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리정원
눈물이 찾아올 때 내 몸은 텅 빈 항아리가 되지


거리 한가운데에서 얼굴을 가리고 울어보았지
믿을 수 없었어, 아직 눈물이 남아 있었다니

눈물이 찾아올 때 내 몸은 텅 빈 항아리가 되지
선 채로 기다렸어, 그득 차오르기를

모르겠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나를 스쳐갔는지
거리 거리, 골목 골목으로 흘러갔는지

누군가 내 몸을 두드렸다면 놀랐을 거야
누군가 귀 기울였다면 놀랐을 거야
검은 물소리가 울렸을 테니까
깊은 물소리가 울렸을 테니까
둥글게
더 둥글게
파문이 번졌을 테니까

믿을 수 없었어, 아직 눈물이 남아 있었다니
알 수 없었어, 더는 아무것도 두렵지 않다니

거리 한가운데에서 혼자 걷고 있을 때였지
그렇게 영원히 죽었어, 내 가슴에서 당신은

거리 한가운데에서 혼자 걷고 있을 때였지
그렇게 다시 깨어났어, 내 가슴에서 생명은




몇 개의 이야기 6


어디 있니. 너에게 말을 붙이려고 왔어. 내 목소리 들리니. 인생 말고 마음, 마음을 걸려고 왔어. 저녁이 내릴 때마다 겨울의 나무들은 희고 시린 뼈들을 꼿꼿이 펴는 것처럼 보여. 알고 있니. 모든 가혹함은 오래 지속되기 때문에 가혹해.




어느 늦은 저녁 나는


어느
늦은 저녁 나는
흰 공기에 담긴 밥에서
김이 피어 올라오는 것을 보고 있었다
그때 알았다
무엇인가 영원히 지나가버렸다고
지금도 영원히
지나가 버리고 있다고

밥을 먹어야지

나는 밥을 먹었다




한강 작가의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라는 시집에 나오는 시들이야
나 토리는 한강 작가가 소설만 쓰시는 줄 알고 있었는데 시를 더 먼저 쓰셨더라고
사실 소설은 크게 내 취향은 아니였는데... 시는 좋은 게 너무 많다 ㅜㅜㅜㅜㅜ
  • tory_1 2019.07.24 19:54
    한강이라고 듣고 보니 정말 한강 같은 시다
  • tory_2 2019.07.24 20:45
    와 제목만 알고 있던 건데, 정말 좋다. 고마워!
  • tory_3 2019.07.24 23:27

    어느 날 운명이 찾아와
    나에게 말을 붙이고
    내가 네 운명이란다, 그동안
    내가 맘에 들었니, 라고 묻는다면
    나는 조용히 그를 끌어안고
    오래 있을 거야
    눈물을 흘리게 될지, 마음이
    한없이 고요해져 이제는
    아무것도 더 필요하지 않다고 느끼게 될지는
    잘 모르겠어


    당신, 가끔 당신을 느낀 적이 있었어,
    라고 말하게 될까
    당신을 느끼지 못할 때에도
    당신과 언제나 함께 였다는 것을 알겠어,
    라고


    아니 말은 필요하지 않을 거야
    당신은
    내가 말하지 않아도
    모두 알고 있을 테니까
    내가 무엇을 사랑하고
    무엇을 후회했는지
    무엇을 돌이키려 헛되이 애쓰고
    끝없이 집착했는지
    매달리며
    눈먼 걸인처럼 어루만지며
    때로는 당신을 등지려고 했는지


    그러니까
    당신이 어느 날 찾아와
    마침내 얼굴을 보여줄 때
    그 윤곽의 사이 사이,
    움푹 파인 눈두덩과 콧날의 능선을 따라
    어리고
    지워진 그늘과 빛을
    오래 바라볼 거야.
    떨리는 두 손을 얹을 거야.
    거기,
    당신의 뺨에,
    얼룩진.


    한강, 서시


    _


    태어나 두 달이 되었을 때
    아이는 저녁마다 울었다
    배고파서도 아니고 어디가
    아파서도 아니고
    아무 이유도 없이
    해질녘부터 밤까지 꼬박 세 시간


    거품 같은 아이가 꺼져버릴까 봐
    나는 두 팔로 껴안고
    집 안을 수없이 돌며 물었다
    왜 그래.
    왜 그래.
    왜 그래.
    내 눈물이 떨어져
    아이의 눈물에 섞이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말해봤다
    누가 가르쳐준 것도 아닌데
    괜찮아.
    괜찮아.
    이제 괜찮아.


    거짓말처럼
    아이의 울음이 그치진 않았지만
    누그러진 건 오히려
    내 울음이었지만, 다만
    우연의 일치였겠지만
    며칠 뒤부터 아이는 저녁 울음을 멈췄다


    서른 넘어야 그렇게 알았다
    내 안의 당신이 흐느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울부짖는 아이의 얼굴을 들여다보듯
    짜디짠 거품 같은 눈물을 향해
    괜찮아


    왜 그래,가 아니라
    괜찮아.
    이제 괜찮아.


    한강, 괜찮아


    내가 이 시집에서 좋아하는 시도 두개 놓고 간당

  • tory_5 2019.07.25 14:25
    나 두번째 시 진짜 좋아함 ㅠㅠ나도 스무살 이후로 처음 산 시집이 이 책이엇는데 너어무 좋앗어ㅠㅠ
  • W 2019.07.25 15:41
    나도 이 두개 좋아해!! 4개 중에 엄청 고민하고 고른건데 토리가 써줬네!
  • tory_4 2019.07.25 09:06

    시가 먼저 등단되고 나서 다음에 소설로 등단했을걸?ㅋㅋ 근데 나는 소설 쪽이 더 취향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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