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인랑' 하면 떠오르는 테마곡 그레이스 오메가 듣고 가실게요~
어째 실사영화 예고는 SF나 액션, 독특한 배경설정에 초점이 맞춰진 것 같은데,
나는 애니메이션 인랑의 장르는...[멜로]랑 [잔혹동화]이기도 하다는 점을 말하고 싶어. 일본 애니판 트레일러는 사실 이쪽을 강조하고 있거든
작중에서도 언급되는 동화의 제목은 '빨간 두건'이야.
옛날에 한 여자아이가 있었는데, 엄마랑 7년이나 만나지 못했습니다.
엄마 곁으로 가기로 한 소녀는 숲 속에서 늑대를 만나 핀의 길과 바늘 길 중 어디로 갈 거냐는 질문을 받았습니다.
여자아이가 핀의 길로 간다고 대답하자, 늑대는 바늘 길로 앞서가 소녀의 엄마를 잡아먹어버렸습니다....
그래서 핀의 길을 지나 집으로 돌아간 소녀는 어떻게 됐지?
"한번 밀어 보렴. 문은 잠기지 않았단다."
늑대가 그렇게 대답했습니다. 그런데도 문이 열리지 않아서, 소녀는 구멍을 통해 집에 들어갔습니다.
"엄마 배가 너무 고파요."
"선반에 있는 고기를 먹으렴."
그 고기는 늑대가 죽인 엄마의 살이었습니다. 커다란 고양이가 선반으로 오더니 이렇게 말했습니다.
"네가 먹고 있는 건 네 엄마의 살이야."
"엄마, 커다란 고양이가 와서 내가 엄마의 살을 먹고 있대요. 정말인가요?"
"당연히 거짓말이지. 그런 고양이한테는 신발을 던지도록 해라."
고기를 다 먹고 나자 소녀는 목이 말랐습니다.
"엄마 나 목이 말라요."
"그럼 냄비 안의 포도주를 마시렴."
그러자 작은 새가 날아와 굴뚝에 앉더니 말했습니다.
"네가 마시고 있는 건 네 엄마의 피야. 엄마의 피를 마시고 있는 거라고."
"엄마, 작은 새가 굴뚝에 앉아 내가 엄마의 피를 마시고 있대요. 정말인가요?"
"그런 새한테는 모자를 던지도록 해라."
고기를 먹고 포도주까지 다 마시고 난 소녀는 엄마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엄마. 어쩐지 갑자기 졸음이 와요."
"이쪽으로 와서 좀 자도록 하렴."
소녀가 옷을 벗고 침대에 가까이 갔더니, 엄마는 얼굴까지 망토를 뒤집어 쓴 이상한 차림으로 자고 있었습니다.
"엄마, 엄마 귀는 왜 그렇게 커요? 엄마, 엄마 눈은 왜 그렇게 커요? 엄마, 손톱이 왜 그렇게 길어요? 엄마, 이가 왜 그렇게 날카로워요?"
현실이 동화와 다르듯이.... 빨간두건 언니는 순수한 피해자도 아니고, 인랑(늑대인간)도 죄책감 없이 빨간두건을 잡아먹을 수 있는 짐승이 아니야. 하지만 현실은 점점 이 잔혹동화와 겹쳐지기 시작하면서 비극이 되지.
인랑의 주인공은 반정부 테러조직 진압을 위한 특수부대에서 싸우는 인물이야. 그런데 테러조직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테러조직 소속의 소녀 '빨간두건'이 자폭을 하게 되고, 주인공은 그것을 눈앞에서 목격하게 돼. 그 트라우마가 빨간두건 소녀를 잡아먹는 늑대가 된 자신(인랑)이라는 상징으로 나타나고, 그로 인해서 계속 괴로워하는 이야기야.
이 애니메이션의 배경은 동화 속 세계가 아니라 일본이 2차대전에서 미국이 아니라 독일에 의해 패전하고 개발독재를 시전해 반정부 세력과 무력충돌을 일삼는다는 개막장 대체역사라 더더욱 상황은 노답으로 치닫고...ㅎ 원작자가 일본 좌익쪽이라 전공투 경험을 토대로 집필했다고 하고, 한국의 70~80년대 민주화 운동을 떠올리게 하는 면도 있어. 우리나라에서 리메이크할 때는 군부독재 시절 대신 통일을 앞둔 근미래 한국으로 배경을 설정했지만...
어쨌거나 배경이 이렇게 막장인 만큼 애니에서는 반정부 세력도 이들을 진압하는 정부조직도 좋게 그리지 않아. 둘 다 무력진압과 테러라는 폭력으로 사람들을 해치는 조직이고, 심지어 정부조직 측은 특기대랑 공안부가 권력다툼까지 벌이는 막장 상황이지. 이들이 대립하는 과정에서 뭉개지는 인간성을 역설적으로 표현한 게 바로 '인랑'이라고 할 수 있겠다.
영화에서는 통일을 반대하는 테러조직과 정부조직의 대립을 그린다고 하는데, 과연 어떻게 될지 기대 반 걱정 반이네 ㅠㅠ 부디 잘 뽑히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