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

1956년에 대구에서 태어난 우리 삼촌은 어릴 때부터 물놀이를 유난히 좋아하셨다고 한다
중고등학생때 청소년 수영선수로 활약하며 국제대회에서 상을 받을 정도로 수영에 대한 재능과 열정이 남다른 분이었다
하지만 삼촌이 성인이 되기전에 할아버지가 병환으로 돌아가시며 가정형편이 어려워졌고 삼촌은 수영선수로서의 꿈을 끝내 접을 수 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꿈을 포기할 수 없었던 삼촌은 22살이 되던해에 경남진해에있는 해군해남 구조대 통칭 ssu에 자원입대하셨다
하지만 불과 하루만에 땅을 치며 후회하셨다고 하는데 훈련의 강도가 상상을 초월했던 것이다
고된 훈련을 하루하루 간신히 버텨내신 삼촌은 군복무중에 수중용접기술을 배우셨고
전역후에 부산의 꽤 규모있는 조선소에 취직해 5년동안 산업 잠수소로 활동했다
그러다 서른살에 제주도가 고향이신 직장동료분과 사랑에 빠지셨고 그 분과 결혼후에 제주서귀포의 작은 어촌마을에 정착하게 되었다
그때가 팔십년대 초반이었는데 당시 전문인력이 귀했던 제주도에서는 젊은 나이에 1급 잠수기능사인 삼촌을 필요로 하는 곳이 많았다
삼촌은 인양작업이나 수중공사등 다양한 일을 하셨고 그렇게 가정을 이룬 삼촌은 열심히 일하시며 나름 넉넉하고 행복한 나날을 보내셨다

그러던 어느 날 평안한 마을에 불미스러운 일이 일어났다
마을 해변과선착장사이에는 커다락 갯바위 하나를 중심으로 암초대가 형성되어있었는데
이것은 다양한 바다생물의 굴락지로 낚시꾼들 사이에서 인기있는 낚시 포인트였다
그런데 이곳에서 밤낚시를 하던 낚시꾼 두명이 실종된 것이다
주민들은 그저 낚시꾼들의 부주의로 그들이 너울에 휩쓸린거라며 유감을 표할뿐 크게 동요하는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며칠 후에 같은 장소에서 또다시 낚시꾼이 익사하는 사건이 일어났고
사고와 관련된 이상한 소문이 마을 전체에 퍼지면서 삼촌은 사건의 자세한 내막을 알게되었다
한 젊은낚시꾼이 동료들과 함게 갯바위위에 자리잡고 앉아 회를 안주삼아 과하게 술을 마셨다고 한다
그때 누군가 물가와 가까운 암초위에 서서 소변을 봤는데
그러다 갑자기 바다에 첨벙 뛰어들었다는 것이다
동료들은 처음에 그가 술에 취해 고꾸라 진줄 알고 깔깔 웃었는데 물에 빠진 그가 갑자기 소리를 지르며 먼 바다로 헤엄쳐갔다고 한다
일행들이 그를 애타게 불렀지만 그는 뭔가에 홀린듯이 걔속 멀어져갔고 몇몇 사람들이 물에 뛰어들어 그를 쫓아갔는데
다들 물에서 뭘 본건지 반쯤 넋이 나간채로 기겁을 하며 물밖으로 도망쳐 나왔다고 한다
바닷속으로 사라진 그는 다음날 싸늘한 시신이 되어 뭍으로 밀려왔는데 시신의 입안에는 정체모를 머리카락이 한뭉텅이 들어있었다고 한다
갯바위 낚시가 위험하긴 해도 그것은 전례없이 끔찍한 사고였다
연이은 사고로인해 평화롭던 마을 전체가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그후로 몇달사이에 바다에서 물질을 하던 해녀까지 실종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해녀들은 수심 15미터이상에서도 작업을 거뜬히 하는 베테랑이었다
그리고 보통은 서너명의 해녀들이 짝을 지어 작업을 하기 때문에 위험한 상황이 발생한다면 분명 동료들이 먼저 알아챘을 것이다
마을해녀들이 바다에 나가 사망하거나 실종되는 일은 단 한번도 없었다.
그런 해녀들의 사고소식에 마을 주민들 모두 몹시 황당해 햇다
당시 주변 해녀들의 말에 따르면 실종된 해녀들 모두 평소와 같이 물질을 하다가 어느순간 감쪽같이 사라져버린탓에 그 누구도 이상한 낌새를 알아차리지 못했다고 한다
그런상황에서 실종자 수색에 나선 숙련된 잠수부까지 실종이 되자 마을은 한바탕 난리가 났고
작은 어머니는 삼촌이 수색작업을 하시는걸 필사적으로 막았다고 한다
이모든 일들이 불과 반년사이에 한 마을에서 일어났다
그 후로 얼마 지나지 않아서 인근의 낚시꾼 한명이 또다시 실종되자
이 모든 것이 물귀신의 탓이라는 흉흉한 소문이 마을 전체에 돌기 시작했다
결국 한 평생 물질을 업으로 삼았던 해녀들조차 바다에 들어가길 꺼려했고 낚시꾼들 역시 더이상 마을을 찾지 않게되었다
거기다 설상가상으로 어업수확량까지 눈에 띠게 줄어들자 급기야 마을에 터를 잡고 살아온 주민들마저 떠나가기 시작했다
어업의 잠정중단과 줄초상으로 평화로운 마을은 한순간에 아비규환이 되어버렸다

상황을 보다못한 마을 어르신들은 영험하다는 신방을 불러오셨다
신방은 제주도 방언으로 무속인을 칭하는 말이다
해가 저물어갈 무렵 긴 잿빛 머리를 뒤로 정갈히 묶은 중년 여성의 신방이 마을로 들어왔고 그는 해변가에 우두커니 서서 바다를 한참동안 노려보았다
그리고

"어유 이렇게 멀리 있어도 숨통이 조여오는구만 이건 예삿기운이 아니야"

연신 방울를 흔들며 뭔가를 찾는 듯 물가를 천천히 둘러보던 신방은 심각한 얼굴을 하고 도망치듯 뭍으로 나왔다
마을 촌장에게 그간의 일을 전해들은 신방은 잠시 무언가를 생각한 끝에 입을 열었다

"그간 못되고 끔직한 것들은 많이 봐왔지만 저렇게 흉측한건 난생 처음 봅니다
독이 어찌나 바짝 올랐는지 내가 모시는 할망도 등뒤로 숨어버렸어요
악귀도 저런 악귀가 없습니다 태생은 본디 인간이었겠지만 이제 인간의 모습은 완전히 잃고 말았어요
그 악독한 깊이를 알 수 없을 정도이니 어설프게 나섰다간 도리어 화를 입을 수 있습니다"

"어떻게 할 방법이 없겠습니까 굿으로 어찌할수는 없겠습니까"

"물귀신은 보통 넋건지기 굿을 해서 한을 풀고 넋을 물에서 건져서 천도시키는 것으로 달래긴 합니다만
이정도로 본질이 변형된 귀신은 생전에 가지고 있던 정신이나 기억따위는 모두 소멸되었을 것입니다
이런 부류는 증오나 원한조차도 없어려 그저 매목적으로 산사람의 목숨을 끝없이 거둬가죠
사연을 알 방법도 없고 대화조차 되지 않을테니 성불은 당연히 불가능합니다
음기가 바다의 기운보다 강해서 다른 곳으로 내치기도 힘듭니다"


"아이고 대체 그런게 왜 우리마을에 나타난겁니까?"

"글쎄요 분명히 하루아침에 나타난건 아닐테고
오랫동안 휴면상태에 있다가 최근에 어떤 이유로 인해서 깨어난게 틀림 없습니다"

"제발 도와주십시오 뭐든지 하겠습니다 무슨 방법이 없을까요?"

"쉽진 않겠지만 방법은 하나 뿐입니다 액막이를 쳐서 저걸 봉인시켜야 합니다"


그날밤 마을에는 칠흙보다 깊은 어둠과 끝없는적막만이 감돌았다
그리고 이튿날 새벽
문제의 갯바위 위에서 액막이 굿과 봉인의식이 치뤄졌다
의식은 매 썰물때마다 행해졌고 마을 해안에서 들려오는 북소리는 무려 닷새동안이나 이어졌다
봉인의식이 모두 끝난 후에는 의식에 사용된 물건에 명주실을 감아 쇠붙이를 달아 물속에 수장시켜버렸다

"신방..앞으로는 이 마을에 끔직한 일은더이상 없겠지요?"

"그건 저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
누가 부정타는 일을 해서 저걸 깨우는 날에는 장담하건데 모두 무사하지 못할겁니다
그러니 저 갯바위근처에는 누구도 얼씬거리지 못하게 하세요"

그후로 마을사람들은 기다란 철근에 빨간페인트를 칠해서 갯바위쪽에 군데군데 심어두고 그곳에 사람들의 출입을 막았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더이상 나쁜 일들은 일어나지 않았다
시간이 흘러 해녀들은 다시 일을 시작했고 마을은 다시 평화로워졌다


그후 4년의 시간이 흘렀다
하루는 삼촌이 장인어른에게 이상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저번주였나?
새벽에 배타러 나가는데 저 멀리 해변가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리더라고.
처음에는 잘못들은 줄 알았는데
그게 무슨 여자의 목소리같기도하고 바명소리같기도한것이...
아무튼 기분이 영나쁘더구나
그러고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엊그제 새벽에 같은 장소에서 또 그 소리가 들리더라고
이번엔 그 소리를 듣자마자 오한이 들면서 머리가 아프고 속이 매쓰거운게.....
어휴 그길로 집에 와버렸지 어째 느낌이 영 불길하단말이야
자네도 바다나갈땐 각별히 조심하게"

하지만 삼촌은 예전에 마을에 안좋은 일이 있었던 탓에 장인어른께서 예민하게 반응한거라 여겼다
며칠 후 비가 추적추적내리던 시월의 어느 오후 태풍이 온다는 소식에
삼촌은 양식장 보수작업을 마친 후 보트를 타고 돌아오고있었다.
그런데 해안에 가까이 다달았을 무렵 쿵소리와 함께 보트의 모터가 멈춰버렸다
팬에 그물같은게 잔뜩 엉킨탓에 삼촌의 친한동생 고씨가 급히 입수하여 물 아래쪽으로 내려갔다
삼촌은 보트위에서 온신경을 곤두세운채 상황을 지켜봤는데 한참을 지켜봐도 고씨가 물밖에 나오지 않았다
걱정스레 주변을 살펴보는 삼촌의 시야에 갯바위가 들어왔고 그날따라 군데군데 솟아있던 붉은 철근들이 평소보다 훨씬 음산한 기운을 뿜어내고 있었다
왠지 모를 불길한예감에 삼촌이 입수를 하려던 그 때 고씨가 꼬로록 소리를 내며 물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아 놀래라 왜이렇게 오래걸렸는데"

"행님 이거 그물이 아니고 머리카락같은데요?"

"말이되는 소릴해라 그물이 아니면 해초같은거겠지"

"이상하네 암만 봐도 해초 아닌거같은데요 암튼 싹다 잘라낼테니까 저기 니퍼좀 주이소"

"어 그래 니혼자서 괜찮겠나?"

"아이고 행님 매번 있는 일 아닙니까 금방처리할게요"

그렇게 도구를 챙겨 물속으로 들어간 고씨는 영영불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뒤늦게 뛰어들어간 삼촌이 한참동안 그를 찾아다녔지만 고씨는 마치 증발이라도 한듯 흔적도 없이 사라진 후였다
보트는 여전히 꼼짝도 하지 않았고 날은 어느새 어둑어둑 저물어가고 있었다
삼촌은 곧장 어촌에 전화를 걸어 도움을 청했고 근처에있던 어선한척이 연락을 받고 와서 고씨의 보트를 끌고갔다
사라진 고씨를 찾기위해 온 마을사람들과 경찰 구조대등 수많은 사람들이 투입되었지만 태풍이 북상하며 파도가거세지는 바람에 수색이 중단되고말았다
고씨의 생사조차 알수없는 상황에서 삼촌은 발만 동동굴렀다
밤 열시 무렵에는 잠시 비가 걷히면서 바람이 제법 잠잠해졌는데 수색작업은 여전히 중단된 상태였다
썰물때까지 고씨를 찾지못한 채 이대로 태풍이 지나가버린다면 그의 시신조차 영영 수습하지 못할것이다
사실 삼촌과 작은 어머니가 처음 제주도에 정착했을때 도민들의 텃세에 쩔쩔매던 삼촌에게 선뜻 손을 내밈 사람이 고씨였다.
그는 삼촌이 어려움에 처할때마다 자시의 일처럼 나서서 도와줬고 삼촌 역시 그런 고씨를 친동생처럼여겼다
통곡을 하다못해 실신해버린 고씨의 아내
그리고 아무것도 모르는 고씨의 어린자녀들을 그냥 보고만 있을수는 없었떤 삼촌은 결국 직접나서기로했다
당시 삼촌이 사용하던 머굴이라는 재래식산업용잠수장비는 조력자없이 혼자선 사용이 불가능했다.
그래서 삼촌은 스노쿨과 랜턴 오리발등 최소한의 장비만 착용한채 가족들몰래 밤바다에 뛰어들었다

'여기는 해안선이 복잡하니 조류에 휩쓸렸다해도 아직 이 근방에 있을거야
태풍이 여기까지 오려면 반나절 넘게 남았으니 빨리 찾아서 복귀하자'

삼촌은 태왁라는 기구에 연결된 로프를 붙잡고 수면을 오르내리며 해안곳곳을 수색하기시작했다
태왁이란 부력이 있는 커다란 스티로폼덩어리로
구명조끼를 입지 않는 해녀나 다이버들에게는 생명줄과도 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시야가 흐린데다 비가 다시 쏟아지며 바람이 다시 거세져버렸고
지금당장 철수하지않으면 위험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삼촌은 수색을 멈추지 않아다

'딱 한군데만 더 둘러보고 가자'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수심 8미터 지점에 랜턴불빛이 비추는 곳에 희미한 사람형체가 보였다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은 삼촌은 급히 수면 위쪽으로 올라가 숨을 한번 가다듬은 후
다시 물 아래로 내려가 랜턴을 비추었다.
그곳에는 아까보았던 사람 형체가 여전히 그자리에 있었다.
삼촌은 그것이 고씨의 시신이라 확신하며 가까이 다가갔다
하지만 강한 조류탓에 시야가 점점탁해지며 몸이 밀려나 접근조차 쉽지가 않았다.
삼촌은 전력을 다해 다가갔고 오미터 삼미터 그리고 드디어 손만뻗으면 닿을 거리까지 다가갔다.

"저게뭐야!"

몸을 곧게 세운채로 바닥을 바라보며 물속 한가운데 둥둥 떠있던 그건
키가 보통성인남성의 족히 두배는 되어보였다.
그리고 그것의 긴 머리카락은 사방으로 뻗쳐서 기분 나쁘게 살랑거리고 있었다.
이를 악물고 힘껏 헤엄쳐도 앞으로 나아가기힘든 이 거세 조류속에서
저 앞에 있는 사람형체는 꼿꼿 하게 서서 지며넹 시선을 고정시킨채미동조차하지않았다.
삼촌은 뭔가에 홀린듯 잠시 넋을 잃고 그 형체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찢어질듯 높은 톤의 음성이 물속에서 나지막히 들려왔다
그건 분명히 사람이 인위적으로 내는 소리였다
해녀들의 숨소리르 입으로 흉내내는 듯한 여자의 목소리는 듣기 거북할 정도로 몹시 불쾌했다
소리를 찾아 사방을 둘러본 후 다시 고개를 돌린 순간 삼촌의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미동도 없던 사람의 형체가 몸을 서서히 움직이며 삼촌쪽으로 방향을 틀고있었던 것이었다.
그것은 빗바랜 색동저고리 치마를 입고 있었는데 사방으로 뻗친 기다란 머리카락에 가려 얼굴은보이지가 않았다.
그것은 고개를 좌우로 까딱까닥 거리며 기이하게 움직이고 있었는데
물살에 의해 자연스레 움직이는 것으로 보기엔 자세가 상당히 비정상적이었다.

온몸에 소름이 돋으면서 등골이 오싹해진 삼촌은 서둘러 수면을 향해 올라갔다
글고 그때 귀 바로옆에서 또다시 그 소리가 들렸고 깜짝 놀란 삼촌이 주변을 둘러봤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괴형체가 있었던 아래쪽 역시 아무것도 없었는데 무심코 고개를 든 순간 그섯이 삼촌의 코앞에 서있었다.

길고 검은 머리카락이 물살에 휘날리며 삼촌의 얼굴을 마구때렸고
전방의 시야를 다 가릴정도로 커다란 얼굴이 갑자기 나타나자
삼촌은 자신도 모르게 냅다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그와 동시에 몸속에 남아있던 공기가 모두 빠져나가버렸고 삼촌은 자신도 모르게 숨을 크게 들이키고 말았다.
다량의 바닷물이 순식간에 삼촌의 폐와 식도로 들이쳤고
가슴에 엄청난 통증을 느낀 삼촌은 급히 수면을 향해 헤엄쳐 올라갔다

그런데 그 순간
한쪽 다리가 갑자기 꿈쩍도 하지 않았다.
불빛을 비춰 확인하려했지만 랜턴은 두번 깜빡 거리더니 휙 나가버렸다
삼촌이 새카만 물아래로 손을 뻗어 다리쪽을 더듬거렀고 손끝에 날카로운 손톱과 크고 기다란 손가락들이 만져졌다
누군가의 손이 삼촌의 왼쪽 오리발을 강하게 움켜쥐고 있었던 것이다
삼촌은 마구 발버둥을 치며 오리발을 벗어던진후 사력을 다해 위쪽으로 올라걌다.
하지만 밖의 상황은 더더욱이 암담했다.
로프는 이미 놓친지 오래고 태왁을 찾기는 커녕 어느쪽이 육지인지 구분조차 할 수가 없었다.
달빛하나없는 어둠속에서 비바람과함게 강한 퍄도가 끊임없이 삼촌을 덮쳐와 숨조차 제대로 쉴수가없었다.
구명장비 하나도 없이 한치앞도 보이지않는 밤바다한가운데 둥둥떠있는건 자살행위와 다름이 없었다.
삼촌은 또다시 발목이 붙잡혀 물속으로 끌려들어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무작정 앞으로 헤엄치기 시작했다.
패닉상태에 빠진 삼촌은 참을 수 없는 공포를 견디지 못해 그저 본능적으로 앞으로 나아갈 뿐이었다.
거친 숨을 쉴대마다 머리위로 끊임없이덮쳐오는 파도때문에 공기를 마시는건지 바닷물을 마시는 건지 분간조차 할 수가 없었다.


이제 더이상
체온이 급격하게 떨어지며 힘이 다빠진 삼촌의 정신이 흐려지던 찰나
무언가 단단한게 머리에 쿵하고 세게 부딪혔다.
순간 정신이 번쩍 든 삼촌은 손에 닿은 물체를 붇잡고 필사적으로 위로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머리에 부딪힌 그것은 커다란 암초였다
온몸이 암초에 찍히고 긁혀 피가 흘러내렸지만 고통을 느낄 겨를이 없었다.
구사일생으로 간신히 물밖으로 올라온 삼촌은 잠시 숨을 고르며 저 멀리 보이는 마을 가로등의 희미한 불빌을 바라보았다.
머리와 몸에서는 끊임없이 피가 흘려내렸고 그제야 정신이 들며 고통이 밀려왔다
상처가 꽤 심각해서 서둘러 지혈을 해야했지만 머리에 흐르는 피에 빗물이 섞인 채 얼굴을 뒤덮어 버려 눈을 제대로 뜰 수가없었다.
삼촌은 랜턴을 집어들었다.

"제발...제발 좀 켜져라"

그렇게 랜턴 뒷부분을 몇번 치자 탁하고 불이 들어왔고
불빛을 빛춰 주변을 둘러본 삼촌은 정신이 아찔해졌다
주변 곳곳에 설치되어있는 철근들이 모두 붉은 색이었기 때문이다.
오래전 신방이 그 누구도 얼씬조차 하지말라며 신신당부했던 그곳에 삼촌이 위태롭게 몸을 기대고 있었다.
조금 전 물속에서 겪었던 악몽같은 일을 떠올리며 좌절해버린 삼촌은 고민끝에 갯바위를 벗어나 육지로 가기로 했다.
육지까지는 그리 멀지않은 거리였지만 만조때 수심이 제법 깊은데다 비바람이 거세져 파도가 꽤 높아진 상태였다.
이미 탈진한 상태로 만신창이가 된 몸이 이 성난 파도를 뚫고 무사히 육지에 닿을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하지만 이대로 있다가는 파도에 휩쓸리거나 물속에서 봤던 그것이 또다시 나타날지도 모른다
삼촌은 자리에서 일어나 랜턴으로 주변을 비춰보았다.


그런데

"저게 뭐야!"

대략 오미터 남짓 떨어진 수면 위쪽에 무수히 많은 사람들의 머리가 솟아있던 것이다.
족히 수십명은 되어보이는 남녀가 빼곡히 모여서 삼촌을 등지고 물 위쪽으로 머리만 빼꼼 내밀고있었다.
도저히 믿을수 없는 이 기이한관경에 삼촌은 두 눈을 비비며 그것들을 다시 한번 똑바로 쳐다봤다
그것들은 출렁이는 파도속에서 꿈쩍하지 않고 있었는데 그중 바짝깎은 머리에 커다란 귓불을 가진 남자의 뒤통수가 유난히 눈에 띄었다


"임마야 니 거기서 뭐하노?
행님왔다 당장 나온나! 임마 퍼뜩 집에가자!"

그건 바로 삼촌이 애타게 찾고있던 고씨였다
하지만 대답은 돌아오지 않고 잠시 침묵이 흐르더니 어디선가 기이한 소리가 파도를 뚫고 나지막하게 들려왔다.
아까보다 훨씬 더 날카롭고 소름끼치는 그 소리에 삼촌은 반사적으로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랜턴을 비췄다
그리고 그곳은 누군가 갯바위 뒤쪽에서 고개만 내밀고 삼촌을 노려보고 있었다.
상반신 만으로도 일반 성인의 키를 훌쩍 넘기는 그의 얼굴은 새파랗게 질린채 퉁퉁 불어있었다
이마 곳곳에는 붉은 점들이 찍혀져있었고 비정상적으로 넓은 미간에 가로로 길게 찢어진 눈은 움푹 패여져 광대뼈 바로 위쪽에 붙어있었다
끝이보이지않게 늘어진 덥수룩하고 퍼석한 머리칼은 흡사 들짐승의 갈기처럼 보여서 더욱더 공포스러웠다
그것은 살기가 가득한 시뻘건 두눈을 부릅뜨고 삼촌을 노려보고있었다
시선이 아래로 내려간 곳에는 온통 피로 얼룩긴 오방색 저고리가 보였다.
역시 그건 삼촌이 아까 물속에서 보았던 바로 그것이었다.
삼촌의 손끝에 느껴졌던 기다란 손가락 끝에는 새까만 손톱들이 제멋대로솟아나있었다.
공포에 질려 그대로 얼어붙은 삼촌은 그저 그것에 시선을 고정시킨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잠시라도 한눈을 팔면 그것이 바로 삼촌을 덮칠 것만 같았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그것은 조금의 미동도 없이 삼촌을 노려보고있었다
그리고 요란한 파도소리와 빗소리가 잠깐 멈춘거같은 착각이 들었다
심장은 터질듯 요동을 쳐댔고 피를가득 머금은 슈트에서는 아련한 온기와 함께 비릿한 피비린내가 스멀스멀오라오고있었다

'그래...이렇게 된 거 이제 죽기살기다'

삼촌은 마음속으로 셋을 센 뒤에 곧장 물로 뛰어들어 전력을 다해 육찌까지 헤엄쳐가기로 했다
여기서 백미터 정도만 헤엄치면 발이 땅에 닿는 수심까지는 갈 수 있을 것이다.
자칫 조류를 잘못 만나면 순식간에 먼바다로 밀려나 그대로 죽을 지도 모르지만 그 상황에서 모든건 운에 맡기는 수밖에 없었다.

'하나...둘....'

방금전까지 삼촌의 눈앞에있던 그것이 순간 자취를 감춰버렸다.
삼촌이 육지까지의 거리를 재느라 순간적으로 그것에게서 시선을 떼어버렸기때문이다.
그 때 불쾌한 숨소리와 함께 얼음같이 차가운냉기가 삼촌의 볼을 스치며 말로표현할수없는 엄청난 악취가 풍겨져왔다.
온몸에 털이 쭈뼛선채 그대로 굳어버린 삼촌은 눈만 겨우 움직여 곁눈질로 그걸 살짝 쳐다보았다
차마 랜턴으로 그걸 비출 엄두가 나지 않았다

"으악-!"

외마디 비명과 함께 삼촌은 물속으로 몸을 날렸다
짠 바닷물이 상처에 닿아 칼에 찔리는거같은 통증이 느껴졌지만 아픔을 느낄 여유따윈 없었다.
삼촌은 죽을힘을 다해 육지로 헤엄쳐갔다.
몸이 조금 앞으로 나아간다싶다가도 금새 힘이 빠지며 숨이 턱까지 차올랐고 눈에는 핏물이 들어차서 이내 시야가 흐려졌다.
삼촌은 오랜경험과 나름대로의 방법으로 처음출발했던 방향을 애써 기억해내며 앞으로 계속 나아갔다.
팔다리의 감각은 이미 사라져버렸고 엉뚱한 곳으로 밀려나고 있는 건 아닌가 그런 불안한 생각도 들었지만 다른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바로 그 때 두려움과 죄책감으로 정신이 혼미해지던 그 때 삼촌의 손가락에 무언가 감기는 느낌이 들었다.
억세고 기분나쁜 촉감은 그것의 머리카락 같았다.
놈이 여기까지 날 쫓아왔구나 하고 생각한 삼촌은 결국 모든 걸 체념해버렸고
아무감각이 없는 몸으로 바닷물만 꾸역꾸역 삼키며 의식을 잃어갔다.
아득한 시간이 지나고 삼촌은 자신의 몸이 어딘가로 끌려가고있다는 걸 느꼈다.
이대로 놈에게 잡혀가는 건가 싶어 마구 저항을 하자 누군가 주먹으로 삼촌의 얼굴을 내리쳤고 삼촌은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헉...헉.....여기가 어딥니까?"

곧이어 삼촌은 자신의 두발이 땅에 닿아있다는 걸 알았다.
몇번이고 눈을 비벼 주변을 둘러보니 마을 주민 세명이서 삼촌을 부축하며 해변가로 이동하고 있었다.

"야이 미친놈의 자슥아 니 뒤질라고 환장했나!! 퍼뜩 다리에 힘줘라 여서 정신 단디 안차리면 다 죽는다고"

귀에 익은 걸쭉한 부산 사투리 목소리의 주인공은 작업반장 윤씨 아저씨였다.
늦은 시간까지 해변을 수색하던 몇몇의 주민들의 저 멀리서 허우적거리고 있던 삼촌을 기적처럼 발견했고
모두 그가 사라진 고씨인줄알고 바다에 뛰어든 것이었다.
생사의 갈림길에서 기적적을 살아난 삼촌은 곧바로 병원으로이송되었고 급히 수혈과 봉합수술을 받았다고 한다.
삼촌의 열손가락은 거의 대부분 골절되어있었다고 한다
이 사건으로 작은 어머니께서 당장 이혼하자며 펄펄 뛰셨지만 그건 아무것도 아니었다.
삼촌은 퇴원한 그날부터 끔찍한 악몽에 시달려야만 했다.
꿈을 꾸면 쾌청한 하늘아래 잔잔하고 푸른 바다가 펼쳐져있고 바다의 한가운데에는 고씨가 둥둥 더있다.
삼촌이 그에게 점점 다가갈수록 고씨의 표 정은 일그러지고 그와 동시에 주변엔 짙은 어둠이 깔린다
고씨는 몹시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삼촌을 응시하다가 입을 뗀다

"아....아...."

어느새 눈앞에 나타난 그것은 살기가득한 시뻘건 눈을 뜨고 커다란 입을 쫙 벌리며 삼촌의 코앞까지 다가와 활짝 웃는다
그리고 그 입속에는 푸석한 머리카락들과 검붉은 피가 가득하다
삼촌은 물속 깊은 곳으로 빨려들어가고 어두운 심해로 끝없이 끌려들어가며 잠에서 깨어난다
그 일로 삼촌은 한평생을 같이 했던 바다를 등지고 잠수사 일을 그만두었다.
파도소리만 들려와도 그날의 그 기억때문에 다리가 후들거리고 
바닷가 근처만 가도 사람들의 비명소리가 들리는 환청에 시달리던 삼촌은 아주 오랫동안 악몽에 시달려야만 했다.
자신이 고씨를 죽게 만들었다는 죄채감과 함께 그것의 끔찍한 잔상은 시간이 오래 지나도 사그라들지 않았다.
결국 삼촌은 가족들과 함께 제주를 떠나 고향인 대구로 이주했고
작은 어머니와 함께 종교생활을 하면서 비로소 그 트라우마에서 해방될 수가 있었다.
환갑이 훌쩍 넘으신 삼촌은 두 아들이 결혼하여 독립하자 작은 어머니와 함께 제주의 그 마을로 돌아갔다.
어릴 때 삼촌 댁에서 여름방학을 보내고 했던 나는 무척이나 잔잔하고 아름다웠던 그 마을의 해안 절경을 아직까지도 기억하고 있다.
몇년 전 제주도 여행을 갔다가 삼촌을 뵙기 위해 그 마을을 찾아갔는데 그곳은 관광개발로 인해 예전의 모습을 찾을 수 없게 변해있었다
그리고 갯바위 쪽은 예전의 그모습 그대로였는데 마을 선착장이 부두로 확장이 되면서 방파제에 완전히 가로막혀 버렸다.
마을은 여전히 평화로웠고 그 일 역시 까마득한 옛일이 되어버렸지만 가끔은 궁금할 때가 있다.
30여년 전 삼촌이 마주했던 그 존재는 아직도 여전히 그 자리에서 또다른 희생양을 기다리고 있을까


원출처 공포라디오0.4MHz 쌈무이
2차 출처 다음카페 쭉빵
  • tory_1 2020.03.31 10:26

    다음 웹툰 어둠이 걷힌 자리엔에 나오는 에피소드 생각난다. 재밌게 잘 읽었어!

  • tory_2 2020.03.31 10:46
    삭제된 댓글입니다. (삭제일시: 2020/05/01 04:46:08)
  • tory_3 2020.03.31 12:14

    오 무섭당 ㅠㅠ 잘 읽었어 !! 

  • tory_4 2020.03.31 13:11
    재미있었고 오싹하다
    그마을은 어케되려나
  • tory_5 2020.03.31 13:27
    넘무셩 ㅠㅜ
  • tory_6 2020.03.31 13:42
    삭제된 댓글입니다. (삭제일시: 2022/07/17 19:22:30)
  • tory_7 2020.03.31 13:57

    엄마야 제주도 사는데 여기 대체 어디여 엄청 무섭네ㅠㅠㅠㅠㅠ

  • tory_8 2020.03.31 14:03
    헉 필력 대단하다 영화를 보듯 생생하게 무섭다
  • tory_9 2020.03.31 14:20

    필력좋다 몰입해서 다읽었어!

  • tory_10 2020.03.31 16:23
    와 묘사가 너무 생생해서 그림도 없는데 너무 무섭다... 고씨 불쌍해 ㅠㅠ 그 괴물은 무슨 원한이 있어서 다 끌고 들어가는지
  • tory_11 2020.04.01 11:36

    와 진짜 생생하게 무섭다. 공포영화 한 편 본듯!

  • tory_12 2020.04.01 19:31

    물귀신이 젤 으스스한 거 같아... 무섭고 재밌다

  • tory_13 2020.04.03 01:56
    진짜 장난 아니다
    물 속만 해도 공포인데 거기에 물귀신이라니
    소름이 안내려가 ㄷㄷㄷㄷ
  • tory_14 2020.04.05 05:03
    손더게스트 생각난다ㄷㄷㄷ
  • tory_15 2022.04.19 08:38
    개발돼서 이제 그런 일 안 일어난다니....역시 최고의 퇴마는 콘크리트인듯 어우 무서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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