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경찰관이 내게 새 아이스팩을 건네주고 같은 질문을 반복할때도 계속해서 바닥에 찍힌 핏자국을 보고 있었다
“정말 괜찮은거 맞니?”
난 대답하는 대신 지난 몇 시간 동안 몇차례나 반복한 질문을 다시 던졌다
“아까 그 아이는 괜찮나요?”
경찰관은 잠시 동안 침묵을 지켜더니 이윽고 말을 이어갔다
“우린 아직 현장 상황을 파악 중이야”
“파악 중이 아니라 시간을 끌고 계신 거 같은데요”
경찰관은 내 말이 진저리 날 뿐만 아니라 조금 짜증스럽다는 표정으로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우린 지금 최선을 다하고 있어 이런 상황이 흔하지는 않아”
“저도 흔하게 겪는 일은 아닌 것 같네요”
경찰관은 내 건너편 의자에 앉아서 공책 한권을 꺼냈다
“무슨일이 있었는지 다시 한번만 말해주겠나”
“또요? 절 잡아넣으려면 그냥 덤터기 씌우시고 제 얘기에서 꼬투리 잡을 생각마세요”
다시 한번 형사는 이상한 방식으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한번 더 얘기한다고 안될 것도 없지 않나? 빼먹고 잊어버린 것이 생각날 수도 있어 우린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전부 알고 싶을 뿐이야”
그는 펜을 딸깍거리며 공책을 다시 펼쳤다
건너편에 앉은 형사의 자세를 보아하니 난 결국 좋든 싫든 한번더 얘기하게 될 것이란 걸 깨달았다 다시 한번 같은 얘기를 반복할 수 밖에 없는 것 같았다
“그러니까 깨어나보니 어딘지 모르는 곳에 있었다고?”
“네 맞아요”
전 그때 한번도 본적 없는 집 복도에서 눈을 떴어요 어떻게 그곳에 왔는지 전혀 기억이 나지를 않았어요 마지막으로 뭘 하고 있었는지도 마찬가지였고요 머릿 속이 온통 흐릿했어요 전등은 켜지지않았고 내 옆에 있는 장식용 테이블은 박살이 나있었어요
제 눈에 처음 눈에 띈 건 카펫에 찍혀있는 누군가의 발자국이었는데 얼마 후에야 저는 그 녹이 슨 듯한 붉은색이 진흙이 아니란 걸 알 수 있었죠 겨우 일어나 앉았을 때 제 얼굴에서 뭔가 흘러내리고 있는 걸 알 수 있어요 머리를 뭔가에 심하게 부딪혔다는 것도 그제서야 깨달았죠 ‘내가 도대체 어디있는 거지’라는 의문 말고는 곧바로 떠오르는 건 아무것도 없었어요
다리와 머리 상태가 괜찮아지자 여기가 어딘지 돌아다녀보기로 했어요 완전히 버려진 집 같더군요 원한있는 사람이 와서 여기저기 부숴놓은 듯 했어요 그림들은 벽에 제대로 걸려있는 것이 하나도 없었고 가구는 전부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었어요 현관문은 누군가 막무가내로 침입한 듯 보였고요 무슨 소리같은 건 안들렸냐고요? 그냥 처음에는 바람 소리뿐이었다가 나중에야 무언가 제 주의를 사로잡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더군요
누군가 흐느끼는 소리처럼 들렸어요 그 때 저 혼자 있는 게 아니란 걸 깨달았지요
저는 윗층으로 향하는 계단을 보고 다른 사람이 있는지 확인해보기로 마음 먹었어요
계단의 난간 지지대 하나가 부서져 있더군요 혹시 몰라서 그걸 한손에 움켜쥐고 올라가기 시작했습니다 계단을 반쯤 올라가자 거기엔 어떤 여자 한분이 있었어요 한번도 본 적 없는 사람이었어요 여긴 작은 동네니까 지나가며 봤을 수도 있을거에요 보자마자 저는 그 여자분을 도우려고는 하지 않았어요 이미 죽은 것처럼 보였거든요 그 때 누군가 집에 들어오는 소리를 들었어요
현관문에서 계단 전부가 보이는 구조는 아이라서 절 못보고 지나쳤어요 하지만 저도 그 사람이 누군지 볼 순 없었죠 신발만 확인할 수 있었어요 뭔가 부수는 소리가 몇 번 있더니 다시 그 신발이 밖으로 나가는 걸 봤죠 저는 몇 분 동안 기다리다가 나가는 걸 확인하고서 윗층으로 향했어요
윗층에는 그다지 길지 않은 복도에 침실이 3개 있더군요 거기엔 가족 사진들이 많이 보였어요 아까 계단에 있던 여자는 사진 속에 아내였던 것 같아요 아뇨, 사진 속에 남편은 저는 모르는 사람이었어요 사진 속 아이는 세명이었고 전부 귀엽더군요 한 명은 10대 소년이었고 나머지는 여자아이들이었어요
정말 모르는 사람들이었어요 하지만 어딘가 익숙한 얼굴들이었어요 사진들이 정말 많은 걸 보니 제가 전에 돌아다니다가 봤을 수도 있고요 저는 방 하나를 문고리를 살짝 열고 문 틈새로 안을 엿봤어요 아까 그 여자아이 방 같았어요 제가 본 건… 다시 얘기하고 싶지 않네요 그냥 아까 적은 노트를 봐주시겠어요 제가 본 걸 잊어버리고 싶어요
거기서 제가 할 수 있는 건 없었어요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려고 크게 심호흡을 하고 다른 방으로 확인해봤죠 그 방은 완전 남자아이의 방이더군요 오래된 영화 포스터에 비행기, 싸인 받은 종이까지 오래된 물건들을 좋아하는 아이같았어요 영화 포스터들 옆에 험프리 보가트에게 싸인을 받은 사진이 눈에 띄었어요
재밌네요 험프리 보가트는 기억하는데 제 이름은 기억이 안나요
어쨌든 그 방에는 아무도 없었어요 아마 그곳을 탈출한 것 같아요
제가 생각한 대로 마지막 방은 아이들의 부모님 방이었어요 아빠로 보이는 남자는 다른 사람들처럼 침대에 널부러져있었어요 손쓰기에는 너무 늦었어요 그 방에서 침대 옆에 놓인 전화기가 눈에 들어왔어요 제가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을 때 누군가 경찰을 불렀어야했는데
그 가족은 이런 일을 당하면 안됐어요
아뇨, 형사님 말씀이 맞아요 전 바로 신고를 하지는 않았어요 그 때 그 신발을 신은 남자가 돌아왔거든요
형사는 무언가 노트에 적더니 날 바라보며 말했다
“그 사람이 계단을 올라오는 소리를 들었다고?”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침대 아래로 바로 숨었죠”
형사는 다시 시선을 내려 공책을 바라봤다
“그 방이나 침대에 뭔가 이상한 건 없었나?”
“없었어요”
머리에 통증이 다시 느껴졌다 아직도 머리에 난 혹이 가라앉지 않고 있었다 아까보다 더 아픈 것 같았다
“굉장히 비싸보이는 가구들이었어요 침대도 컸고, 서랍장들도 짝을 맞춘 듯 했고요 예술품들도 있더군요 제 눈에는 멋져 보였어요 공간도 넓어보였고요”
형사는 공책 위에 뭔지 모를 글씨를 휘갈겨 적고는 내게 눈길도 주지 않은 채로 계속하라는 손짓을 했다
그 신발을 신은 남자가 부모님 방으로 들어왔어요 한 5분 정도를 돌아다녔어요 옷장을 열어보더니 방 안에 있던 물건들을 마구 집어던졌어요 그러다가 갑자기 한 자리에 멈춰섰어요 마치 무슨 소리를 들은 듯 했어요
“네가 숨어있던 곳에 말이지?”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 남자는 다행히 그냥 침대에 달린 발 받침대를 한번 걷어차더니 침대 아래 숨을 공간이 없다고 생각했는지 다른 방으로 가버렸어요 맞아요 그때 911에 신고를 했어요
제가 지금 어디있는지 모른다고 하고서 제 위치를 추적할 수 있도록 바닥에 전화를 그냥 놔뒀죠 그 남자가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소리를 들었어요 그러다 다른 소리가 들렸죠
맞아요 그 흐느끼는 소리였어요 어느 쪽에서 나는 건지는 알 수 없었어요
그 신발 신은 남자도 들은 것 같았어요 왜냐면 물건 던지는 소리가 더 이상 들리지 않았고 뒤이어 복도에서 발소리가 들렸거든요 그 사람은 어디서 소리가 나는지 예상하고 있는 듯 했어요 하지만 찾지는 못하더군요
왜냐고요? 형사님이 아시지않나요? 그 때 경찰이 도착했거든요
“그 다음에 그 남자는 뭘 하던가?”
형사가 물었다 이미 형사는 이 이야기를 이미 알고 있었고 그냥 지겨운 질문을 되풀이할 뿐이었다
“도망쳤어요 사이렌소리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고 두팔 벌리고 경찰 마중 나갈 생각은 아니었던 것 같아요”
“다른 건 없었나?”
형사는 내가 재촉했다는 듯이 다시 물었다
“그 사람이 말한 거랑 형사님이 제가 말씀 안해주시고 있는 그 아이요”
형사는 다시 노트를 내려다봤다
“ ‘지금은 시간이 없지만 이걸 기억하는게 좋을거야 경찰들이 날 뒤쫓아오면 널 찾아죽일거다
그땐 시시껄렁한 영화 얘기하러 온 게 아닐테니까 그러니 입 조심하는게 좋을거야’
그렇게 말하고서는 그는 그곳을 떠났어요”
저는 침대 아래서 몇 분 더 숨어있었죠 제 힘으로는 그 남자를 막기엔 역부족이었으니까요
전 제가 다시 일어설수 있을 지도 몰랐어요 사이렌 소리가 들려왔고 그리고서 다시 그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어요 전보다 크고 더 가까운 곳에서 나더군요
네, 그래요 그때 전 방문을 나갔어요 다시 복도로 나가서 들어보니 흐느끼는 소리는 이제 울고 있는 소리로 바껴있더군요 그리고 저는 그 소리의 행방을 찾아 여기저기를 헤멨죠
그때 저는 봤어요 아까는 못 봤던 창문이 있었는데 거기에 아까 못봤던 다른 복도가 보였어요 어디로 들어가는지는 모르겠지만 거기에 그 아이가 있었어요
아이는 심하게 맞은 것 같았어요 너무 불쌍했어요 아이 가족들은 전부 죽은 걸 제 눈으로 확인했거든요 우리는 서로를 향해 달려갔어요 하지만 저는 멍청하게도 창문에 세게 부딪혀버렸고 ...그때 경찰이 들이닥쳐서는 우리를 발견했어요
“그 다음에 생각난 건 뭐 없니?”
“아뇨 없어요 경찰들이 절 끌어냈을 때 전 기절했고 앰뷸런스에서 다시 깨어났죠”
형사는 노트에 적는 걸 마치고서 날 쳐다봤다 무슨 의미인지 그의 표정을 읽을 수가 없었다
“그 신발 신은 남자는 잡혔나요?”
형사의 그 이상한 표정에 질린 내가 질문을 던졌다
형사는 잠시 노트를 몇번 넘기는 시늉을 했다
“그 사람은 그 가족이 경영하던 회사에서 일하던 남자 같아 얼마전에 해고당했지
원래 정신병에 폭력 전과가 있던 사람이었고 직접 자기를 짜른 사람들을 혼내주려고 맘 먹은 것 같더군 네가 깨어났을 때 그 남자는 그 집에서 돈이 될만한 걸 전부 싣고 있었어
그 곳에서 몇 km 떨어진 곳에서 체포했단다”
“다행이네요 그 아이는 어떻게 됐죠 괜찮은가요?”
벌써 수백번은 물어본 것 같다 하지만 어쩌면 이번엔 답해줄지도 모른다
형사는 말없이 일어나서 문을 향해 걸어갔다 그러더니 밖에 있는 누군가와 대화를 건네는 것 같았다 무엇인가를 등뒤에 숨기고서 나에게 다시 다가왔다
“아이는요?”
내가 재차 물었다
“그게... 우리는 아이를 구해냈단다 상태는 많이 안좋아
잠시 뒤에 아이를 병원으로 데려갈거야 일종의 쇼크 상태야 기억 상실에 자아도 구분을 못하고 있어 굉장히 힘든 일을 겪은 것 같구나 앞으로 회복할 수 있을지 우리도 확신할 수가 없어”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이가 살아있다니 일단은 다행이었지만 아직도 완전히 마음을 놓을 수는 없었다
“여기서 떠나기전에 아이를 만나볼 수 있을까요?”
형사는 아까 전과 똑같이 이상한 방식으로 고개를 가로젓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이고 일어나서 내 옆으로 다가왔다 그리고서 아까전에 건네받은 물건을 꺼내들어 내게 보여줬다
거울을 건네받은 작은 손이 내 쪽으로 향하기도 전에 난 거울 속에서 누구의 얼굴을 보게 될지 알아차렸다 나는 다리에 힘이 풀려 서있을 수가 없었다 눈에는 눈물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창문에서 봤던 그 아이에게 한마디도 할 수 없었다 거울 속 아이에게 가족을 구하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도저히 말할 수 없었다 형사는 커다란 손으로 날 감싸안아주며 위로의 말을 건넸다
거울 속의 소년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출처 https://www.reddit.com/r/nosleep/comments/2b83vq/i_will_never_forget_the_look_of_terror_on_the
https://blog.naver.com/b14ripley/2217744374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