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리정원

내려놓으면 된다

구태여 네 마음을 괴롭히지 말거라

부는 바람이 예뻐

그 눈부심에 웃던 네가 아니었니

 

받아들이면 된다

지는 해를 깨우려 노력하지 말거라

너는 달빛에 더 아름답다

 

<너에게>, 서혜진

 

 



꽃이

지는 건 쉬워도

잊는 건 한참이더군

영영 한참이더군

 

<선운사에서>, 최영미



 

 

과거를 팔아 오늘을 살지 말 것

현실이 미래를 잡아먹지 말 것

미래를 말하며 과거를 묻어버리거나

미래를 내세워 오늘 할 일을 흐리지 말 것

 

<경계>, 박노해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풀꽃>, 나태주



 

 

잠시 훔쳐본 불꽃이었지만

그 온기를 쬐고 있는 동안은

세상 시름, 두려움도 잊고

따뜻했었다

 

고맙다

네가 내게 해준 모든 것에 대해

주지 않은 것들에 대해서도

 

<옛날의 불꽃>, 최영미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중략)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 김춘수



 

 

낡은 연습장을 하나 찢어

'외로워', 세 글자 쓰고 나서

한참을 울었다

 

<외로워>, 서덕준

 

 



얼어붙은 호수는 아무것도 비추지 않는다

불빛도 산 그림자도 잃어버렸다

제 단단함의 서슬만이 빛나고 있을 뿐

아무것도 아무것도 품지 않는다

헛되이 던진 돌멩이들

세떼 대신 메아리만 쩡 쩡 날아오른다

 

네 이름을 부르는 일이 그러했다

 

<천창호에서>, 나희덕



 

 

그리운 날은 그림을 그리고

쓸쓸한 날은 음악을 들었다

 

그러고도 남는 날은

너를 생각해야만 했다

 

<사는 법>, 나태주

 

 



아버지는 두 마리의 두꺼비를 키우셨다.

 

해가 말끔하게 떨어진 후에야 퇴근하셨던 아버지는 두꺼비부터 씻겨주고 늦은 식사를 했다. 동물 애호가도 아닌 아버지가 녀석에게만 관심을 갖는 것 같아 나는 녀석을 시샘했었다. 한번은 아버지가 녀석을 껴안고 주무시는 모습을 보았는데 기회는 이때다 싶어서 살짝 만져 보았다. 그런데 녀석이 독을 뿜어내는 통에 내 양 눈이 한동안 충혈되어야 했다. 아버지, 저는 두꺼비가 싫어요.

 

아버지는 이윽고 식구들에게 두꺼비를 보여주는 것조차 꺼리셨다. 칠순을 바라보던 아버지는 날이 새기 전에 막일판으로 나가셨는데 그때마다 잠들어 있던 녀석을 깨워 자전거 손잡이에 올려놓고 페달을 밟았다.

 

두껍아 두껍아 헌집 줄게 새집 다오

 

아버지는 지난 겨울, 두꺼비집을 지으셨다. 두꺼비와 아버지는 그 집에서 긴 겨울잠에 들어갔다. 봄이 지났으나 잔디만 깨어났다

 

내 아버지 양 손엔 우툴두툴한 두꺼비가 살았었다

 

<두꺼비>, 박성우

 



 

바람도 달빛도 아닌 것,

갈대는 저를 흔드는 것이 제 조용한 울음인 것을

까맣게 몰랐다.

산다는 것은 속으로 이렇게

조용히 울고 있는 것이라는 것을

그는 몰랐다.

 

<갈대>, 신경림

 

 



가끔 네 꿈을 꾼다

전에는 꿈이라도 꿈인 줄 모르겠더니

이제는 너를 보면

, 꿈이로구나,

알아챈다

 

<>, 황인숙



 

 

낮은 곳에 살고 싶었다.

낮은 곳이라면 지상의 어디라도 좋다

 

찰랑찰랑 물처럼 고여들 네 사랑을

온몸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면

한방울도 헛되이

새어 나가지 않게 할 수만 있다면

 

그래, 내가 낮은 곳에 있겠다는 건

너를 위해 나를 온전히 비우겠다는 뜻이다

나의 존재마저 너에게 흠뻑 주고 싶다는 뜻이다

 

잠겨 죽어도 좋으니 

너는 물처럼 내게 밀려오라.

 

<낮은 곳으로>, 이정하

 

 



그대여,

이제 그만 마음 아파해라.

 

<별빛>, 안도현

 



 

가을이다, 부디 아프지 마라

 

<멀리서 빈다>, 나태주

 

 



큰 슬픔이 거센 강물처럼

네 삶에 밀려와 마음의 평화를 산산조각내고

가장 소중한 것을 네 눈에서 영원히 앗아갈 때면

네 가슴에 대고 말하라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랜터 윌슨 스미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

흔들리면서 줄기를 곱게 세웠나니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

 

젖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빛나는 꽃들도

다 젖으며 젖으며 피었나니

바람과 비에 젖으며 꽃잎 따뜻하게 피웠나니

젖지 않고 가는 삶이 어디 있으랴

 

<흔들리며 피는 꽃>, 도종환

 

 



내 그대를 사랑함에 있어서 한 점 부끄럼 없다

 

단지 후회를 하자면 그날

그대를 내 손에서 놓아버린 것뿐

 

어느새 화창하던 그날이 지나고

하늘에선 차디찬 눈이 내려오더라도

그 눈마저 소복소복 따뜻해 보이는 것은

그대를 향한 내 사랑일까

 

꽃이 진다고 그대를 잊은 적 없다

 

<꽃이 진다고 그대를 잊은 적 없다>, 청하

 



 

너에게로 가지 않으려고 미친 듯 걸었던

그 무수한 길도

실은 네게로 향한 것이었다

 

(중략)

 

나의 생에는

모든 지름길을 돌아서

네게로 난 단 하나의 에움길이었다


<푸른 밤>, 나희덕

 



 

모두가 내 그늘에서 쉬어가길 바랬다

머리 희끗해진 겨울산에서

발 밑을 바라보니

오히려 내가

누군가의 등을 딛고 서있었다.

 

<정자나무가 되어>, 전숙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귀천>, 천상병



 

 

가난하다고 해서 외로움을 모르겠는가

너와 헤어져 돌아오는

눈 쌓인 골목길에 새파랗게 달빛이 쏟아지는데

 

가난하다고 해서 두려움이 없겠는가

두 점을 치는 소리

방범대원의 호각소리 메밀묵 사려 소리에

눈을 뜨면 멀리 육중한 기계 굴러가는 소리

 

가난하다고 해서 그리움을 버렸겠는가

어머님 보고 싶소 수없이 뇌어보지만

집 뒤 감나무에 까치밥으로 하나 남았을

새빨간 감 바람소리도 그려보지만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

내 볼에 와 닿던 네 입술의 뜨거움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속삭이던 네 숨결

돌아서는 내 등 뒤에 터지던 네 울음

 

가난하다고 해서 왜 모르겠는가

가난하기 때문에 이것들을

이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가난한 사랑 노래>, 신경림

 



 

여승은 합장하고 절을 했다.

가지취의 내음새가 났다.

쓸쓸한 낯이 옛날같이 늙었다.

나는 불경처럼 서러워졌다.


평안도의 어느 산 깊은 금점판

나는 파리한 여인에게서 옥수수를 샀다.

여인은 나 어린 딸아이를 때리며 가을밤같이 차게 울었다.


섶벌같이 나아간 지아비 기다려 십 년이 갔다.

지아비는 돌아오지 않고

어린 딸은 도라지꽃이 좋아 돌무덤으로 갔다.


산꿩도 섧게 울은 슬픈 날이 있었다.

산절의 마당귀에 여인의 머리오리가 눈물방울과 같이 떨어진 날이 있었다.

 

<여승>, 백석

 

 



인생이 추울 때 너를 만나

나를 꽃으로 대해 준 네가 고맙다

 

<만남 1>, 하금주



 

 

얼굴 하나야

손바닥 둘로

푹 가리지만

 

보고픈 마음

호수만 하니

눈 감을 밖에

 

<호수>, 정지용

 

 



바람이 불었다.

 

나는 비틀거렸고,

함께 걸어주는 이가

그리웠다.

 

<바람 속을 걷는 법 1>, 이정하



 

 

무한히 낙담하고

자책하는 그대여

 

끝없이 자신의 쓸모를

자문하는 영혼이여

 

고갤 들어라

 

그대도 오늘

누군가에게 위로였다

 

<그대도 오늘>, 이훤

 



 

어두운 길을 걷다가

빛나는 별 하나 없다고

절망하지 말아라

 

가장 빛나는 별은 지금

간절하게 길을 찾는 너에게로

빚의 속도로 달려오고 있으니

 

<별은 너에게로>, 박노해

 



 

내가 너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너는 몰라도 된다

 

너를 좋아하는 마음은

오로지 나의 것이요,

나의 그리움은

나 혼자만의 것으로도

차고 넘치니까

 

나는 이제

너 없이도 너를

좋아할 수 있다.

 

<내가 너를>, 나태주

 



 

아픈데는 없냐고 당신이 물었다

없다, 라고 말하는 순간

말과 말 사이의 삶들이 아프기 시작했다.

 

<눈사람 여관>, 이병률

 

 



그날, 텔레비전 앞에서 늦은 저녁을 먹다가

울컥 울음이 터졌다

멈출 수 없어 그냥 두었다

오랫동안 오늘 이전과 이후만 있을 것 같아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 밤, 다시 견디는 힘을 배우기로 했다

 

<그날> 곽효환

 

 



아버지,

술 한 잔 걸치신 날이면

넌 나처럼 살지 마라

 

어머니,

파스 냄새 물씬한 귀갓길에

넌 나처럼 살지 마라

 

이 악물고 공부해라

좋은 사무실 취직해라

악착같이 돈 벌어라

 

악하지도 못한 당신께서

악도 남지 않은 휘청이는 몸으로

넌 나처럼 살지 마라 울먹이는 밤

 

내 가슴에 슬픔의 칼이 돋아날 때

나도 이렇게는 살고 싶지 않아요

스무 살이 되어서도

내가 뭘 하고 싶은지도 모르겠고

꿈을 찾는 게 꿈이어서 억울하고

 

어머니, 당신의 소망은 이미 죽었어요.

아버지, 이제 대학 나와도 내 손으로

당신이 꿈꾸는 밥을 벌 수도 없어요

 

넌 나처럼 살지 마라, 그래요.

난 절대로 당신처럼 살지는 않을 거예요

자식이 부모조차 존경할 수 없는 세상을

제 새끼에게 나처럼 살지 말라고 말하는 세상을

난 결코 살아남지 않을 거예요

 

아버지, 당신은 나의 하늘이었어요

당신이 하루아침에 벼랑 끝에서 떠밀려

어린 내 가슴 바닥에 떨어지던 날

어머니, 내가 딛고 선 발밑도 무너져 버렸어요

그날, 내 가슴엔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공포가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상처가 새겨지고 말았어요.

 

세상은 그 누구도 믿을 수 없고

그 어디에도 기댈 곳도 없고

돈 없으면 죽는구나

그날 이후 삶이 두려워졌어요

 

넌 나처럼 살지 마라

알아요, 난 죽어도 당신처럼 살지는 않을 거예요

제 자식 앞에 스스로 자신을 죽이고

정직하게 땀 흘려온 삶을 내팽개쳐야 하는

이런 세상을 살지 않을 거예요

나는 차라리 죽어 버리거나 죽여 버리겠어요

돈에 미친 세상을, 돈이면 다인 세상을

 

아버지, 어머니,

돈이 없어도 당신은 여전히 나의 하늘입니다

당신이 잘못 산 게 아니잖아요

못 배웠어도, 힘이 없어도,

당신은 영원히 나의 하늘입니다

 

어머니, 아버지,

다시 한번 예전처럼 말해주세요

나는 없이 살아도 그렇게 살지 않았다고

나는 대학 안 나와도 그런 짓 하지 않았다고

어떤 경우에도 아닌 건 아니다

가슴 펴고 살아가라고

 

다시 한번 예전처럼 말해주세요

누가 뭐라 해도 너답게 살아가라고

너를 망치는 것들과 당당하게 싸워가라고

너는 엄마처럼 아빠처럼 부끄럽지 않게 살으라고

다시 한번 하늘처럼 말해주세요

 

<넌 나처럼 살지마라>, 박노해

 




나는 힘들거나 힐링이 필요할 때 시를 읽어..ㅎㅎ

시 읽으면서 위로도 많이 받고 그래서

토리들한테도 꼭 보여주고 싶었어ㅎㅎ

긴 시들 읽어줘서 고마워~

혹시 문제되는 부분 있으면 댓글로 조심스럽게ㅎㅎ 알려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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