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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과의 일대기를 정리해보려 한다. 돌아오라는 말도, 왜 그런 선택을 했느냐는 말도 당신에게 짐이 될 것 같아 하지 않겠다. 다만 그런 선택을 했을 당신의 마음 어느 면면과, 그것을 행동으로 옮겼을 어느 시점에 잘만 살아가고 있었을 나를 떠올리면 눈물이 나는 건 멈출 수 없다.

당신을 만난지 9년이 된다. 오로지 나만의 시간으로 환산했을 때다. 나는 중3에 당신을 만났다. 이제는 물에 젖은 색지처럼 희끄무레해져 버린 기억 더미 속에 당신이 박혀 있다. 희미하다만 당신은 분명 카메라를 응시하며 나름의 열성을 담은 손짓을 하고, 목소리를 내고, 여럿을 향해 당신이 여기 있다 증명하기 위해 무던한 노력을 했을 것이다.

나는 당신을 치열하게 부러워해본 적이 있다. 열등감으로 치환해도 전혀 부족함이 없는 감정이었다. 나는 누구에게나 사랑 받고 싶었고 그런 내게 당신은 참 사랑 잘 받을 줄 아는 사람처럼 보였다. 사진 몇 장, 영상 몇 개 속에서 당신은 정말로, 정말로 빛났다. 누구나 당신을 좋아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이 내 눈에 보여 나는 그게 무섭기도 했다. 가끔은 당신이 좋아서 숨이 다 차올랐다. 아무에게나 사랑을 갈구하는 열여섯이 품기에는 너무도 벅찬 마음이 분명했다. 나는 당신과 있는 나의 모습을 상상하다가 고꾸라지고, 당신과 나의 거리를 재다가 현실을 깨닫고, 그러다가도 당신을 보면 좋아 웃었다. 당신이 하는 모든 것이 마음 속에 콕콕 와박히는 이런 걸 표현할 길이 없어 귀엽다고 했다. 귀엽다는 말로는 표현이 하나도 안 된다는 걸 알면서, 묵묵히 당신이 귀엽다고 했다.

그러다 정도가 지나쳤다는 걸 깨닫고 등골이 서늘했던 적이 있다. 당신에게 유일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망상을 연어가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듯 끝없이 했다. 끝없이. 무서웠다. 곧은 애정의 끝에 결말이 나지 않는다면 허무해 미칠 것 같았다. 그때부터 당신과 거리를 두어야겠다는 생각을 베개 밑에 넣어두고 잤다.

그렇게 거리를 두자 감쪽같이 당신이 조금 편해졌다. 그런데도 당신에게서 나는 좀처럼 멀어지지 않았다. 당신의 목소리, 당신이 쓴 가사, 당신이 쓴 음계 같은 것들이 내 삶 곳곳을 스며들었다. 꽤 많은 장면에서 그랬다.

당신의 앨범이 나오면 꼭 챙겨 들었다. 당신의 노래가 좋기도 했지만, 정말 솔직히 말하자면 노래에서 풍겨나오는 당신의 삶이 듣고 싶었다. 당신은 그런 식으로 활동했던 아티스트니까, 자신을 조금 녹여 연료로 쓸 줄 아는 아티스트니까. 그때는 그게 당신이 특출나게 가진 재주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그게 후회스럽다.

엘리베이터를 만드는 과정이 담겨 있는 쇼프로를 밥을 먹다 볼 게 없어 뒤늦게 틀었던 적이 있다. 당신은 우두커니 앉아 엘리베이터는 당신 자신에게 주는 곡이라고 말했다. 자신이 힘든 걸 그 노래를 만들며 알았다는 당신을 보며 나는 무슨 생각을 했던가. 당신 좀 힘들구나, 내가 당신을 추앙하고 사랑받을 줄 아는 사람이라고 떠들고 다닐 때도 당신은 힘들었을까. 그러고 보니 내가 당신에 대해 아는 것이 몇 개나 있었더라. 생년월일, 나이, 팀 내 포지션, 방송으로 비치는 알량한 습관 몇 개, 눈물이 많다는 것, 누나를 무척이나 아낀다는 것 정도. 그걸 깨달으니 또 허무해서 견딜 수 없었다. 하지만 이제 그런 생각에도 굳은 살이 껴 그러려니 했다.

그렇게 계속 밥을 씹고 있으려니 당신이 예전에 살았던 곳을 한참 걷고 있었다. 창신동, 달동네처럼 오밀조밀한 집의 거리와 회백색 언덕의 이미지가 당신과는 참 어울리지 않았다. 당신은 발에 압정이 박히기라도 한 것 같은 애매한 표정을 짓고 그곳을 멤돌았다.

창신동은 우리 집과도 멀지 않고, 우리 학교에서는 더더욱 가깝다. 그렇지만 교통이 잘 통하지는 않아 자주 들르지는 못한 곳이다. 그래서 그런지 당신이 살았다던 그곳과, 당신이 그곳에서 살았을 얼마간의 시간이 더 낯설게 느껴졌다. 무한히 차오르는 자기 인정 욕구와 싸웠다고, 당신은 그런 뉘앙스로 말했다. 그때는 또 그것을 당신이 성공할 수 있는 이유로 넘겨버렸다. 당신을 실제로 아는 주변 사람들이 이따금 말하듯, 당신은 일적인 면모에서는 아주 강경했으니까. 그 강경함이 어떻게 보면 과거로부터 발현된 것이려니 싶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당신이 정말 대단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조금 다르게 느꼈던 지점이 언제일까. 서서히 쌓여가는 당신의 주변인들의 말과, 콘서트가 겹쳐졌을 그 어느 즈음이었을 거다. 당신은 당신을 소진시킬 때까지 일한다고 모두가 걱정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당신이 무언가를 잊고 싶어서, 혹은 생각이 가능한 시간조차 만들고 싶지 않아서 그런 걸까 생각했다.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당신은 라디오를 했다. 나는 그 라디오를 많이 듣지는 않았지만, 당신이 그 라디오에 얼마나 많은 애정을 갖고 삶을 기댔는지는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당신은 막방 때 숨이 넘어가기 직전까지 울었다. 네이비색 수트를 입고 사랑과 경애가 담긴 편지가 널린 라디오 부스에 앉아, '마지막'이라는 단어의 육중함을 세상에서 혼자 짊어진 듯이 그렇게. 나는 당신의 라디오를 잦게 듣지도 않은 사람인데 그 모습이 슬퍼 흘러나오는 눈물 몇 방울을 훔쳤다.

당신의 방은 온통 까맣다고 했다. 빛이 들어오지 않게 검은 색지를 창문 곳곳에 붙여놓았다고 당신이 직접 말하는 것을 들었다. 당신의 노래 중에는 간혹 그 까만 색지를 조각조각 내 녹여낸 것 같은 가사와 음계가 있었다. 이전까지만 해도 감성적이라는 단어 정도로 그런 기분을 퉁치곤 했는데, 어느 순간 불가하다고 느꼈다. '놓아줘'를 듣고부터였다.

'놓아줘'만 들으면 다 부질없어지고 마는 것이었다. 그냥 노래를 듣는 일개 청자인 나도 느낄 정도로 위태롭고 처절했다. 물론 그때는 당신이 이렇게 될 것이라는 생각을 단 한 번도, 1초도 해본 적이 없지만 당신이 정말 힘들 때는 이런 기분을 느꼈겠구나 생각했다. 혀가 아릿할 정도로 기분이 이상했다.

그 이상한 기분을 내 연료로 삼았던 적도 있다. 면접에 떨어졌을 때, 이도저도 아닌 내 처지를 비관할 때, 내가 저 멀리 있는 벌레보다도 못하게 느껴질 때마다 '놓아줘'를 찾아 이어폰을 꽂았다. 당신은 손을 놓아달라고 외쳤고 당신이 낼 수 있는 가장 높은 음의 근사치를 찾아 있는 힘껏 뱉을 때마다 나 대신 울어주는 기분이라 후련했다. 지금 보니 나는 당신의 우울을 그런 식으로 소비하고 있었다. 아프다.

유리병편지 콘서트에 갔을 때 기억에 가장 남는 것도 '놓아줘'였다. 넓지는 않은 무대를 멋지게 꾸미고, 스탠드 마이크를 꾹 붙잡은 당신이 후렴구를 부르고, 끝부분 애드립을 칠 때 등골부터 손바닥까지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성량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당신은 그때 정말 당신 자체를 내던지고 있는 것 같았다. 그 에너지를 일개 관객인 내가 받아내기도 버거웠다.

그렇게 또 이런 저런 그런 시간이 지나, 당신에게 적잖이 관심을 꺼둔 나날이었다. 그래도 당신의 노래를 늘 들었다. 듣고 글의 몇 구절을 생각하고, 옛날을 떠올리고, 미래를 기대하고, 또 과거를 후회하고. 그런 날들이었다. 매 출근과 퇴근의 반절 이상을 당신과 함께 했다.

당신, 내게 참 많은 걸 준 사람이었다. 당신으로 인해 설명조차 불가한 감각 여러 개를 배웠다. 당신 그걸 아는지.

당신의 노래를 한동안 듣지 못하겠지. 집안 곳곳에 있는 당신의 흔적을 어떻게 치워야 할지 버스에서부터 막막했다. 당신의 부재에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이렇게, 당신과의 시간을 해부하듯 정리해 되도않는 애도를 하는 것.

오래도록 당신을 기억하겠다. 그곳에서만큼은 당신이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여태까지는 참 상투적이라고 생각했던 이 말을 온 진심으로 전한다.

당신, 참 고생했어. 사랑해.
김종현.
  • tory_1 2017.12.19 02:16
    너무 소설같다. 소설같아서 현실적이지 않은 글 같다....보면서 또 한참 울었네. 편히 쉬길. 고마워, 종현아. 고생했어.
  • tory_2 2017.12.19 02:38
    삭제된 댓글입니다. (삭제일시: 2018/03/16 06:29:10)
  • tory_3 2017.12.19 02:59
    좋은 글이다 그는 너톨처럼 많은 사람들한테 영감을 준 사람이었을거야
  • tory_4 2017.12.19 03:23
    너무 절절한 글이다. 종현이도 토리도 행복하길..
  • tory_5 2017.12.19 05:00
    종현아 고생했어....
  • tory_6 2017.12.19 22:06
    좋은 글 써줘서 고마워.. 또 울었네ㅠ 종현아 그곳에선 편히 쉬어...
  • tory_7 2019.07.23 23:31
    종현이 잘 지내겠지
  • tory_8 2019.07.27 01:25
    담담하고 슬프다
  • tory_9 2021.09.23 17:08
    종현이가 보고싶어
  • tory_10 2022.06.04 22:21
    삭제된 댓글입니다. (삭제일시: 2023/02/26 00:4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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