 못하게 사라져 버렸지. 
하지만 고통은 가속화된 내 지각 능력에 의해 전혀 줄어들지 않고, 내 뇌로 흘러 들어왔어. 
비틀린 발목에 몇 시간에 걸쳐 내 체중이 실렸고, 그 다음 몇 시간 동안 고통은 계속해서 끊임없이 증폭되었지.

난 앞으로 굴렀어. 이 가속된 정신은 느려 터진 내 몸에 대한 통제력을 완전히 상실해 버렸어. 
난 며칠에 걸쳐 앞으로 고꾸라졌어. 그 시간 동안 난 내 상체를 어떻게든 틀어서, 
내 머리가 가장 먼저 땅에 부딪히지 않게 하기 위해 애썼지. 마침내 난 오른쪽 어깨로 땅에 떨어졌어. 

처음 순간에, 충격은 알아 차리지도 못 할 정도였어. 그 다음에, 난 땅에 닿은 오른쪽 어깨에 아주 희미한 압력을 느꼈지. 
그 압력은 계속해서 커져서, 고통이 되었고, 그래도 멈추지 않고 몇 시간에 걸쳐 계속해서 커졌어. 
내 어깨는 결국 버티지 못하고, 탈구 되어 끝없는 고통을 나에게 안겨 주었어.

며칠이 걸려서 난 땅에 구겨지며, 천장을 바라본 상태로 멈출 수 있었어. 
어깨에서 느껴지는 고통은 아직 까지 방금 다친 심한 상처처럼 생생하게 커지고 있었어. 
추락하는 동안 난 생각할 시간을 아주 충분히 가질 수 있었어. 
매 초가 나에게 몇 일 처럼 느껴진다면, 현실 세계에서 매 분은 나에게 몇 년 처럼 느껴질거야. 
약효가 두, 세 시간 만에 사라진다 해도, 이 악몽은 몇 세기 동안 계속되겠지.

땅에 쳐 박힐 때 쯤, 난 계획을 하나 세웠어. 어떻게든 지하철 플랫폼으로 내려가서,
기차가 들어올 때 몸을 던져서 자살하는 거야.

난 손과 발을 움직였어. 탈구된 어깨가 휴식을 달라고 며칠 동안 비명을 질러 댔어. 
난 몸을 돌리는 타이밍을 잘 못 판단해서 다시 한 번 등 쪽으로 자빠졌어. 
내 몸이 풀이 자라는 속도보다 느리게 움직일 때, 어떻게 하면 일어설 수 있는지 연구하면서 
난 다시 일어나 보려 했고, 이번엔 얼굴부터 땅에 박혔지. 몇 주 동안 노력한 결과, 난 드디어 성공했어. 
손과 무릎을 땅에 댄 채로, 난 엎드릴 수 있었어.

사지로 가만히 엎드려 있는 게 이 정도로 어렵다면, 도대체 걷거나 뛰는 건 어느 정도일지 감도 잡히지 않았어.
그래서 난 기어가기 시작했어. 지하철 터널을 기어서 지나갔다구. 
주변 사람들의 멍청이를 보는 시선이 날 몇 주 동안이나 부끄럽게 했어. 
난 개찰구를 통과해서 에스컬레이터에 도착했어.

에스컬레이터는 러시아워의 인파로 넘쳐 흐를 지경이었어. 
그들은 바다에 빙하가 녹는 정도의 속도로 움직이고 있었어. 난 그 군중을 기어가는 자세로 끝없이 올려다 보았어. 
알림 화면에선, 다음 기차가 20분 안에는 오지 않을 거라고 나와 있었어. 
20분은 나에게 수십 년과 마찬가지였어. 난 지하철 플랫폼에서, 죽기를 기다리면서 1년을 기다려야 했어.

난 에스컬레이터를 기어서 빠져나왔어. 그 수많은 경멸과 조롱의 시선을 견뎌내면서 말야. 
그리고 몇 피트 옆에 있는 콘크리트 벤치에 올라가 웅크렸어. 
어깨의 고통을 최대한 줄일 수 있는 자세를 찾으려 노력하면서. 
그 다음 순간, 상황이 더 나빠졌어. 이보다 더 나빠질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도.

아까 전 계단에서 시작된 엄청난 감속은, 실험용 약과 수면제의 상호작용의 시작일 뿐이었어. 
내가 벤치에 앉자마자, 약효가 제대로 발휘되기 시작했어. 난 눈을 깜빡였어. 수십 년의 암흑이 찾아왔어.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상황에서, 시야마저 사라져 버렸지. 
나에게 존재하는 것은 방금 전의 추락으로부터 온 통증 뿐이었어.

내 초-가속된 정신은 감각의 공백을 허용하지 않았어. 목소리들이 내게 말했어. 
그것들은 내게 존재한 적 없던 언어들로 노래를 불러 댔어. 
패턴들과 얼굴들, 그리고 색들이 내 마음의 눈에 왔다 갔다 산란했어. 

나는 내 전생애를 회상했고, 다른 방식의 구현을 상상했어. 나는 영어를 잊어버렸어. 
나는 심오한 절망에 처박혔어. 나는 신께 읍소했어. 나는 신이 되었어. 
나는 새로운 우주를 상상했고, 그것을 내 생각으로 구현된 삶에 적용했어. 그리고 나는 그것을 계속, 계속 되풀이했어. 


나의 눈들은 지질학적인 감속으로 뜨였고, 희미한 빛만이 지각 되었어. 여러 주들이 지났지. 
빛의 편린. 또다시 여러 주들. 매트로 플랫폼의 아주 좁은 시각. 
내게 가까이 있는 통근자들의 발목들과 반대쪽 벽의 광고판이 보였어.

나는, 숫제, 내 폰을 내 주머니에서 추출해냈어. 수십 년이 걸리는 프로젝트였지. 
내가 그 지루함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어. 내 어깨 통증은 그 지리함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야. 
내가 하는 모든 생각들은 내가 이미 수백 번, 수천 번 한 것들이었어. 
발목들과 광고판들은 변하지 않고 계속 시야에 붙박여 있어. 절대로. 변하지 않아. 
그 지루함은 너무나도 지대해서 마치 금속과 바위로 된 고체가 내 두개골을 부수고 침범해 얽혀있는 것과 같아.

도망칠 수 없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뭐지? 만일 내가 기어서 당장 들이닥치는 기차가 없는 선로에 떨어진다면, 나는 죽을 수 없어. 
나는 4발자국 정도의 추락에 더 극심한 고통을 느끼게 될거야. 게다가 더 심하게는, 
내가 아마도 플랫폼의 선한 행인에 의해 구출될 확률이 높다는 거야. 그리고 기차가 마침내 오면 나는 거기 없겠지. 
그 시나리오에서 나의 고통은 끝나지 않아.


그래서 나는 기차를 기다렸어. 닥치기 직전에 떨어지기 위해서. 그게 마침내 나를 친다면, 
나는 수세기에 걸쳐 찢어지는 고통을 경험하겠지. 그리고 마침내, 내 뇌에서 빛이 사라지면, 나의 경험은 끝이 나는 거야.

나는 한걸음 정도의 벤치에서 수백 년에 걸친 삶을 살았어. 
나는 그 어떤 인간보다 영적으로 훨씬 늙었어. 
내 거의 대부분의 삶의 경험은 변하지 않는 발목들과 광고들의 시각 범위 내 
서브웨이 플랫폼 바닥 위에 묶인 고통의 스냅샷이었어. 

이 포스트는 내 플랜 B야. 나의 축복 받은 환대. 나의 먼 계획. 
나는 누군가 이 포스트를 읽고 이 고통은 끝나야만 한다고 확신하여 주기를 희망하며 이 메시지를 타이핑해 올리고 있어. 
지금 이 플랫폼에 있는 누군가. 만일 벤치 아래에 몸을 말고 있는 남자를 발견한다면, 
만일 에스컬레이터를 기어서 내려가고 있는 남자를 발견한다면, 부디 그를 최대한 신속하게 죽여줘. 신전으로 향하는 총알.

만약 네가 Glenmont 메트로에서 총을 가지고 있다면, 제발 나를 쏴줘.



출처: https://m.blog.naver.com/fallequation/221626685196
  • tory_1 2021.05.04 13:40
    아니 이런 미친 연구원놈들,,, 생체실험 너모 무섭다,,,
  • tory_2 2021.05.04 14:05
    영화 루시 생각나.. 인간이 아니게 되면 인간들이 사는 사회는 감옥이겠지
  • tory_3 2021.05.04 15:00

    근데 일단 기본적으로도 인내심이 평균보다 좀 부족한 스타일인듯... 10시 15분에 약을 투여받아서 몇 시간쯤 지속될 거라 했는데 수면제 먹기 직전 시간이 1시 반 정도였다고 치면 그냥 재미없어도 참고 책이나 몇 권 더 읽으면서 서너 시간만 더 버텼으면 됐을 것 같은데.

    현실에서도 쪼끄만 진통제나 항생제 나부랭이도 다른 약이랑 같이 먹으려면 혼자 판단하지 말고 의사나 약사한테 물어봐야 하는데 무슨 자신감으로 무려 임상실험 중인 신약을 투여한 채로 수면제를 먹은 걸까

  • tory_4 2021.05.04 15:00
    삭제된 댓글입니다. (삭제일시: 2022/03/24 08:03:40)
  • tory_5 2021.05.04 16:42
    와 재밌다 블랙미러 베타테스터 에피소드도 생각나고!
  • tory_6 2021.05.04 17:10

    진짜 끔찍하다........... 5억 버튼 생각난다...

  • tory_7 2021.05.04 18:39
    이거랑 비슷한 우주비행사 얘기도 있었는데.. 상상해 보니까 존무..
  • tory_8 2021.05.04 19:34
    삭제된 댓글입니다. (삭제일시: 2021/05/06 00:24:13)
  • tory_9 2021.05.05 07:16
    재밌다!! 빨라지면 좋지않을까했는데 끔찍하네ㅜ
  • tory_10 2021.05.05 20:30
    삭제된 댓글입니다. (삭제일시: 2022/02/24 16:46:26)
  • tory_11 2021.05.07 11:56
    어우...끔찍하다
  • tory_12 2021.05.08 09:39
    뒤로 갈수록 무서워져서 제대로 못 읽겠어 ㅠ 끔찍해
  • tory_13 2021.05.11 15:27
    생지옥이 따로없네
  • tory_14 2022.10.19 05:16
    어휴...끔찍해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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