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글 쓰고 따수운 토리들의 댓글에 힘입어 두 번째 리뷰로 돌아왔다!
오늘 이야기할 영화는 코엔 형제가 만든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야.
미국 독립영화를 대표하는 형제 영화감독이라는데 나는 이 분들 작품은 이게 처음이었어.
영화제목은 여기저기 언급도 많이 되고, 패러디도 많이 되고 해서 자주 접했었는데
영화도 소설도 보지 않다가 최근에서야 넷플릭스에서 발견해서 보게 되었지.
한줄로 가볍게 정리하자면 평론가들이 몹시 좋아할 법하지만 내 취향의 영화는 아니었다 정도일까?
그래서 이 영화에 내가 매긴 평점은 2.5 / 5.0
개인적인 취향에는 안 맞아서 평점은 낮게 줬지만, 워낙 명작이라고 많이 들어놔서 곰곰이 곱씹다 남은 몇 가지 포인트들을 공유해본다.
1. 전통적 영웅서사 뒤틀기
느와르 영화나 옛날 영웅서사를 보면 꼭 영웅들은 쓸데없는 사명의식 같은 게 있어.
무슨 구원도착증마냥 틈만 나면 지 몸 바쳐서 주변을 구하려고 들거든.
이런 거 말야(아 시발 미리 말이라도 해주든가..)
비슷한 류로 구원도착자들 고정 플래그로 요런 게 있겠다
- 무슨 소리가 들려도 절대로 나와선 안된다. 아무 일도 없을 거야 <- 무조건 일 생김
- 안전한 곳으로 피해 있으시오, 일이 마무리되는대로 찾아가겠소. <- 찾아오는 건 시체였구요
심지어 느와르물 주인공들은 대체로 지가 위험을 감수하다 저러고 죽는 경우가 많잖아? 그런데 과연 그렇게 남겨진 사람들은 뭔 일인지 알려주지도 않고 아주 그냥 지혼자 뽕에 차서 아! 멋지게 희생하는 나 자신(찡긋) 하면서 죽는 사람들을 보면서 고맙고 행복했을까? 복장 터지지 않았을까? 그런데 지금까지 대부분의 영화들은 이렇게 가족을 위해서든 동료를 위해서든 대신 죽는 사람들을 멋진 영웅으로 묘사했거든. 그러다보니 영화 내에서의 초점도 구하는 자 혹은 구해지는 자의 시점이었고, 내러티브상 그들의 희생은 존중받아야 하고, 고마운 것일 수 밖에 없었어.
그런데 이 영화는 장르 상 느와르를 따르고 있지만 이야기의 결은 다소 달라. 애초에 갈등의 시작이 주인공이 우연히 주운 돈가방이야.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도 아니고 피 냄새 가득한 현장에 떨어져있었으니 '나 위험해!!!'라고 온몸으로 시그널 보내고 있는 돈가방이지.
(이렇게 danger! danger! 외치고 있는데 등신같은 주인공이 단거로 읽은 게 틀림없다)
냅다 경찰서에 갖다줘도 별 일 없었을 것이고, 모른 척 지나가도 별 일 없었을 것이며, 심지어 조금만 가져가고 남겨뒀어도 큰 일은 없었을 거야. 근데 그 돈 한 번 가져보겠다고 온갖 폼을 잡으면서 쫓겨다니는 주인공과 그걸 쫓아오는 악역의 대립이 영화의 메인 스토리란 말이지. 애초에 존경할 구석이 없어. 그 와중에 자초한 불행 앞에서 친정에 가있으라는 등, 내가 이길 수 있다는 등 영웅행세를 하려고 하니 주인공의 신세가 우스워지는 거지. "와 주인공 어쩌지? 손에 땀을 쥔다." 그런 거 아니고. "아 왜 저래 진짜? 옘병 사서 고생의 아티스트여." 같은 느낌이야. 그러니 보는 입장에선 자연스럽게 한 인물에 감정이입하고 응원하기보단 무표정의 제 3자가 되어서 영화를 보게 되는 거지. 영화 내내 깔려있는 카메라 구도, 인물 배치 등의 영화적 기법과 추격과정에서 뭉텅이로 빠져있는 현실성도 이러한 왕따당하는 기분을 한껏 끌어올려주는 걸 볼 때 아마도 조금 거리를 두고 영화 내의 등신미를 감상하라는 감독의 악취미가 아니었나 싶어.
2. 액운 vs 마초 = 대환장 파티
앞서 말했듯이 이 영화는 내러티브가 다소 결여되어있어. 그래서 '읭?'스러운 장면들도 많았어. 그런데 그 와중에 딱 하나 여러 번, 여러 방법으로 거듭 강조하는 건 악역이 무진장 세다는 거야. 그러면서 악역은 '안톤 쉬거'라는 인간의 형태를 하고 있지만 인간미라곤 찾아볼 수 없게 냉정하고, 침착하고, 잔인해. 다소 불가역적인 액운이라도 되는 것마냥 주인공을, 그리고 보는 사람을 사정없이 압박해와. 이런 절대적인 악역이 만영화 내내 만들어주는 긴장감은 결코 작지 않아.
근데 여기서 등장하는 것이 세상 쓸데없는 마초주의지. 쫓겨본 주인공도, 암흑가 아저씨들도 악당 '안톤 쉬거'가 무진장 세다는 걸 알고 있어. 하지만 그에 대응하는 방법은 이래
(흔한 마초 등신1)
(질 수 없는 마초 등신2)
정말 몰입이 될 수가 없는 인물군상들이다. 이런 거 보고 있자면 참 제목 잘 지었어. 노인을 위한 나라가 뭐가 필요해. 저러다보면 노인 되기 전에 객사하기 십상이겠구만. 이 절대악과 마초남(이 쪽도 내가 보기엔 악이야)들의 스릴 넘치는 대환장파티가 궁금하다면 한 번쯤 시도해봐도 좋을 것 같은 영화야. 개인적인 소감은 작중에 나오는 인물 짤로 마무리한다.
+) 이건 뱀다리
다소 이 영화에서 모티브를 얻지 않았나 싶으면서, 나한텐 더 잘 맞았던 영화를 하나 소개하려고 해.
2014년에 개봉한 한국영화 <끝까지 간다>야.
인물군상이나 대립구도가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랑 꽤나 비슷해. 조진웅이 연기한 악역 캐릭터는 정말 내가 본 영화 중에서 손에 꼽을만큼 섹시한(외모 아니고) 악역이었다. 한국영화답게 서사에 조금 더 힘을 쏟았고, 짜임새도 탄탄한 영화라 덤으로 같이 추천해.
그리고 아카이빙 겸 남겨두는 전에 쓴 리뷰 링크..
1. 반 쪽의 이야기(4.0/5.0) - https://www.dmitory.com/garden/158259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