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

어린 시절 기억은 신기하다  나는 5번째 생일날이나 학교 간 첫날을 기억하지 못한다 하지만 우리 집에서 키우던 개가 죽은 날은 확실하게 기억한다 벌써 12년 전 일이지만 어린 시절 기억 중 가장 선명하게 떠올릴 수 있다 여동생인 애슐리와 나는 절친한 쌍둥이 자매였다 애슐리와 난 언제나 장난칠 궁리에 몰두했고 함께 말썽을 피우곤 했다

그날 우리는 집에서 키우던 고양이 퐁 코를 파란색으로 칠했다 엄마는 날 계단 위에서 애슐리는 식당에서 우릴 한 명씩 따로 혼내셨지만 우리는 서로 눈빛이 마주쳤을 때마다 같이 낄낄거렸다

엄마가 우릴 다시 한번 야단치려는 순간 현관문에 벨이 울리는 소리가 들렸다 엄마는 우리에게 꼼짝 말고 있으라는 눈빛을 보내신 후에 현관문으로 가셨다 키가 크고 깡마른 금발의 운동복 차림의 남자가 현관 입구에 어쩔 줄 몰라 하며 서있었다 눈물에 젖은 눈을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었는데 애슐리와 내가 집 안에 있다는 사실을 금세 알아차렸다


남자는 우리 집 개를 옆구리에 끼고 있었다 마치 로키가 밀가루 포대처럼 옆구리에 끼고 있었다 애슐리는 로키를 부드럽게 불렀다 하지만 우리 집 개는 움직이지 않았다 엄마와 남자는 낮은 목소리로 대화를 이어갔다 엄마는 한 손으로 입을 가리고 있었고 남자는 “잠시 호스 좀 사용할 수 있을까요”라고 정중히 물었다

엄마는 우리를 모두 위층에 있는 방으로 몰아넣으셨다  창밖을 보니 우리 집 앞에서 자동차의 범퍼를 씻는 남자의 모습이 보였다 그때가 우리가 태어나 처음으로 겪은 죽음이었고 이틀 내내 울음을 멈추지 못했다 우린 그때 겨우 6살이었다 부모님께서는 그때 일을 기회 삼아 우리에게 죽음에 대해 가르쳐주시려고 하신 것 같았다 우리는 얼마 뒤 로키를 위해 뒷마당에서 조촐한 장례식을 갖게 되었다 애슐리와 나는 전날 밤에 각자 쓴 시를 읽으면서 또다시 눈물을 흘렸었다


엄마가 우릴 데리고 있는 사이에 아빠는 로키의 이름이 새겨진 하얀색 나무 십자가를 땅 깊숙이 꽂아 넣으셨다 평소엔 방에 틀어박혀 게임만 하거나 친구들이랑 이상한 냄새 나는 담배를 피느라 얼굴도 내밀지 않던 오빠 에릭도 이번만큼은 우리와 자리를 함께했다

나는 오빠 눈에도 살짝 눈물이 맺히는 걸 볼 수 있었다 우리는 진심으로 로키를 사랑했었다 로키의 죽음은 사건이 벌어지기 전 겨우 두 달 전 일이었다 애슐리가 사라진 밤은 로키의 죽던 날 만큼 기억이 선명하진 않다
 

부모님은 그 일본으로 유학을 갈 에릭을 위해 파티를 열어주셨다 애슐리와 나는 부모님에게 수영장 파티를 하자고 떼를 썼었고 부모님은 우리에게 결국 두 손 두 발을 다 드셨다 우리는 수영장을 세례를 받기 전까지 3개월 동안 즐길 수 있었다

이상하게도 나는 그 날밤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전부 기억하진 못한다 아빠는 술에 잔뜩 취하셨소 엄마는 손님들에게 리모델링을 마친 우리 집을 구경시켜드리고 계셨다 그중에는 집 구경을 썩 내키지 않아 하는 사람들도 보였다 오빠는 친구들과 거실에서 게임에 한창이었다

애슐리와 나는 우리가 제일 좋아했던 인어공주 놀이를 하며  수영장에서 놀고 있었다

클리프 삼촌은 우리 발목을 한꺼번에 묶을 정도로 큰 고무밴드를 주셨다 인어공주가 된 것 마냥 우린 수영장을 이리저리 헤엄칠 수 있었다

해가 떨어지고 얼마 안 돼서 저녁을 먹자는 엄마 목소리가 들렸다 우리는 수영장에서 뛰쳐나와서 달려가다가 아빠한테 잔소리를 들었던 걸로 기억한다

“레이첼! 애슐리! 뛰지 말거라 아니면 밤에는 수영장에서 못 놀게 할 거야”

엄마는 우리 몫에 햄버거를 주셨고 사람들은 애슐리와 내가 짝 맞추어서 입은 수영복이 얼마나 귀여운지 칭찬을 해주셨다

어릴 적에 우리는 뭐든지 한 쌍으로 입는 걸 좋아했었다 우리는 수영장 한편에 앉아 햄버거를 먹기 시작했다 잠시 후에 우리는 다시 수영장에서 두 마리 인어가 되었다 시간이 흐르자 이제 잘 시간이라는 엄마 목소리가 들려왔다 우린 똑같이 우는 시늉을 하면서 엄마에게 좀 만 더 놀게 해달라고 졸라댔다 하지만 엄마는 우릴 다루는 법을 너무 잘 아셨다 우리는 씩씩대며 계단을 올라가 침대로 들어가 수영복을 벗고 잠옷으로 갈아입었다 그때 우리는 서로 침대와 잠옷을 바꿔 입고서 아침에 엄마에게 장난을 처보자고 했던 걸 기억한다 그건 어렸을 때 우리가 제일 좋아하는 장난이었고 엄마가 수영장에서 놀던 우릴 금방 자러 가게 했으니 거기에 맞는 우리 나름의 복수였다

수영장에서 더 놀 수 있었을 거라 생각했지만 우리도 지쳤었는지 애슐리와 나는 금방 잠에 빠졌다
 

다음 날 아침 내가 일어났을 때 나는 혼자였다 내가 그날 어떻게 무슨 옷을 입었는지 아침을 먹었는지 기억에 나지 않는다 나는 그날 하루 종일 우리 집을 돌아다니며 애슐리를 찾아헤매고 다녔다 리모델링을 했던 통에 여기저기 어린아이가 숨을 만한 좁은 장소들이 생겼고 나는 전부 돌아다니며 애슐리를 찾아다니느라 정신이 없었다

결국에 제풀에 지친 나는 엄마에게 애슐리가 어디 갔는지 물어봤다 엄마는 에릭을 방금 공항에 데려다주고 온 아빠에게 같은 질문을 했다

“폴, 에릭을 데려다줄 때 당신이 애슐리도 같이 데려갔었죠?”

“아니, 왜?”

아빠의 얼굴색이 한순간에 새파랗게 질렸다

“애슐리가 사라졌어요 걔가 있을만한 곳은 다 찾아봤는데…”

엄마가 말을 전부 마치기도 전에 아빠는 벌써 내가 이미 찾아본 방들을 돌아다니며 애슐리를 찾아다니기 시작하셨다 아빠가 돌아왔을 때는 이미 눈물범벅인 상태 섰다

“다이앤 경찰을 불러 어서”

그날 이후에 엄마는 성격이 정말 변하셨다 그때 이후로 엄마가 웃기도 울지도 않으셨다

하지만 난 달랐다

난 로키가 우리 곁을 떠났을 때만큼 울어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날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우울함을 느꼈고 큰 혼란을 느끼게 만든 사건이었다
 

애슐리가 사라지고 나서 키가 큰 경찰관이 내게 질문했던 걸 아직 기억한다 밤 사이에 무언가 들은 건 없는지

심지어 경찰은 내가 일란성 쌍둥이 자매를 맘에 들어 했는지조차 물어봤다 몇 년 동안이나 왜 그런 질문을 들어야 했었는지 혼란스러워했었다

며칠이 흐르고 일주일이 지났지만 애슐리는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침대를 옮겨 다니며 엄마와 함께 자기 시작했다

어떤 밤은 내가 애슐리인 것 마냥 침대를 썼고 내가 사라진 것 마냥 다른 침대를 사용했었다

개들을 끌고 다니는 사람들이 와서는 우리 집 뒤 숲속으로 헤집고 다녔다 기자들 자동차가 우리 집 앞에 늘어섰고 그 밤을 꼬박 새우고도 사라지지 않았다 부모님은 내가 더 이상 티브이를 보게 놔두지 않았다 경찰은 내 방과 우리 집을 거의 뒤집어놓다 했다 아마도 유서라도 찾던 게 아닐까 싶다


내 생각엔 애슐리는 도망친 게 틀림없었다 애슐리가 너무 미웠다

몇 달이 지나는 동안 나는 외롭게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다가오던 내 생일에 기분이 좋아졌지만 엄마가 아침부터 밤까지 우시는 통에 아빠가 날 데리고 나와 피자를 사주셨다 하지만 아빠도 아무 말도 하지 않으신 건 마찬가지였다 오빠는 일본 사람과 사랑에 빠져 거기서 머무르기로 결정했다 이미 18살을 넘긴 오빠를 아빠라도 도저히 말릴 수가 없었다 엄마는 한결같이 오빠와 애슐리를 그리워하셨고 와인이 없으면 잠을 이루지 못하셨다

아빠는 홀로 남은 나를 도우려고 하셨지만 내 생각에 아빠도 고통에서 자유로울 순 없었다 애슐리는 왜 장례를 치르지 않느냐고 내가 여쭤봤을 때 아빠는 말없이 뒷마당에 묻힌 로키의 나무 십자가를 비석으로 고쳐주셨다

아마 아빠는 나도 사라진 애슐리를 그리워할 장소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셨던 것 같다 사실 우리 가족 모두가 그랬다 어느 날 아빠는 ‘너티 보이’라는 이름의 개를 데려오셨다 난 로키인 척 우리 가족에 끼어드는 그 개가 싫었다 로키는 로키다 다른 개가 로키가 될 수는 없었다

결국 너티 보이는 어느 날 도망치고 말았다 우리 가족 중 누구도 개를 찾으러 돌아다니지 않았다

애슐리가 사라지고 4개월 지나자 아빠는 수영장을 메우기로 하셨다 나는 이젠 휑하고 차가워진 방에 앉아 사람들이 수영장에 물을 빼는 모습을 지켜봤었다

수영장을 흙으로 메꾸는 데는 꼬박 이틀이 걸렸다

수영장은 그때 내가 느끼던 마지막 즐거움이었다 아빠는 그런 수영장을 치워버렸다 아빠는 오빠와의 관계도 끊어버렸다 아빠는 모든 걸 없어버렸다


어느 날 오후 난 거실에서 티브이를 이리저리 돌려보고 있었다

순간 스크린에 내 얼굴이 스쳐 지나가자 난 리모컨을 떨어트렸아 ‘미해결의 미스터리’라는 프로그램이었다

엄마가 걸어오시더니 내 곁에 앉아 같이 보시기 시작했다

나는 내가 실수를 한 게 아닐까 긴장했지만 엄마는 무표정한 얼굴로 나를 한번 보시더니 다시 가버리셨다 나는 티브이를 껐다 엄마랑 아빠는 내가 듣지 못한다고  생각하셨는지 서로에게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두 분의 결혼 생활은 삐걱대기 시작했다

애슐리를 어딘가에서 봤다는 제보 전화가 끊이질 않았다

하지만 거의 전부 다 쌍둥이였던 날 봤다는 내용일 뿐이었다

이런 식의 일이 계속 반복되자 엄마는 내가 죄인인 양 쳐다보기 시작하셨다 마치 엄마가 일부러 희망을 가지게 놔두고서 내가 걷어차버렸다는 듯이 날 대했다 거짓 증언이 나올 때마다 엄마는 점점 죽어가는 듯 하셨다 그때쯤 나는 우리 가족 누구도 날 더 이상 좋아하지 않는지 알 수 있었다 난 우리 가족에게 유령이었으며 내 동생의 실체 없는 메아리였다 실종된 여동생을 맴도는 창백한 그림자일 뿐이었다 부모님은 더 이상 나와 마주치지 않으려 하셨다 내가 몰랐으면 하셨겠지만 난 이미 눈치채고 있던 사실이었다


우리는 결국 애슐리의 장례식을 치르기로 했다 하지만 잘 기억에 나지 않는다 로키가 죽었을 때만큼도 기억에 나지 않는다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은 빈 관을 땅에 묻고 장례를 치른다는 게 얼마나 바보 같은 건지 생각했을 뿐이다 1년 후에 엄마는 이혼 서류를 준비하셨다 아직도 두 분이 마지막으로 싸운 날이 기억이 난다 두 분 사이는 이미 막장에 치달아서는 내가 듣든지 말든지 상관도 하지 않으셨다

“내 동생은 절대 아이들에게 손 대지 않아 뭐라도 잘 못 먹은 거 아니야? 다이앤?
아무나 붙잡고 유괴범으로 몰아가지 마”

“애슐리는 유괴당한 게 아닌 거 알잖아 폴“

엄마가 우리 중 누구도 듣고 싶지 않던 진실을 내뱉었다

“우리 아이는 이미 죽었다고! 당신도 이미 모를 일이 아니잖아”

“내 앞에서 그런 말을 하다니 애슐리는 내 아이기도 해 난 내 아이들을 전부 사랑한다고!”

“어련하시겠어, 레이첼만큼은 앞으로 만날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짝-

그때 나는 내 뺨을 맞은 것처럼 뒤로 넘어질 뻔했다 왜 엄마가 그런 말을 하셨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눈물이 앞을 가리기 시작했다 바보 같은 애슐리 왜 그날 그냥 침대에서 얌전히 있지 않았지? 왜 갑자기 밖을 돌아다닌 걸까? 애슐리는 정말 어디로 간 거지? 애슐리는 우리가 이렇게 된 걸 알까?

그런 생각을 하던 와중에 옆방에서 다시 속삭이듯 조용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당신, 수영장은 왜 메꿔버린 거야?”

난 그 말을 듣자마자 방문을 열고 뛰쳐나갔다 그 질문을 이해하고 싶지 않았다 뭐라고 하실지 아빠의 답을 듣고 싶지 않았다

몇 년이 지나고 엄마는 바비라는 다른 남자를 만나 우리 집을 나가셨다 아빠와 나는 그대로 남아 냉랭하고 조용하게 삶을 이어갔다 나는 아빠를 무조건적으로 피해 다녔다 나는 친구네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점점 많아졌고 아빠는 아빠대로 서재에 박혀 나오시질 않으셨다
 

그 다음 해 여름, 아빠는 메꿔버린 수영장 위에다가 발코니를 지으셨다 하지만 아무런 가구를 두시지 않았다 내가 13살이 되었을 때 엄마가 아빠의 동생이신 클리프 삼촌과 살고 계신 걸 알게 되었다 그 집에 가야 하는 게 정말 싫었다 클리프 삼촌 집에는 설치식 수영장이 있었다 항상 클리프 삼촌은 나보고 한번 수영하러 오라고 초대하곤 하셨다 어찌나 극성이셨는지 나한테 수영복도 사주신 적도 있었다 삼촌이 사준 작은 비키니 수영복은 보기에도 꺼림칙했는데 내가 삼촌네 집에 가면 항상 침대 맡에 올려져 있었다

하지만 나는 삼촌하고 수영장에 들어가는 일은 없었다 수영장이 보기만 해도 너무 싫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두 분이 날 초대하는 일이 없어졌다

아빠는 매일 밤마다 서재에서 나오시질 않으셨다 방을 아예 집 뒤편으로 옮기시고서 문을 아예 잠가두시고 나조차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셨다

나는 18살이 되자 집에서 나와 독립했다 아빠는 내가 집을 나오던 날 나를 꼭 안아주셨다 그때가 처음으로 아빠가 날 똑바로 봐주신 날이었다 7년 만의 대화는 감흥도 덜 했다 포옹과 함께 아빠는 날 사랑한다고 속삭이시고서 다시 뒤돌아 서재로 들어가 버리셨다 그리고 다시 문을 잠갔다 그렇게 나는 그 집을 떠났다 새 아파트로 이주한지 3주 후 경찰이 찾아왔다 경찰은 나를 앉혀놓고서 아빠가 죽은 채로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전해줬다

그날 밤 나는 집으로 다시 돌아갔다 서재에서 앉은 채로 아빠는 목숨을 끊었다고 하셨다 드디어 아빠가 있던 서재를 처음으로 보게 되었다 시체는 이미 치운 상태였지만 핏자국은 그대로 남아있었다 난 처음 들어와 본 서재를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서재는 별다른 가구들이 없었다 서재에 있는 거라고는 책상 하나, 의자 하나, 사진 7장, 그리고 노트북 한 권과 그림 한 장이 전부였다 책상은 방 한가운데에 있었고 뒷마당이 바로 보이는 창문을 마주하고 있었다 사진들은 애슐리와 내 모습이 찍혀있었다 오래된 그림 한 장은 애슐리가 사라지기 얼마 전에 우리 가족 모습을 그린 것이었다 노트북은 마지막 장을 빼면 전부 비어있었다
 
공책은 2002년 8월 16일 밤에 일어난 일이라고 적혀있었다

하지만 그 밑에는 아무것도 적혀있지 않았다

의자는 피투성이가 되어있었지만 충격을 받은 나는 주저 없이 그냥 걸터앉았다 범인은 아빠였다 그날 들었던 엄마가 속삭이던 그 말이 사실이었다 아빠가 내 여동생을 죽였다

“무슨 짓을 한 거예요 아빠..”

나는 조용히 혼잣말을 내뱉고서 무심코 창밖을 본 나는 로키의 무덤이 바로 보여 놀랐다 너무 가까이 있어서 묘비명마저 읽을 수 있을 정도였다


“지금이 힘든 시기인 건 알고 있지만 이 공책에 쓰인 대로라면 우린 마당을 파볼 영장을 받을 수도 있어요”

나는 내 옆에 서있는 형사를 올려다봤다 정중히 예의를 차리려는 말투였다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무례한 일인 건 알지만 레이첼 씨에게 먼저 묻고 싶군요”

난 다시 한번 마당을 돌아봤다 아빠가 여름 내내 지어놓고서 한 번도 쓰지 않은 발코니가 눈에 들어왔다 저 밑에 무엇이 묻혀있는 걸까?  자리에서 일어난 나는 아무 표정도 싣지 않은 눈으로 형사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파보세요”

난 경찰들이 무엇을 발견할지 예상을 하고 있었다 어쩌면 엄마는 여태껏 알고 있던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의 예상은 모두 틀렸다

발굴에는 꼬박 6일이 걸렸다 첫 번째로 경찰은 발코니를 전부 뜯어냈다 같은 주에 나는 계속 내 오래된 방에 묵으면서 작업하는 모습을 창문 너머로 지켜봤다 이제는 크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방이었다 오히려 너무 작고 숨 막힐 정도였다
 

나는 아빠의 시신을 될 수 있는 대로 빨리 화장해버리고서 근처에 재를 뿌렸다 유골함도 그냥 그곳에다 버리고 와버렸다

첫 번째 시신은 목요일 오후 11시 29분에 발견됐다 누군가 고함을 지르는 소리에 잠이 깬 나는 옷을 갈아입고서 빠르게 계단을 뛰어내려갔다
뒷마당은 조명장치 때문에 온통 환했다

여기저기 파헤쳐 진 흙무더기를 디디고 지나고 포렌식 요원들이 모여있는 곳으로 건너갔다

나는 내 어깨를 스스로 감싸고서 그들 어깨너머로 발견된 유골이 보였다

“그건 내 여동생이 아니에요”

작업하던 경찰들은 전부 나를 돌아봤다

“저 사람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야?”

“저건 애슐리가 아니에요”

난 다시 말했다 누군가 내 팔을 붙잡는 게 느껴졌다

“저건 누구예요? 내 동생이 아니라고요! 저 뼈는 누구예요?"

난 이미 제정신이 아닌 상태로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사람들이 몰려와 날 끌어내렸다 난 그날 밤 내내 담요로 몸을 감싸고서 자리를 지켰다

이해할 수 없었다 저건 도대체 누구지 내 동생의 시체가 아니었다 애슐리는 나랑 쌍둥이였고 내 몸은 저렇지 않았다 그 뼈는 아이의 시체라고 하기엔 너무도 크고 길었다

내 여동생이 아니라면 도대체 누구지?

새벽이 돼서야 드디어 나는 경찰에게서 말을 들어볼 수 있었다

“레이첼 씨”

“누구죠?”

백 번은 이미 물어봤던 질문이었다

“레이첼 씨, 지금 이 시점에서 확실하진 않지만, 발견된 유골은... 유감스럽게도
 레이첼 씨의 오빠분 것으로 보입니다”

“그럴 리 없어요”

고개를 저으며 높낮이 없는 목소리로 내가 말했다

“오빠는 일본에 있고 결혼했다고요 지금 서른이에요”

“혹시 주소나 전화번호를 아시나요?”

“아뇨, 그게 오빠랑은 가족과 연락이 끊겼어요”

“알겠어요, 법의학 팀에서 시신을 회수했으니 곧 알게 될 겁니다 조금만 더 기다리시면 돼요"

기다리면 된다니, 그게 무슨 무책임한 말일까 과거 일이 잿더미로 겨우 쌓아올린 더러운 세상이 무너지기 시작하고 있었다

수영장에 있던 건 누구지? 며칠 동안 머릿속에 그 질문이 계속해서 맴돌았다 에릭일 리가 없다 말이 되지 않았다 에릭은 일본에서 돌아오지 않았다면 가능할 리가 없다 만약에 오빠가 일본에서 돌아왔다면 내가 모를 리가 없었다 그랬다면 에릭은 분명 날 보러 왔을 테니까


 며칠 후에나 드디어 답변을 받을 수 있었다 에릭은 일본에서 돌아온 적이 없었다 에릭은 이곳을 떠난 적이 없었다 그의 몸은 거의 완전히 썩어버려서 형체를 알아볼 수 없었지만 그가 하고 다니던 싸구려 플라스틱 행운을 빌어주는 목걸이는 그대로 남아있었다 경찰은 에릭의 사망 시점을 파티 당일 밤으로 추정했다

더 이상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경찰이 발견한 것들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내 정신은  무너지기 시작했다

수영장에서 경찰이 또 다른 유골을 발견했을 때 난 집에 머무르고 있지 않았다 이번에는 로키의 유골이었다 집에 들어갔을 때 증거품 상자에 담긴 로키의 유골을 보여줬다 그것이 전부였다

나는 가만히 상자 안에 더러운 뼈를 내려다봤다 애슐리가 어디에 있는지 알 것 같았다

왜 아빠가 서재를 옮기셨는지도 알 것 같았다 이제 나무로 되어있던 로키의 묘비를 왜 하얀 고급 대리석 묘비로 바꾸셨는지도 알 것 같았다 아빠가 왜 묘비에 “내가 여전히 사랑하는 목소리”라고 새기셨는지도 이해할 수 있었다 묘비에 새겨진 날짜가 왜 로키가 죽었던 날과 맞지 않았는 지도


애슐리의 작은 몸은 그대로 보존되어 있었다 얼마나 작았는지 알게 되자 내 몸이 떨려왔다

난 그렇게 내 몸이 그렇게나 작았었는지 기억하지 못했다 아빠는 애슐리는 정말 정성스레 묻어주셨던 것 같다 애슐리의 몸은 내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소재의 하얀 가방 안에 들어있었다

애슐리는 가방 속에서 완벽하게 미라처럼 굳어있었다 너무나 평화로워 보였고 아름다웠다


난 경찰들이 애슐리를 철판 위에 조심스럽게 올려두는 걸 지켜봤다 경찰들은 다른 가방 안에 동생을 넣고서 지퍼를 올렸다 그런 뒤에 가방 채로 애슐리를 승합 차에 태우고서 우리 집을 떠나는 것까지 가만히 지켜봤다 나는 하얀 대리석 묘비 곁에 앉았다 12년 동안 애슐리는 그곳에 묻혀있었다 창문을 통해 아빠가 앉곤 했던 책상과 의자가 바로 보였다 그곳에서 꼬박 밤을 새웠다

사람들이 물과 차를 가져다주었지만 난 그저 파헤쳐 진 구멍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혼란스러웠고 화가 났고 그제서야 상실감이 밀려왔다


시신을 발굴해낸 경찰들은 다음날 모두 철수했다 벨러라고 자신을 소개한 담당 형사가 이른 새벽부터 나를 찾아왔다 애슐리 시신의 상태 때문이었다 애슐리로부터 증거를 수집할 수 있었다고 했고 현재 연구실에서 대기 중이라고 전했다 무슨 사건의 증거냐고 물었지만 형사는 답해주지 않았다

난 공식 사건 내용을 보고받은 날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난 그때 몇 달 동안 연락이 되질 않던 엄마와 전화 통화 중이었다 엄마는 클리프 삼촌과 필라델피아에 있었고 둘 다 헤로인을 복용한 상태였다


경찰이 엄마를 찾고 있다고 전해드렸다 애슐리와 아빠한테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전부 말씀드렸다 하지만 오빠가 어떻게 됐는지는 아직 전하지 못했다 나로선 전화로 도저히 얘기할 수 없는 말이었다 하지만 엄마는 제대로 듣지 않았다 계속해서 같은 질문만을 반복해서 물어보셨다 내가 한 말을 되풀이하실 뿐이었다 난 엄마의 연락처를 받아 적고서는 전화를 끊을 수밖에 없었다

벨러 형사가 알아서 할 일이었다

내가 전화를 끊자마자 벨러 형사에게서 전화가 왔다


“레이첼 씨, 부검 결과가 나왔습니다 서로 와주시겠어요?”

한숨이 절로 나왔다 시간은 이미 늦은 밤이었다 엄마와의 말이 안 통하는 대화 끝에 이미 난 지칠 대로 지친 후였고 감정적으로도 힘이 없었다 오늘 밤에 번화가까지 가기엔 도저히 힘이 나질 않았다

“그냥 전화로 전해주시면 안 될까요? 형사님, 오늘 밤에는 거기까지 못 가긴 힘들 것 같아요”

“어디시죠? 제가 차를 보내겠습니다”

“그냥… 그냥 전화로 지금 말씀해주세요 거기, 그 방에 다시 못 들어가겠어요 여동생하고 오빠를 그런 식으로 보는 게 너무 힘들어요”

형사는 잠시 동안 말이 없더니 결심한 듯 입을 열었다

“레이첼 씨, 애슐리 몸에서 정액 반응이 나왔어요

“네?”

난 처음에 잘 못 들은 줄로만 알았다

“애슐리의 목에 줄을 감았던 흔적도 발견했고요  살인이라고 합니다”

“아, 하지만... “

“실수일 리는 없어요”

“처음에 뭐라고 하셨는지 다시 말씀해주시겠어요 제가 듣기론...”

“레이첼 씨, 이건 강간 사건이에요”

아니, 말도 안 돼,

“우리 아빠는 그러실 분이 아니에요”

“아버님 유전자와 일치하지 않습니다 오빠분의 것이에요”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움직일 수조차 없었다 몸이 다시 떨려오기 시작했다

“보통 이렇게 직설적으로 답해드리지는 않습니다만, 힘든 일을 많이 겪으셨고, 꼭 아셔야 한다고 생각해서 전해드리는 겁니다 우리 측 결론은 이렇습니다
2002년 8월 16일, 에릭 씨는 동생분과 당신이 자고 있던 방으로 들어갔고 애슐리를 데리고 나왔습니다 그리고서 약에 취하게 만들고서 실수로 목을 졸라 살해했습니다
아버님께서 그 장면을 보시고서 오빠분을 구타하다 그만 죽여버린 것이죠
이 일은 파티가 있던 날 늦은 저녁 혹은 이른 아침으로 추정됩니다 그리고 아버님께선 두 시신을 어딘가 한 달간 감춰뒀다가 수영장에 넣고 메워버린 겁니다”

“오빠는 분명 일본에 간다고 했어요“

“아뇨 그건 사실이 아닙니다”

“아빠가 두 명 다 죽였을 리가-”

“아뇨 아버님께선 오빠분의 죽음에만 책임이 있으십니다 치정 범죄죠 그리고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아버님께서 그럴 시간이 충분하셨는지 확실치는 않습니다 그냥 자백하시지 않은 이유를 잘 모르겠군요”

나는 다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나는 그 이유를 알고 있었다 나와 엄마 때문이었다 애슐리의 실종은 우리 가족을 파탄으로 몰고 갔다 하지만 우리는 계속해서 희망을 잃지 않고 있었다

언젠가 애슐리가 어디선가 발견되고 돌아올 거라는 희망 하지만 내 동생은 한 번도 집을 떠난 적이 없었다 우리가 사랑하던 오빠와 그런 짓을 한 괴물을 어떻게 같은 존재라고 믿을 수 있었을까

아빠는 이 사실을 깨닫고서 혼자 짊어지시기로 결정하셨다 아빠의 희생은 엄마에겐 소용없었던 일이었지만 나에게는 달랐다


애슐리가 돌아올지 모른다는 희망과 에릭과 부모님에 대한 사랑은 발붙일 땅이 없던 어려운 시절 많은 것을 견디게 해주었다 아빠가 날 위해 짊어진 짐의 무게는 헤아릴 수 없는 정도였다

그런 줄 몰랐던 나는 아빠의 시신을 화장해서 고속도로 위에 뿌려버렸다 그렇게나 견디면서 지키려고 했던 우리 가족 곁에는 묻힐 수 없는 몸이 되어버렸다

그런 몹쓸 짓을 해버린 건 바로 나였다

아빠는 괴물이 아니었다

괴물은 바로 나였다


나는 관에 아빠 책상에서 발견된 사진들과 아빠가 자신의 가슴팍을 쐈을 때 갖고 있던 그림을 넣었다 그리고 이번엔 내가 빈 관을 묻었다 애슐리의 시신은 아빠 곁에 묻어줬다

2년 후에 반대편에 엄마의 관을 묻었다 에릭의 시신은 어디로 갔는지 돌려주지 않았고 나도 물어보지 않았다

이건 네가 보내는 편지야 애슐리, 어떤 일이 있던 건지 알려주고 싶었어 그리고 미안하다는 말을 하고 싶었어

그날 밤 내가 아니라 널 데려가게 만들어서 미안해

난 네가 도망쳤다고 생각했었어 그리고 한 번도 찾아보려고 하지 않았어 미안해

널 가장 사랑했던 아빠를 혼자 버려뒀었어 미안해

아빠를 잊어버리려고 제대로 장례를 치르지 못해드린 것도 미안해

우리 가족을 망가트린 게 다 너 때문이라고 원망했었던 것도 미안해


나 혼자 이렇게 살아남아서

정말 미안해


출처 https://www.reddit.com/r/nosleep/comments/26wytd/the_disappearance_of_ashley_morgan
https://blog.naver.com/b14ripley/221779417831
  • tory_1 2020.01.22 02:23
    와...진짜 슬프고 눈물난다...
    오빠 새끼 하나 때문에 가정이 파멸났네...
  • tory_2 2020.01.22 05:20

    슬프다 ㅠㅠㅠㅠ

  • tory_3 2020.01.22 08:24
    애슐리ㅠㅠ안타까워
  • tory_4 2020.01.22 10:09

    오빠 새끼 혐오스럽다....

  • tory_5 2020.01.22 16:31

    아버지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 tory_6 2020.01.25 13:10
    정말 비극적인 이야기다 아버지 너무 불쌍해......ㅜㅜㅜㅜㅜ
  • tory_7 2020.01.27 13:39
    가슴이 너무 먹먹해.. 여운이 크다ㅠ
  • tory_8 2020.02.03 19:17
    휴ㅠㅠㅠㅠ슬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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