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토리숲
<<< 조선 19대 국왕 숙종 이순의 부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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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인경왕후 김씨

출생 = 1661년 10월 25일
사망 = 1680년 12월 16일 (만 19세)

(슬하 2녀)

숙종의 첫번째 왕비. 광성부원군 김만기의 딸로 1670년 10세 나이에 세자빈으로 간택되어 입궁했고 1674년 숙종이 즉위하자 14세에 왕비가 되었어. 그리고 19세에 사망한 비운의 왕비

17세이던 1677년과 19세이던 1679년 공주를 2명 낳았지만 모두 일찍 죽었고 그녀 역시 1680년 12월 겨울에 만 19세 나이에 두창(천연두)에 걸려 세상을 떠났음.

승하한 인경왕후와 오랫동안 아이를 가지지 못하는 인현왕후 때문에 인현왕후를 중심으로 하는 서인과 희빈 장씨를 중심으로 하는 남인이 대립하는 계기가 되어 후일 인현왕후가 폐위되는 기사환국과 갑술환국 등 조선 역사의 비극을 초래하게 되었음.

참고로 인경왕후가 승하했을 때에는 숙종도 병에 걸려 숙종은 창덕궁에, 인경왕후는 경덕궁에 각각 따로 있었음. 이에 대신들이 인경왕후의 승하를 숙종에게 알리고자 하였으나, 명성왕후(숙종의 어머니)가

"주상이 밤에 구토하고 가슴과 배에 통증이 있다가 이제 겨우 잠들었으니, 중궁의 승하는 내일 아침에 알리라."

라고 하여 숙종은 인경왕후의 부음을 다음 날 아침에야 듣게 되었다고 함. 인경왕후가 딸을 2명이나 낳은걸 봐서는 충분히 그 이후에도 자녀를 낳을 가능성이 높았음. 그 뒤 숙빈,희빈,명빈에게 아들을 여럿 얻었으니..

만일 그녀가 오래 살았으면 언젠가 적장자를 낳았을꺼고 그 후 인현왕후가 왕비로 궁에 들어와서 고생할 일은 없었을것이며 숙종이 부인들을 이용해서 정권교체를 하는 일도 없었을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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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인현왕후 민씨

출생 = 1667년 5월 15일
사망 = 1701년 9월 16일 (만 34세)

(슬하 자녀 없음)

아버지는 여흥부원군 민유중으로 인경왕후가 죽고 1년뒤인 1681년 왕대비 명성왕후의 주도하에 두번째 왕비로 간택되어 입궁함. 당시 숙종의 마음이 퇴궁을 당한 장옥정(희빈장씨)에게 향해 있어, 인현왕후는 숙종의 사랑을 받지 못했음. 무엇보다도 당시 인현왕후는 겨우 15살 어린 나이였어.

시어머니 명성왕후가 세상을 떠난 뒤, 장옥정(희빈장씨)을 여전히 그리워하는 숙종을 본 인현왕후는 "장씨를 다시 궁궐로 들이자"고 제안하였고, 결국 장옥정은 재입궁하게 되나 그 뒤 기록에는 그녀가 장씨를 질투한 기록들은 남아있음.

숙종의 총애를 받는 희빈 장씨를 견제하기 위해 영빈 김씨를 들이도록 했음. 무엇보다도 당시 부종으로 다리가 아팠던 희빈장씨를 종아리를 친적이 있는데 희빈장씨가 궁에 들어오고 얼마 안되서 숙종과 서로를 희롱하다가 그녀의 처소 앞으로 와서 "저를 살려주십시오"라고 했던 기록이 있음. 본부인인 인현왕후 입장에서는 굉장히 무례하고 불쾌한 행동이였어.

결정적으로 당시 숙종에게 꿈에 명성왕후(숙종엄마,인현왕후 시어머니)가 나와서 " 꿈에서 계시를 내리길, 장씨가 원한을 품고 환생한 짐승의 화신이며, 불순한 무리의 사주를 받고 입궁했으니 쫓아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고 함. 왕후가 왕에게 특별한 이유없이 후궁을 직접 멀리할 것을 종용한 것은 매우 드문 사례임.

그 뒤 알다시피 폐비가 되어 궁에서 내쫒기는데 현대에는 숙종이 그녀와 희빈장씨를 이용해서 소위 말하는 서인과 남인의 정권교체에 적극 활용했다는 이야기가 있어.

폐출의 결정적 계기가 되었던 탄일문안 사건이 일어나서 폐출되는데 당시 숙종의 증조할머니인 장렬왕후의 국상 기간이라 "중전(인현왕후)의 탄일문안을 생략하라"고 어명을 내렸는데도, 인현왕후가 문안을 받은 사건임. 당시 노론, 소론은 물론, 남인들조차 반대했는데도 결정한 일이였음.

인현왕후에게 물어진 죄는, '자식이 없는 죄', ‘죽은 시부모의 계시를 빙자하여 왕에게 거짓을 고한 죄’, ‘왕의 육체를 조롱한 죄’[, ‘투기로 내전의 일을 조정으로 확대시켜 국정을 어지럽힌 죄’, ‘내전에서 궁인의 당파를 나누어 붕당을 일으킨 죄’로 폐출됨.

또한 숙종은 인현왕후를 폐위한 후, 숙종은 폐비 민씨의 남겨진 물건을 모두 불태워버리도록 명하였으며, 민씨가 가례를 올릴 때 입었던 장복은 대내에서 공개적으로 태우도록 했어. 심지어 숙종은 "인현왕후와 가례를 올리는 날에 지진이 있어서 어쩐지 불길했다." 라고 말하기까지 했음.

폐비 시절 사가인 감고당에서 지내며 왠 도적들에게 큰일을 당할뻔하기도 했지만 숙종은 그녀의 사가에 음식조차 제대로 주지 못하게 했고 매우 열약한 환경에서 폐비로 살게 됨. 이때 생활은 훗날 왕비로 복귀한 뒤에 건강이 안좋아지는 계기가 되었음.

이후 숙종이 다시 남인들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1694년에 갑술환국이 일어나 복위함. 숙종은 처음에는 "폐인을 언급하지 말 것"과 "국본에게 위해를 가하는 말을 하는 자는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는 명을 내리나, 번복하여 폐비였던 그녀를 덕수궁으로 복위시킴.

드라마에서는 희빈 장씨가 죄를 짓고 강등되고 인현왕후가 모함을 받아 폐위되었다는 게 드러나고 겨우 며칠만에 간단히 복위되는 것으로 나오지만, 실제로는 삼불거의 규범으로 복위되었어.

인현왕후는 숙종의 모친인 명성왕후와 증조모인 장렬왕후의 상을 같이 치른 조강지처이므로 폐위의 처분은 가혹하다는 것이였음. 삼불거의 규범에서, 쫓겨난 정실부인을 다시 들이면 새로 들인 정실부인은 친정으로 돌려보내거나 첩으로 강등시킴... 즉, 인현왕후가 무죄라 복위된 것도 아니고, 희빈 장씨가 죄를 지어 강등된 것이 아니라, 국법을 따른 것임.

어쨌든 입궁 당일에 폐비에서 왕비로 바로 복위되었는데 입궁 당일 숙종과 엄청난 밀당을 함.숙종이 내려준 옷을 "분에 넘친다"고 몇 번이나 사양하다가....

숙종이 "그 옷을 안 입고 오면 궁인들에게 중죄를 내린다"고 엄포를 놓자, 결국 입고 왔고. 인현왕후가 입궁했을 때 숙종이 직접 마중을 나갔는데, 그 자리에서도 인현왕후는 "내 죄가 너무 크다"고 자책하였음. 숙종이 "부원군과 부부인의 작호를 회복시키겠다"며 계모의 작호를 물으니, "기억 안 난다"고까지 했을정도....

근데 성격이 까탈스러운 숙종이 전부 다 받아주었음.자신이 잘못한 것이 있으니 참은 것으로 보여져. 그 뒤 희빈장씨의 아들 왕세자(경종)를 자신의 양자로 들임. 경종 탄생 당시에는 매우 싫어했다고 하지만 인현왕후는 원수의 자식인 왕세자 윤을 친아들 못지 않게 귀여워했으며, 세자도 적모인 인현왕후를 매우 따랐다고 함.

사극에서는 어느 날 쓰러져 약간 앓다가 깔끔하게(...) 유언 남기고 대낮에 승하하는 것으로 묘사되는 것이 보통이지만, 실제로는 1년 6개월 이상 처절하게 투병했고 갖은 합병증까지 앓아가며 고통받다가, 한밤중 새벽에 호흡 곤란으로 사망함..

그당시 나이 겨우 만 34세였음.

결국 1701년 9월 16일 새벽 2시경에 세상을 떠났고 그 뒤 알다시피 희빈장씨는 인현왕후를 저주 했다는 죄목으로 사약을 받는 사건이 일어났음. 숙종은 그녀의 능을 조성하면서 인현왕후 곁에 묻히길 희망했으며, 실제로 승하한 후 그 곁에 묻혔음.. 일반적으론 원비인 인경왕후와 묻히는 게 원칙이지만 숙종이 그러기를 바랬다고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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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인원왕후 김씨

출생 = 1687년 11월 3일
사망 = 1757년 5월 13일 (만 69세)

(슬하 자녀 없음)

아버지는 소론 계열의 경주 김씨 경은부원군 김주신으로 1701년 인현왕후가 승하하고 다음해인 1702년 16세 나이에 왕비로 간택되어 입궁함. 숙종은 그녀를 간택할 당시 "다시는 후궁이 왕비가 되는 일이 없도록 하라"라는 전교를 내렸고 그 뒤 후궁이 왕비가 되는 일은 없었어.

입궁당시 의붓아들인 왕세자(경종)는 그녀보다 1살 어렸고 연잉군(영조)은 6세 어렸으며 남편 숙종은 26세나 연상이였음.

숙종은 그녀에 대한 애정이 그리 있었던것 같지는 않음. 야사에는 그녀가 임신을 했지만 유산을 했다는데 기록상 그녀가 임신한 기록은 없음. 그리고 인원왕후는 엄격한 궁중 생활, 장난아니게 까다로운 나이 많은 남편, 나이 차이 별로 안 나는 의붓 아들들 사이에서 마음 고생이 무척 심했던 것으로 보임.

입궁하자마자 1년 만에 쓰러진 것을 시작으로 숙종이 사망할 때까지 종기, 피부병, 전염병 등, 이런 저런 병을 달고 살았음. 그런 탓에 조선왕조실록에 남아 있는 왕비 시절 인원왕후에 대한 기록은 "중궁이 무슨 무슨 병을 앓다가 자리를 털고 일어나니 내가 몹시 기쁘다"라는 숙종의 상투적이고 의례적인 발언이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정도임.

심지어 인경왕후나 인현왕후보다 더 긴, 18년이란 긴 시간을 숙종과 함께 했는데도 단 한번의 임신도 하지못한 걸보면 숙종에게 그녀는 명목상의 왕비,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던듯함.

1720년 숙종이 사망하고 세자 윤이 경종으로 즉위하자 왕대비가 되었음. 당시 왕실에는 인원왕후보다 윗대의 대비들이 없었기에 34살의 젊은 나이에 왕실 최고 서열이 됨. 다음해인 1721년 경종이 죽자 자신이 양자로 삼고 적극 후원하던 연잉군이 영조로 즉위하고 당시 경종비 선의왕후가 살아있기에 35세 나이에 대왕대비가 되었음.

영조가 즉위한 후에는 영조의 정비 정성왕후 서씨와 더불어 영조와 사도세자의 대립이 격화될 때 두 사람의 중재를 하려 애를 썼음. 본인이 자식이 없던터라 사도세자를 매우 아꼈는데 영조가 사도세자가 뚱뚱해진건 자전(인원왕후)가 옆에 끼고 하도 음식을 먹여서 그런거라고 말했을정도야.

온후하면서도 심지 강한 성격으로 보이는데 인원왕후는 어려서 일찍 궁에 들어와서 그런지 왕실의 법도를 엄하게 가르쳤어. 일례로 대천록에 따르면 영조의 후궁인 숙의 문씨가 사도세자의 생모인 영빈 이씨에게 함부로 대들었음. 당시 궁중 예법상으로 세자의 어머니에게 해서는 안 될 일이었는데  인원왕후는 이를 알고 노발대발하여, 세자와 영빈 앞에서 숙의 문씨의 종아리를 때렸다고 함.

혜경궁 홍씨도 한중록에서 인원왕후를 "궁중 예법을 잘 지킨 사람"이라고 적었어. 혜경궁 홍씨와 영조의 옹주들이 같이 있을 때면, 가장 어른인 인원왕후가 나서서 장차 왕비가 될 혜경궁 홍씨를 늘 상석에 앉혔다고 함.

당시 궁중 위계 질서 중 하나로 윗사람 앞에 앉을 때는 아랫 사람이 정면으로 앉지 않고 옆으로 조금 돌아앉아야 한다는 곡좌라는 예법이 있었는데, 인원왕후는 이를 엄격히 지키도록 했음. 화유옹주가 좁은 방에서 어쩔수 없이 법도를 어기자 인원왕후가 엄하게 옹주를 지적하였다고 전해져.

영조와 사도세자의 갈등이 극한으로 가던 1757년 5월에 만 69세 나이로 세상을 떠났음. 만일 그녀가 더 장수했다면 사도세자가 더 오래 살았을꺼라는 견해가 있기도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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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희빈 장씨 장옥정 (옥산부대빈)

출생 = 1659년 11월 3일
사망 = 1701년 11월 9일 (만 42세)

(슬하 2남)

본명은 "장옥정"으로 숙종의 후궁이었으며, 한 때는 왕비의 자리에까지 올랐음. 그리고 경종의 어머니이자 조선 역사상 궁녀 출신으로 정실 왕비까지 올라간 유일한 여성이야.

공식적인 역사 기록인 조선왕조실록에서는 그녀의 미모가 아름다웠다고 기록하고 있는걸 봐서는 ㄹㅇ 미인이였을것임. 역관 장형의 딸로 궁인으로 입궁해 숙종의 증조할머니 장렬왕후를 모시다가 1680년 승은을 입고 후궁이 되나 얼마뒤에 현종비 명성왕후에 의해 천박하고 신분이 낮다는 이유로 퇴궁당했어.

그 뒤 사가에서 지내다가 숙종의 2번째 인현왕후에 의해 다시 궁으로 복귀할수 있었음. 그 뒤 자녀도 없는 상황에서 후궁인 종4품 숙원으로 책봉받는등 파격적인 대우를 받았고 뒤이어 장남 경종을 낳고 인현왕후가 폐비가 되자 왕비자리까지 올라가게 됨.

이후, 김만중의 손자 김춘택 등을 중심으로 인현왕후 복위 운동이 일어나고, 인현왕후의 폐서인을 후회하고 있던 숙종은 장희빈의 거친 성격에 실망해서 인현왕후를 복위시켰다는 것이 대중 사이의 기존 인식이었으나, 실제로는 권력 다툼에서 기인했음... 즉, 숙종은 권세를 잡은 남인의 권력이 왕권을 위협하는 수준에 도달했다고 판단하고 1694년, 인현왕후를 복위시키고 남인의 지지를 받던 장희빈을 희빈으로 강등시켰어.

그 뒤 왕비에서 "빈"으로 강등되었고 1701년 9월 24일 숙종이 제주에 유배 가 있는 그녀의 오빠 장희재를 처형하라고 비망기를 내렸음. 비망기의 내용은

'지위가 강등된 뒤, 장희빈은 울분의 나날을 보내며 숙종과 인현왕후에게 문안조차 가지 않았다. 그러면서 다시 중전이 되기 위해 안간힘을 다했다. 게다가 인현왕후를 중궁이라고 부르지도 않고 '민씨'라고 부르면서 요사스러운 여자라고 욕했다. 인현왕후가 시름시름 앓자, 장희빈은 인현왕후가 죽으면 자신이 다시 왕비가 될 것이라 믿고 그렇게 되게 하기 위해 자신의 처소인 취선당 뒷쪽 별채에 신당을 차리고 인현왕후를 저주하기에 이르렀다고 한다.'

는 내용이였는데 조사 중 인현왕후를 저주했다는 취선당 신당은 사실 인현왕후가 승하하기 2년 전에, 장씨가 세자(후일의 경종)의 병을 낫게 하기 위해서 지은 것이었는데, 숙빈 최씨가 이는 인현왕후를 저주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함.

그 뒤, 장씨 휘하 나인들에게 가혹한 고문이 가해졌지만, 나인들은 세자의 병을 낫게 하기 위해서라고만 말했다고 하며, 나중에서야 고문을 못 이긴 나인들이 추가 증언으로 인현왕후의 죽음을 빌었다고 자백하여 희빈의 처벌이 결정되었음. 물론 당시 법도로 보아서는 어디까지나 병환 중에 있는 인현왕후가 우선이기 때문에, 희빈 장씨가 아픈 세자를 위해 사사로이 궁 밖으로 나가 절에서 불공을 드렸다던가 치성을 드렸다고 해도 허물이 되는 상황이기는 했음.

숙종 실록과 승정원일기에는 숙종이 희빈에게 자진(자살)하라고 명을 내려 희빈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되어 있는데, 그녀를 자진하게 할 때 숙종이 사약을 내릴지 신하들과 의논하는 장면이 있는 것으로 보아 자진했다고 해도 일단 사약을 마신 건 맞는 듯 보여짐.


이 사건과 관련해 "장옥정이 몰락했을지언정, 양반 가문 출신이기만 했어도 그토록 비참하게 죽진 않았을 것" 이란 시각도 존재하는데 정적인 남인 쪽 사람인데다 중인 집안 출신이었으니 서인들의 증오가 굉장히 깊었을 것이라는 게 그 요지였음.. 그도 그럴 것이 원자 정호 사건부터 송시열이라는 거목이 쓰러졌고, 웬만한 서인 가문이 줄줄이 귀양에 숙청당하고, 공주들도 피하지 못해서 숙안공주는 아들을 잃고 숙종의 여동생인 명안공주는 시아버지가 휘말려서 죽었음.

이런 과정에서 생긴 원한이 왕에게 갈 수는 없으니 자연히 장희빈에게 향할 수밖에 없었을 것임. 실제로도 숙종은 자신의 후궁들에게 궁궐 밖에 집을 마련해주고 재산을 만들어주는 과정에서 백성들에게 원망을 샀고, 여기에는 그녀도 별반 다르지 않다. 결국 이런 원한 하나 하나가 모여서 부메랑처럼 돌아온 셈일지도 모름.

말로는 비참했지만, 숙종은 희빈의 사후 왕후에 준하는 예우를 받게 했고, 장례에 세자 부부 내외도 참가케 했으며 희빈 장씨 때는 숙종의 지시로 종친부에서 직접 장례를 주관하기도 하였음. 또한 사실상 왕후의 예에 준하는 5개월에 가까운 기간동안 장례를 치뤘으며 경종은 연잉군, 영조와는 달리 생모를 위하여 3년 가까이 상복을 입었다고 해.

이러한 정황으로 인하여 영조 시대 때 경종은 숙종의 적장자로, 장희빈은 숙종의 제2계비로 기재한 서적이 발간되기도 하였음. 그녀 사후 숙종은 내명부의 궁녀(정확히는 후궁)가 왕비로 책봉되는 일을 금지시켰고 스스로도 후궁 중 한 명을 왕비로 삼지 않고 인원왕후에게 새로 장가를 들었음.

사후 아들 경종이 즉위하자 "옥산부대빈"으로 추승되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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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숙빈 최씨 (화경숙빈)

출생 = 1670년 12월 17일
사망 = 1718년 4월 9일 (만 47세)

(슬하 3남)

조선 숙종의 후궁으로 영조의 어머니이며 장희빈과 더불어 일명 조선판 신데렐라임. 최효원의 딸로 그녀의 신분은 불분명하지만 무수리 출신인건 확실함.

어쩌다가 숙종의 눈에 띄어 승은을 입었는데, 기록에 남는 이야기로는 인현왕후가 폐서인이 되어 사가에 나가서 살던 시절, 인현왕후의 생일에 인현왕후를 모셨던 적이 있는 그녀가 인현왕후를 위한 기원을 올리고 있던 모습을 마침 근처를 지나가던 숙종이 목격하는 바람에 눈에 띄게 되어 후궁이 되었다고 함.

어쨌든 숙종의 총애를 받고 임신까지 했는데 임금의 총애를 받고 왕자를 낳았기에 수많은 견제와 공격을 받은 것은 사실로 보이며, 이에 맞서기 위해 서인 세력과 친밀해졌음. 비천한 출신에 뒤를 봐줄 배경도 없는데다가 장희빈의 견제가 극심했기 때문에 별다른 방도가 없었을 것임.

지지 기반이 불안했기 때문인지 숙종의 총애를 받을 때에도 몸 가짐과 말에 극히 조심했다고 전해짐. 본인은 물론 휘하 나인들의 입까지 단속하였다고. 숙종이 농담으로 그녀를 왕후에 봉하겠다고 하자 그 말이 무서워 눈 위에 엎드려 있었다는 야사도 있음.

인현왕후를 폐위하고 장희빈을 중전으로 앉혔다가 다시 인현왕후를 복귀시키고 장희빈을 도로 희빈으로 강등시킨 것은 숙종의 왕권 강화책이었다는 것이 정설이지만, 그 구실을 만들어준 것이 다름 아닌 숙빈 최씨였어. 장희빈이 인현왕후를 무고하여 죽였다는 것을 고발한 것도 숙빈 최씨임.

정황상 인원왕후가 간택된 1702년 출궁을 한것으로 보여지며 그 뒤 숙빈이 넓은집에서 혼자 살기 안타깝다는 이유로 아들인 연잉군(영조)부부와 함께 거주하게 됨. 숙종과 사이에 아들 3명을 낳았지만 이 중 성인이 될때까지 산 자식은 차남 영조뿐임.

매우 미인이였던걸로 추정되며 영조가 모친을 닮아서 미남이였다고 함. 그 뒤 1718년 4월에 만 47세로 세상을 떠났는데 장지를 정할때, 명선공주와 명혜공주가 묻힌 묘산 내의 청룡 터 즉 명당을 고른 관원을 파직시키고, 며칠 뒤 다시 장지를 의논하는데 선릉과 마주보이는 곳이라 하여 그곳도 허락하지 않는다는 기사가 실록에 나와있고 이러한 것을 봐서는 숙빈 말년에는 숙종의 숙빈에 대한 감정이 그다지 좋지만은 않았던 것으로 추측할 수 있음.

그 뒤 아들 연잉군이 경종 사후 영조로 즉위하자 "화경숙빈"으로 봉해졌음. 또한 그녀의 묘는 "소령원"이라는 칭호를 얻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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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영빈 김씨

출생 = 1669년 7월
사망 = 1735년 1월 12일 (만 65세)

(슬하 자녀 없음)

숙종의 후궁으로 영의정 김수향의 종손녀임. 1686년 18세에 후궁으로 간택되어 종2품 숙의품계를 받았음. 김씨의 후궁 간택은 중전 간택 못지않을 정도로 위세가 높았고 가례청까지 설치되었고 입궁한 지 7개월 후 바로 귀인이 되는 파격적인 조치가 추가적으로 내어지나 서인 정권 하여서 장옥정의 후궁 책봉 때와는 달리 이에 대한 부당함을 간언하는 상소는 없었음.

하지만 기사환국으로 인현왕후가 폐출되기 얼마전에 그녀 역시 연루되어 폐서인이 되어 출궁을 당하게 되나 1694년 인현왕후가 복위되자 그녀 역시 다시 복위되었어.

숙빈최씨가 이런저런 이유로 품계가 정1품 빈자리까지 오르고 다른후궁들도 품계가 승봉될때 그녀 홀로 종1품 귀인에서 승봉되지 못하는 안습한 상황을 겪게 되었음.

인현왕후와 장희빈의 죽음 이후 숙종은 "후궁은 중전이 될 수 없다."라는 교지가 내렸는데 이는 그녀를 저격한 교지라는 이야기가 정설임. 위에 서술된 대로 매우 한미한 집안 출신임이 분명한 숙빈과 달리 영빈은 서인 세력의 명문가 출신이었음. 게다가 자녀가 없었으니 문제가 될것이 없었음. 숙빈 역시 서인에 속하였고 당시 귀인이었던 영빈보다 품계가 높긴 했지만, 만약 후궁들 중에서 중전을 간택했다면 중전이 됐을 사람은 숙빈이 아니라 영빈일 수밖에 없었다고 함.

야사에는 인현왕후가 죽기 전 유언으로 숙종에게 다음 왕비는 영빈으로 세워달라고 말했다고 함. 영빈은 기사환국이 터지고 한달이 안 된 시점에서 왕의 동정과 궁중 기밀에 관한 정보를 친정에 빼돌리고 이모부 홍치상(효종의딸 숙안공주의 아들, 숙종의 고모의 아들)과 작당하여 희빈의 친정 어머니에 관한 유언비어를 날조한 혐의가 적발되어 홍치상은 처형되고 그녀는 폐출되었음.

무슨 이유인지 숙종은 영빈에 대한 악감정이 상당했고 결국 숙종 말년에나 종1품 귀인에서 정1품 빈으로 품계가 승봉되었음. 그 뒤 숙종이 죽자 궁밖에 나와 살게 되는데 본래 후궁의 사가는 화려해서 문제가 되었던 반면에, 영빈 김씨는 숙종 사후에 궐을 나갈 때 사저가 너무 허름해 경종이 안쓰러워 사저를 사라고 돈을 줌.

후에 경종의 독살 소문이 나자 영빈 김씨의 친정이 용의자로 지목되고, 영빈 김씨의 외사촌 이진검이 영빈을 공개적으로 지목해서 문제가 되기도 했다고 함. 인원왕후는 이진검의 고모이자 영빈 김씨의 이모인 이씨(숙명공주의 아들인 심정보의 아내)에게 이진검을 설득하라고 했고 경종은 영빈 김씨를 무혐의로 처분을 내리며 각별한 예우를 올렸음.

장희빈의 아들이지만 인현왕후처럼 경종과도 사이가 나쁘진 않은 듯하며 숙빈 최씨와 친밀한 관계를 유지해 연잉군을 친아들처럼 대했고, 숙빈 사후 연잉군과 모자지간처럼 지냈으며 연잉군도 어머니처럼 따랐다고 함.

남인 인물로서 갑술환국 당시 유배형을 받았다가 결국 사사된 전 좌의정 민암은 국문 중에 영빈 김씨에 대해 "머리가 좋아 아낌없이 재물을 풀어 궁중의 환심을 얻었다"라고 말했는데, 이 말은 인현왕후처럼 현숙한 이미지 관리를 하기보다는, 돈으로 사람을 매수해서 장희빈을 견제했다는 것임.

그녀는 1735년 1월 만 65세 나이로 세상을 떠났음.


https://img.dmitory.com/img/202002/5VA/ZFE/5VAZFEyvkcKQsYIWkA0GmI.jpg

7. 명빈 박씨

출생 = 1665년
사망 = 1703년 7월 15일 (만 37~38세)

(슬하 1남)

숙종의 아들 연령군의 어머니로 궁녀출신임. 승은을 입고 상궁 신분으로 10년을 지내다가 연령군을 임신하고 종4품 숙원에 책봉됨. 다음해에 연령군을 낳고 종3품 숙의로 책봉됨.

1702년 인원왕후의 왕비책봉을 기념하며 정1품 빈으로 승봉하였고 다음해인 1703년 아들 연령군이 6세이던 해에 세상을 떠남.

정황상 숙종이 처음부터 끝까지 마음을 준 후궁으로 보이는데 그녀의 장례를 치룰때 친척 박동지가 "관으로 쓸 목재가 구차하다"고 호소를 했어.그러자 숙종이 관련자들을 모두 체포 하라는 명령을 내렸어.그리고 "시간 내에 제대로 된 목재 못 구하면 사대부에서 찾아내라"고 했을정도야.

또한 명빈의 장례 당시 아들 연령군이 너무 어린데다가 군의 봉작을 못받았는데 숙종은 관례를 깨고 겨우 5살이던 아들 연령군에게 군의 봉작을 내릴정도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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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소의 유씨

출생 = 1680년
사망 = 1707년 4월 8일 (만 26~27세)

(슬하 자녀 없음)

1698년 궁인으로 있다가 승은을 입고 종4품 숙원에 책봉되었음. 당시 유씨를 후궁에 책봉하면서 그 땅과 집을 마련하기 위해 은 6,000냥과 콩 100석 등 막대한 재물이 소요되었는데, 조선왕조실록의 사관은 당시 국고가 거덜나고 백성들의 생활이 곤궁함에도 후궁의 책봉에 이처럼 돈을 쓰는 것에 대해 식자들이 한탄하고 근심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어.

1699년 단종의 복위를 기념에 정2품 소의로 진봉되었고 숙종이 처음부터 끝까지 사랑한 후궁이나 둘 사이에 자녀를 두지 못했다고 함.

1707년 20대 후반 젊은 나이에 죽었는데 정2품인지라 예장을 할수 없었으나 숙종은 신하들의 반대를 무시하고 그녀의 장례를 예장으로 치루었어.

제사를 모실 자녀와 가까운 친속이 없어 앞서 숙종에게 받은 사제에 신주를 두고 노비(환관과 궁녀)의 봉공을 받다가, 정조 즉위 직후 시행한 왕실의 사치 폐단 근절 정책 중 일환으로 이미 죽은 선왕의 공주와 후궁들에게 이속된 전답과 노비 등이 국고로 회수되면서 그녀의 신주도 수진궁으로 욺겨짐.


https://img.dmitory.com/img/202002/7IJ/AdX/7IJAdXB4swQGqs62uGWQOe.jpg

9. 귀인 김씨

출생 = 1690년
사망 = 1735년 (만 44~45세)

(슬하 자녀 없음)

위의 영빈김씨랑 별개의 인물로 종1품 귀인이였고 김씨였다는 사실과 숙종과 사이에 자녀는 없던게 기록의 끝이야. 부친은 김사구로 어떻게 숙종의 후궁이 됬는지 알 수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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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종은 9명의 부인들과 사이에 6남 2녀의 자녀를 두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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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20대 국왕 경종 이윤의 부인들 >>



https://img.dmitory.com/img/202002/1rY/a8z/1rYa8zo1qwY8am6YYyeGiA.jpg

1. 단의왕후 심씨

출생 = 1686년 7월 11일
사망 = 1718년 3월 8일 (만 31세)

(슬하 자녀 없음)

경종의 첫 부인으로 세자빈 상황에서 죽은 경우. 사옹원 첨정인 심호의 딸임, 세자빈 책봉 당시 그녀의 증조할아버지 심권이 살아있었는데 심권은 그당시 서인들의 핵심으로 당시 세자빈 간택에 큰 영향을 미친 중전 인현왕후의 뜻이 컸음.

흔히 병약한 왕세자(경종)를 곁에서 극진히 모시다가 급환을 얻어 사망한 것으로 묘사되지만, 숙종실록의 기록을 확인하면 오히려 왕세자는 건강한 편이었고 병약한 쪽은 세자빈 심씨였다. 숙환으로 풍질을 앓았고 시어머니 인현왕후 사망 당시 와병중이라 장례에 참여하지 못했어.

세자빈 가례 당시에도 극심한 복통을 일으켜 식을 전부 취소해야 한다는 언급이 있었을 만큼 심각한 소동이 있었음. 경종이 즉위하기 2년전인 1718년 갑자기 쓰러져 세상을 떠남.

그 뒤 단의빈으로 불리다 남편 경종이 즉위하고 단의왕후로 봉해졌음. 경종과 사이에 자녀는 없어.


https://img.dmitory.com/img/202002/2PM/gBR/2PMgBReL56OAQiO6qyG6k0.jpg


2. 선의왕후 어씨

출생 = 1705년 12월 14일
사망 = 1730년 8월 12일 (만 24세)

(슬하 자녀 없음)

영돈녕부사 어유구의 딸로 1719년 단의왕후가 죽고 다음해에 세자빈으로 간택되어 입궁했고 1720년 경종이 즉위하자 왕비가 되었어. 남편 경종보다 17세 연하였다고 함.

경종 1년, 경종 부부에게 후사가 없다는 이유로 하여 노론 4대신과 왕대비 인원왕후에 의해 연잉군(영조)가 왕세제로 책봉될 당시 선의왕후는 겨우 만 16세였음. 일설에 따르면 연잉군을 반대하여 종실과 비밀리에 연합하여 소현세자의 직손인 밀풍군 탄, 혹은 밀풍군의 아들인 관석을 입양하려 하였으나 경종의 급서로 실패하였다고 전해져.

시동생 영조가 즉위하자 20세 나이에 왕대비가 되었는데 영조와 사이는 정말 최악이였음. 선의왕후는 영조를 위한 모든 국가행사에 불참하기 일쑤였고 영조 역시 왕대비 선의왕후에게 돌아갈 재물등을 삭감하였음.

실제로 기록에 등장하지는 않지만, 선의왕후가 이인좌 등에게 비밀리에 언문교서를 내렸는데 "왕실의 씨가 바뀌었으니 바로 잡아라"는 하교를 내렸다고 전해지며 이인좌 등이 왕대비(선의왕후)의 밀명을 받았다고 주장한 흔적은 영조 실록에 수차례 등장함.

또한 효장세자 독살 사건에 배후로 추정되는데 당시 세자를 독살한 궁인이 왕대비 어씨를 끌어들였음. 일개 궁녀가 국본인 왕세자를 독살한다는건 불가능함. 당시 친국에서도 궁녀가 김상궁이 사주했다고 납초하였고 실록에도 김상궁은 동조를 섬기던 상궁이라고 기록되어 있었다는 점, 영조가 이를 서둘러 차단했다는 점은 의미심장함.

1730년 8월 12일 만 24세 나이에 갑자기 세상을 떠났는데 실록에는 왕후가 죽기 전날의 기록을 보면 죽기 직전까지 몸을 떨며 통곡을 하고 읍성(눈물을 흘리며 우는 소리)을 냈다고 함. 또한 손으로 뭔가를 치는 듯한 행동을 보였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에 영조가 의관들에게 그러한 증후를 본 적이 있는지 묻자 중관이 헛소리를 하는 것이라 대답하였다는 기록이 있음.

야사에는 선의왕후가 사망한 이유는 지문에 기록된 대로 오랜 지병을 앓아서가 아니라, 죽기 약 4개월 전인 1730년 4월 15일에 발생했던 영조 암살 미수 사건의 주모자로 지목되어 어조당에 유폐되자 분개하여 식사를 거부한 끝에 아사한 것이라는 추측도 있음.

시동생 영조는 그녀가 죽고 국상 기간 중에 후궁 귀인 이씨(훗날의 사도세자의 생모인 영빈 이씨)를 내명부 정1품 빈으로 삼고 대대적인 잔치를 열어 도성 안팎은 물론 노론 대신들까지 탄식을 쏟아낼 정도의 일을 저지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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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종은 2명의 부인들과 사이에 자녀는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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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ory_1 2020.02.15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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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ory_3 2020.02.15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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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W 2020.02.15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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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ory_5 2020.02.15 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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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ory_8 2020.02.15 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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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ory_12 2020.02.16 0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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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ory_13 2020.03.28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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