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쯤부터 한국 사회에서, 특히 대중문화 쪽에서 즐겨 사용된 용어가 있다. 브러더(brother)와 로맨스(romance)의 합성어인 ‘브로맨스(bromance)’다. 남성들 사이의 ‘우정 이상의 우정’을 표현하는, 호모섹슈얼 관계는 아니지만 강한 정서적 친밀감과 연대감을 의미하는 이 단어는, 21세기의 좀 더 개방된 젠더 감수성을 드러내는 용어이기도 하다. 이 말이 등장한 건 최근이지만, 그 오지랖은 동서고금을 막론한다. <삼국지>에서 도원결의를 했던 유비, 관우, 장비부터 시작했다고 봐야 할까? 브로맨스는 인류가 오래전부터 즐겨왔던 서사임이 틀림없다.
의형제·공작·강철비·JSA…
비극적 역사·현실, 극적 설정
이보다 더 강력한 토대는 없어
강렬한 액션의 북측 캐릭터와
푸근한 남쪽 파트너 이미지는
남쪽이 ‘북’ 품는다는 메시지
남자 만의 우정·연대 표현 방식
여성 캐릭터 배제된 결과라 아쉬워
이제라도 ‘워맨스’ 흐름 시작해야
예능 프로그램이나 아이돌 문화에서도 종종 발견되지만, 브로맨스가 빈번하게 콘셉트로 사용되는 대표적 분야 중 하나는 영화다. 두 명 이상의 남성 캐릭터들이 등장해 순수한 의리와 우정을 나누고, 희생과 헌신의 결단을 하며, 서로에게 이타적인 마음을 쓰는 영화들. 약간 말랑말랑한 뉘앙스로 ‘남남케미’라는 표현이 사용되기도 하지만, 브로맨스의 진지한 감정은 흡사 ‘홍콩 누아르’를 연상시킨다. 특히 대립관계의 두 남자가 나누는 브로맨스는 관객의 마음을 강하게 움직인다. <신세계>(2013)가 대표적이다. 언더커버 형사 이자성(이정재)과 범죄조직 골드문의 실세 정청(황정민)의 관계를 다룬 이 영화는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2017)이나 <프리즌>(2017) 같은 영화에서 그 공식이 반복되기도 하는데, 그 핵심은 ‘신뢰’다. 서로를 어디까지 믿을 수 있는가. 상대방의 정체를 알았을 때 그를 어떻게 대할 것인가. 여기서 갈등이 발생한다. 상관인 강 과장(최민식)은 작전 성공을 위해 이자성을 바짝 조이고, 정청은 이자성을 ‘브라더’로 대한다. 경계선을 넘어버린 이자성은 고뇌한다. 나는 경찰인가 범죄자인가. 신임을 얻기 위해 했던 거짓 충성의 행동들을 통해, 어느새 적에 대한 진짜 감정이 쌓여 버린 것이다.
악당들도 마찬가지다. 결국 언더커버의 정체는 탄로나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그를 제거하지 않는다. 피도 눈물도 없는 범죄자들임에도 머뭇거리는 건, 인간적 호감을 저버리기 힘든 일말의 감정 때문이다. 남은 건 선택이다. 관계를 지킬 것인가, 각자의 목적을 위해 비정하게 돌아설 것인가. ‘버디 무비(buddy movie)’가 두 남자의 파트너십을 호쾌하게 풀어낸다면, ‘적대적 공생 관계’에서 생겨난 브로맨스의 세계는 좀 더 끈적끈적하고 비장하며 뭉클하다.
그런 면에서 <공작>은, 2018년이 아직 4개월 정도 남긴 했지만, 감히 ‘올해의 브로맨스 영화’로 꼽을 만하다. 실화를 바탕으로 하는 이 영화는 암호명 ‘흑금성’인 북파 간첩 박석영(황정민)이 핵 시설 정보를 빼내기 위해 신분을 감추고 북에 접근하는 이야기다. 사업가로 위장한 박석영은 북한의 대외사업 책임자인 리명운(이성민)에게 접근한다. 순수한 비즈니스로 시작된 두 사람의 관계는 위기와 의심의 단계를 거치지만, 리명운이 자신의 집에 박석영을 초대할 정도까지 발전한다.
문제는 외부에 있다. 각자의 체제는 그들을 압박한다. 남한엔 ‘북풍’을 이용해 정권을 유지하려는 세력이 있고, 북한은 극도로 궁핍한 ‘고난의 행군’을 견디고 있다. 이런 정치적·경제적 모순 사이에서 두 사람은 체제를 벗어나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길을 간다. 이때 리명운은 박석영에게 ‘호연지기’라는 화두를 던진다. 거침없이 크고 넓은 세상을 위한 걸음을 같이 걷자는 제안이다.
눈시울이 붉어진 두 남자가 시선을 맞추는 엔딩은 심금을 울리는 장면. 여기서 흥미로운 건, 한국 영화에서 브로맨스가 가장 빛나는 건 ‘분단’이라는 배경이 작용할 때라는 점이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같은 민족이지만 총부리를 들이대야 했던 역사와 현실은 비극적이며 때론 신파적인 ‘극적 설정’이다. 수십년 갈라져 있었다곤 하지만, 정권 유지를 위해 서로를 적으로 몰아가긴 했지만, 핏줄이 같고 언어가 통하는 남한과 북한의 사람들이 동질감을 느끼고 마음을 나눌 수 있다면, 이보다 더 강렬한 브로맨스의 토대는 없는 셈이다.
박찬욱 감독의 <공동경비구역 JSA>(2000)는 그런 면에서 ‘분단 브로맨스 영화’의 교과서 같은 작품이다. 심야의 총성으로 시작하는 영화는, 큰 틀은 스릴러 장르지만, 캐릭터들 사이엔 순수한 인간적 감정이 흐르고 그들은 야간의 친구가 된다. 함께 김광석의 노래를 들으며 술잔을 기울이고, 닭싸움을 하는 등 소박한 행복을 누리는 판문점의 네 군인. 예상치 못한 사고로 조사를 받는 그들은 서로를 위해 진실을 감추려 한다. 여기서 영화는 체제와 이념을 넘어 형제애를 나눌 수 있다는 희망과 가능성을 이야기하지만, 동시에 분단이라는 현실의 무거움을 잊지 않는다. 금지된 관계를 맺은 그들은 결국 비극적 결말을 맞이할 수밖에 없다.
이처럼 분단 영화에서 브로맨스는 적도 아니고 동지도 아닌, 그러면서 혈연으로 연결되어 있는, 미묘한 관계에 대한 일종의 메타포로 작용한다. <의형제>(2010)는 제목부터 함축적이다. 전직 국정원 요원인 이한규(송강호)와 접선이 끊긴 남파 간첩 송지원(강동원). 송지원은 신분을 숨기고 이한규의 흥신소 직원이 된다. 남한과 북한의 요원이 한솥밥을 먹게 된 상황이다. 여기서 영화는, 서서히 마음을 열고 식구가 되는 그들의 관계를 ‘의형제’로 비유한다. 흥미로운 건 그들에겐 묘한 동질감이 있다는 점이다. 두 사람 모두 자신들이 속한 조직에서 버림받은 처지인 것. 적으로 만난 두 사람은, 실제로 인간적인 관계를 쌓으면서 서로를 이해하게 되고, 처지를 공유하면서 ‘의형제’가 되어간다.
이것은 <공작>을 연상시키는 대목이기도 하다. 박석영과 리명운은 모두 자신의 조직과 묘한 긴장관계를 유지한 채 둘의 브로맨스를 키워나간다. 류승완 감독의 <베를린>(2013)도 마찬가지다. 남한의 국정원 요원 정진수(한석규)와 북한의 첩보요원 표종성(하정우). 정진수는 조직에서 외톨이 같은 존재이고 표종성은 제거 대상이다. 처음 맞붙을 땐 혈투를 벌인 두 사람은 서로 손을 잡게 되고, 결국 정진수는 표종성의 도주를 돕는다. 체제를 넘어선, ‘이심전심’의 인간적인 마음이다.
<공조>(2017)가 브로맨스보다는 범죄자 체포를 위해 남한 형사 강진태(유해진)와 북한 형사 림철령(현빈)의 ‘공조’를 그린 일종의 버디 무비에 가깝다면, <강철비>(2017)는 ‘철우’라는 이름을 통해 역시 ‘동질감’의 문제를 제기한다. 쿠데타로 ‘북한 1호’가 남한에 내려온 상황. 북에서 내려온 최정예 요원 엄철우(정우성)와 청와대 외교안보수석 곽철우(곽도원)는 급박한 정세 속에서 비밀스러운 작전을 수행한다. 이름이 같은 두 남자는 하나의 목표를 위해 사건을 해결하는 가운데 조금씩 마음을 열고 서로를 이해하며 ‘의형제’ 같은 관계가 되는 셈이다.
흥미로운 건 이러한 영화들이 이미지를 통해 노리는 메시지다. 공교롭게도 북측 캐릭터를 맡은 배우들은 강동원, 현빈, 정우성처럼 한국 영화를 대표하는 미남들이다. 반면 송강호, 유해진, 곽도원 등 서민적이며 푸근한 이미지를 지닌 배우들이 남쪽 파트너를 맡고 있다. 그러면서 북한의 캐릭터들이 강렬한 액션을 맡고, 남한의 캐릭터들은 그들을 도우며 감싼다. 마치 이것은 북에서 내려온 외롭고 고단한 동포를, 남한의 형제가 넉넉한 형처럼 혹은 친구처럼 맞아주는 모습으로 읽힌다. 그런 면에서 <공작>은 작은 변주이다. 여기선 북의 리명운이 마치 너그러운 형처럼 남한의 스파이 박석영을 마음을 열고 품는 모습을 보여준다.
하나 아쉬운 건, 브로맨스 영화의 트렌드가 한국 영화에서 여성 캐릭터가 배제된 결과라는 사실이다. 한국 영화가 지나치게 ‘남자 영화’를 선호하면서 타이틀 롤을 맡는 여자 배우는 점점 줄어들었다. 브로맨스는 남성 캐릭터 과잉의 한국 영화 서사가 만들어낸 새로운 흐름이며, 여성들의 로맨스를 그린 ‘워맨스(womance)’ 영화가 부재한 건 그 부정적 여파다. 그런데 브로맨스 영화가 각광을 받는다면 워맨스 영화에도 분명 대중이 호응할 만한 요소가 있지 않을까? 기계적 균형을 맞추자는 건 아니지만, 현재의 상황이 불균형 상태인 것만은 틀림없다. 굳이 분단 영화가 아니더라도, 이젠 ‘워맨스’의 흐름이 조금씩 시작될 때가 된 셈이다.
의형제·공작·강철비·JSA…
비극적 역사·현실, 극적 설정
이보다 더 강력한 토대는 없어
강렬한 액션의 북측 캐릭터와
푸근한 남쪽 파트너 이미지는
남쪽이 ‘북’ 품는다는 메시지
남자 만의 우정·연대 표현 방식
여성 캐릭터 배제된 결과라 아쉬워
이제라도 ‘워맨스’ 흐름 시작해야
예능 프로그램이나 아이돌 문화에서도 종종 발견되지만, 브로맨스가 빈번하게 콘셉트로 사용되는 대표적 분야 중 하나는 영화다. 두 명 이상의 남성 캐릭터들이 등장해 순수한 의리와 우정을 나누고, 희생과 헌신의 결단을 하며, 서로에게 이타적인 마음을 쓰는 영화들. 약간 말랑말랑한 뉘앙스로 ‘남남케미’라는 표현이 사용되기도 하지만, 브로맨스의 진지한 감정은 흡사 ‘홍콩 누아르’를 연상시킨다. 특히 대립관계의 두 남자가 나누는 브로맨스는 관객의 마음을 강하게 움직인다. <신세계>(2013)가 대표적이다. 언더커버 형사 이자성(이정재)과 범죄조직 골드문의 실세 정청(황정민)의 관계를 다룬 이 영화는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2017)이나 <프리즌>(2017) 같은 영화에서 그 공식이 반복되기도 하는데, 그 핵심은 ‘신뢰’다. 서로를 어디까지 믿을 수 있는가. 상대방의 정체를 알았을 때 그를 어떻게 대할 것인가. 여기서 갈등이 발생한다. 상관인 강 과장(최민식)은 작전 성공을 위해 이자성을 바짝 조이고, 정청은 이자성을 ‘브라더’로 대한다. 경계선을 넘어버린 이자성은 고뇌한다. 나는 경찰인가 범죄자인가. 신임을 얻기 위해 했던 거짓 충성의 행동들을 통해, 어느새 적에 대한 진짜 감정이 쌓여 버린 것이다.
악당들도 마찬가지다. 결국 언더커버의 정체는 탄로나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그를 제거하지 않는다. 피도 눈물도 없는 범죄자들임에도 머뭇거리는 건, 인간적 호감을 저버리기 힘든 일말의 감정 때문이다. 남은 건 선택이다. 관계를 지킬 것인가, 각자의 목적을 위해 비정하게 돌아설 것인가. ‘버디 무비(buddy movie)’가 두 남자의 파트너십을 호쾌하게 풀어낸다면, ‘적대적 공생 관계’에서 생겨난 브로맨스의 세계는 좀 더 끈적끈적하고 비장하며 뭉클하다.
그런 면에서 <공작>은, 2018년이 아직 4개월 정도 남긴 했지만, 감히 ‘올해의 브로맨스 영화’로 꼽을 만하다. 실화를 바탕으로 하는 이 영화는 암호명 ‘흑금성’인 북파 간첩 박석영(황정민)이 핵 시설 정보를 빼내기 위해 신분을 감추고 북에 접근하는 이야기다. 사업가로 위장한 박석영은 북한의 대외사업 책임자인 리명운(이성민)에게 접근한다. 순수한 비즈니스로 시작된 두 사람의 관계는 위기와 의심의 단계를 거치지만, 리명운이 자신의 집에 박석영을 초대할 정도까지 발전한다.
문제는 외부에 있다. 각자의 체제는 그들을 압박한다. 남한엔 ‘북풍’을 이용해 정권을 유지하려는 세력이 있고, 북한은 극도로 궁핍한 ‘고난의 행군’을 견디고 있다. 이런 정치적·경제적 모순 사이에서 두 사람은 체제를 벗어나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길을 간다. 이때 리명운은 박석영에게 ‘호연지기’라는 화두를 던진다. 거침없이 크고 넓은 세상을 위한 걸음을 같이 걷자는 제안이다.
눈시울이 붉어진 두 남자가 시선을 맞추는 엔딩은 심금을 울리는 장면. 여기서 흥미로운 건, 한국 영화에서 브로맨스가 가장 빛나는 건 ‘분단’이라는 배경이 작용할 때라는 점이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같은 민족이지만 총부리를 들이대야 했던 역사와 현실은 비극적이며 때론 신파적인 ‘극적 설정’이다. 수십년 갈라져 있었다곤 하지만, 정권 유지를 위해 서로를 적으로 몰아가긴 했지만, 핏줄이 같고 언어가 통하는 남한과 북한의 사람들이 동질감을 느끼고 마음을 나눌 수 있다면, 이보다 더 강렬한 브로맨스의 토대는 없는 셈이다.
박찬욱 감독의 <공동경비구역 JSA>(2000)는 그런 면에서 ‘분단 브로맨스 영화’의 교과서 같은 작품이다. 심야의 총성으로 시작하는 영화는, 큰 틀은 스릴러 장르지만, 캐릭터들 사이엔 순수한 인간적 감정이 흐르고 그들은 야간의 친구가 된다. 함께 김광석의 노래를 들으며 술잔을 기울이고, 닭싸움을 하는 등 소박한 행복을 누리는 판문점의 네 군인. 예상치 못한 사고로 조사를 받는 그들은 서로를 위해 진실을 감추려 한다. 여기서 영화는 체제와 이념을 넘어 형제애를 나눌 수 있다는 희망과 가능성을 이야기하지만, 동시에 분단이라는 현실의 무거움을 잊지 않는다. 금지된 관계를 맺은 그들은 결국 비극적 결말을 맞이할 수밖에 없다.
이처럼 분단 영화에서 브로맨스는 적도 아니고 동지도 아닌, 그러면서 혈연으로 연결되어 있는, 미묘한 관계에 대한 일종의 메타포로 작용한다. <의형제>(2010)는 제목부터 함축적이다. 전직 국정원 요원인 이한규(송강호)와 접선이 끊긴 남파 간첩 송지원(강동원). 송지원은 신분을 숨기고 이한규의 흥신소 직원이 된다. 남한과 북한의 요원이 한솥밥을 먹게 된 상황이다. 여기서 영화는, 서서히 마음을 열고 식구가 되는 그들의 관계를 ‘의형제’로 비유한다. 흥미로운 건 그들에겐 묘한 동질감이 있다는 점이다. 두 사람 모두 자신들이 속한 조직에서 버림받은 처지인 것. 적으로 만난 두 사람은, 실제로 인간적인 관계를 쌓으면서 서로를 이해하게 되고, 처지를 공유하면서 ‘의형제’가 되어간다.
이것은 <공작>을 연상시키는 대목이기도 하다. 박석영과 리명운은 모두 자신의 조직과 묘한 긴장관계를 유지한 채 둘의 브로맨스를 키워나간다. 류승완 감독의 <베를린>(2013)도 마찬가지다. 남한의 국정원 요원 정진수(한석규)와 북한의 첩보요원 표종성(하정우). 정진수는 조직에서 외톨이 같은 존재이고 표종성은 제거 대상이다. 처음 맞붙을 땐 혈투를 벌인 두 사람은 서로 손을 잡게 되고, 결국 정진수는 표종성의 도주를 돕는다. 체제를 넘어선, ‘이심전심’의 인간적인 마음이다.
<공조>(2017)가 브로맨스보다는 범죄자 체포를 위해 남한 형사 강진태(유해진)와 북한 형사 림철령(현빈)의 ‘공조’를 그린 일종의 버디 무비에 가깝다면, <강철비>(2017)는 ‘철우’라는 이름을 통해 역시 ‘동질감’의 문제를 제기한다. 쿠데타로 ‘북한 1호’가 남한에 내려온 상황. 북에서 내려온 최정예 요원 엄철우(정우성)와 청와대 외교안보수석 곽철우(곽도원)는 급박한 정세 속에서 비밀스러운 작전을 수행한다. 이름이 같은 두 남자는 하나의 목표를 위해 사건을 해결하는 가운데 조금씩 마음을 열고 서로를 이해하며 ‘의형제’ 같은 관계가 되는 셈이다.
흥미로운 건 이러한 영화들이 이미지를 통해 노리는 메시지다. 공교롭게도 북측 캐릭터를 맡은 배우들은 강동원, 현빈, 정우성처럼 한국 영화를 대표하는 미남들이다. 반면 송강호, 유해진, 곽도원 등 서민적이며 푸근한 이미지를 지닌 배우들이 남쪽 파트너를 맡고 있다. 그러면서 북한의 캐릭터들이 강렬한 액션을 맡고, 남한의 캐릭터들은 그들을 도우며 감싼다. 마치 이것은 북에서 내려온 외롭고 고단한 동포를, 남한의 형제가 넉넉한 형처럼 혹은 친구처럼 맞아주는 모습으로 읽힌다. 그런 면에서 <공작>은 작은 변주이다. 여기선 북의 리명운이 마치 너그러운 형처럼 남한의 스파이 박석영을 마음을 열고 품는 모습을 보여준다.
하나 아쉬운 건, 브로맨스 영화의 트렌드가 한국 영화에서 여성 캐릭터가 배제된 결과라는 사실이다. 한국 영화가 지나치게 ‘남자 영화’를 선호하면서 타이틀 롤을 맡는 여자 배우는 점점 줄어들었다. 브로맨스는 남성 캐릭터 과잉의 한국 영화 서사가 만들어낸 새로운 흐름이며, 여성들의 로맨스를 그린 ‘워맨스(womance)’ 영화가 부재한 건 그 부정적 여파다. 그런데 브로맨스 영화가 각광을 받는다면 워맨스 영화에도 분명 대중이 호응할 만한 요소가 있지 않을까? 기계적 균형을 맞추자는 건 아니지만, 현재의 상황이 불균형 상태인 것만은 틀림없다. 굳이 분단 영화가 아니더라도, 이젠 ‘워맨스’의 흐름이 조금씩 시작될 때가 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