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entertain.v.daum.net/v/20190104132438039
이건 <남자친구>라는 드라마가 갖고 있는 정통 멜로의 색깔이다. 사건들로 흘러가기보다는 김진혁과 차수현이라는 두 인물의 감정에 집중한다. 회사 내에서 정치적인 사건들이 벌어지지만 그 사건들보다 드라마가 더 집중하는 건 그 일을 겪는 차수현의 심경이고, 김진혁을 속초로 발령 내는 사건이 벌어지지만 그것보다 드라마가 초점을 맞추는 건 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어 더 애틋해지는 두 사람의 관계다.
그래서 속초의 동화호텔에서 일하는 김진혁이 유명 잡지의 기자인 줄 모르고 그 아이가 잃어버렸다는 인형을 찾기 위해 몇 시간을 노력한 일이 미담이 되어 기사화되는 어찌 보면 드라마의 이야기로서는 소소한 사건이 이 드라마에서는 꽤 크게 느껴진다. 큰 사건은 없지만 차수현과 김진혁이 잘 됐으면 하는 바람이 점점 커지고, 그래서 그렇게 인정받는 모습에 내 일처럼 기분이 좋아지는 것.
복잡하고 많은 사건을 채워 넣지 않는 대신, 그 여백을 채우는 건 시 같은 글귀가 만들어내는 감정 선이다. 속초의 바닷가 앞에서 김연수의 소설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을 읽는 장면이 그렇다. 파도가 몰려오는 그 바닷가에서 차수현을 만나 끌어안은 김진혁은 그 소설의 글귀를 속삭인다.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널 생각하는 것은 나의 일이었다.”
이런 장면은 내부순환로 교각에 전시된 김환기 화백의 그림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를 보며 그 시구가 들어있는 김광섭의 <저녁에>라는 시를 읽는 대목에서도 등장한다. ‘저렇게 많은 중에서 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본다.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 그 별 하나를 쳐다본다.’ 이 시구는 쿠바에서 정원의 주인을 기다리다 문득 하늘의 별들을 본 김진혁이 다시 읊조리는 대사가 된다. 그건 떨어져 있어도 연결되어 있는 차수현과 김진혁을 에둘러 표현하는 글귀다.
사실 큰 사건이 벌어지지 않기 때문에 밋밋해질 수 있지만, <남자친구>는 그 빈 공간을 차수현과 김진혁 두 사람이 갖는 설렘과 아픔과 기쁨 같은 감정들로 채워 넣는다. 시구들은 그 감정선을 깊게 해주는 역할을 하고, 아마도 작가는 이런 감수성이 지금의 사회에서는 중요한 경쟁력이 된다고도 생각하는 것 같다. 결국 쿠바에서 정원 주인을 만나 오해를 풀고 다시 호텔 사업을 할 수 있게 만든 건, 비행기에서 내내 안 되는 스페인어로 꾹꾹 눌러 쓴 편지에 담긴 진심이었다.
차수현과 김진혁 두 사람의 감정선이 드라마의 전체를 이끌어가는 동력의 전부처럼 느껴지는 이 작품에서 이를 연기하는 송혜교와 박보검의 진가가 보인다. 사실 이 두 사람의 섬세한 감정 연기가 아니라면 이만한 설렘이 가능했을까. 과장되게 말해 두 사람을 보는 것만으로도 이 드라마를 찾아보게 된다는 말이 그저 허튼 소리로만 들리지 않는다.
둘이 케미 없다는 사람들도 있는데 난 너무 잘 보고 있어서 충분히 만족하고 있어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