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
안녕 톨들!
날씨도 음침하고 해서 두 이야기를 해 볼까 해. 조금 시시할지도 몰라. 그냥 내 일상에서 일어나는 일이니까.

그전에 내 얘기를 쪼끔 해야겠지? 나는 어렸을 때부터 정체불명의 존재들을 봐왔는데, 신기하게도 점점 나이가 들수록 그 빈도가 줄어들더라고. 그래서 요즘은 이따금씩 흐릿하게 혹은 불현듯 선명하게 그 존재들을 마주치거나 지나치곤 해. 
요약하자면 영적으로 애매하게 트여 있는 사람. 잇츠 미.



첫 번째 이야기는 경복궁 근처 카페에서 있었던 일이야. 나톨은 한동안 기시감 정도만 느꼈지 눈에 걸리는 건 없어 컨디션이 꽤 좋았어. 기분도 퍽 좋았고. 어떤 상황에서든지 걔들과 마주치는 건 그다지 유쾌한 일이 아니거든….
암튼 찾아간 카페는 팝업으로 한옥을 대관한 곳이었어. 해질녘쯤 도착해 정원과 가까운 창가에 자리잡고 앉자마자 머리가 죄듯 지끈거리는 거야. 손바닥도 따끔거리고 몸이 서늘해지는 게 오래 못 앉아있겠구나 하고 서둘러 커피를 흡입하고 있는데 점점 인지하게 되더라고. 내 정면에 있는 유리창 밖에서 혼자 몸을 흔드는 남자를 말이야. 

그때 심경: 와 이거 걸리면 사달난다.

요 몇 주 잠잠하더니 갑자기? 이런 강자를요? 
진심 오금이 쪼그라들더라. 하늘은 완전 가물해져서 해가 다 넘어갔고 걔는 갈수록 더 크게 몸을 양옆으로 흔드는데 얼굴을 다시 볼 엄두도 안 나고 다시 보고 싶지도 않았어. 그냥 달고나 판대기에 눌린 것처럼 엄청 넙데데한 인상에 머리통 자체가 컸어. 몸에 비해 머리가 큰데 그걸 제대로 못 가누고 몸을 흔들어대니까 더 기괴해 보였던 것 같아.
나는 완전 얼어붙어서 눈만 데굴 굴려 유리창 끝만 빤히 봤어. 밑에 뭐가 아른거리든 그냥 한참. 그러자 함께 갔던 일행(나톨 사정을 앎)이 계속 나를 주시하고 있었는지, 내 이름을 딱 부르더라. 그제서야 퍼뜩 일행을 쳐다봤더니 걔가,

"내 뒤에 뭐 있지?"

하는데 그때부터 닭살이 미친듯이 돋더라. 
나톨은 고개를 끄덕이지도 않았고 흔들지도 않았고 그냥 복화술하듯이 나가자나가자나가자나가자 그랬어. 
그리고 허겁지겁 짐을 챙겨서 매장을 뛰쳐나와 주차장까지 뛰듯이 걷는데 일행이 자꾸 꼬치꼬치 캐묻는 거야. 뭐였냐고. 뭐 봤냐고. 나는 계속 아니라고만 했는데 얘가 왜 이러나 싶을 정도로 너무 징하게 물어보는 거야. 코앞에는 궁이고. 이 근방에서 이런 얘기하지 말자, 나중에 얘기해주겠다 하면서 막 달래니까 일행이 겨우 호기심을 접더라고.
그후로 그날에 대해 일행과 얘기하는 일은 아직까진 없었어. 일행도 실컷 궁금해해놓고선 다신 언급하지 않았지. 근데 가끔 그날을 생각하면 의구심이 들어. 나중에 얘기해주겠다 했을 때, 알았다고 한 뒤로 분명하게 들었거든. 내 머리 뒤에서 "재미없다"고 하는 꽉 막힌듯한, 목이 졸린듯한 목소리를. 



두 번째 이야기는 정말 소소해. 그냥 나 혼자 오 재밌네, 신기하네,했던 일. 나톨은 얼마 전에 해외로 휴가를 갔다왔어. 근 10년만의 해외여행이라 무척이나 들떠있기도 했고 플랜을 전부 나톨이 짜서 부담도 긴장도 됐지. 이건 첫날, 마카오에서 경험한 거야.
나톨과 함께 휴가를 온 일행(최상급 여행자)은 나의 홀로서기를 도와주기 위해서 웬만한 일은 내 힘으로 해결하길 원했어. 이말인즉슨 일정이 엄청나게 삐걱거렸다는 거지. 우여곡절 끝에 숙소에 도착해 짐을 놓고 주린 배를 붙들고 찜해둔 밥집을 찾아가는데, 6월의 마카오는 그냥 물속을 걷는 수준이라 죽을맛이더라. 심지어 동선은 다음날 일정과 꼬이고 컨디션은 점점 떨어지고….

아무튼 점점 뭐 씹은 얼굴이 되어가는데 구글맵이 골목으로 계속 우리를 인도하더라고. 일반 민가들이 밀집해 있는, 가게도 없고 가로등만 문득문득 있는 그런 골목들로. 언덕배기를 오르다 보니 기분이 오묘해지더라고. 뭔가 찜찜한 건 아니고, 그냥 실천 같은 게 살살 내 몸을 스쳐지나는 느낌.
길이 어두워선지 인적도 드물었어. 가끔 기척? 기운? 같은 게 느껴져서 가지처럼 뻗은 골목을 슬쩍 보면 또 뭐가 희끄무레하게 살랑살랑 흔들거리는 거야. 바람 한점 안 부는데. 힘들어가지고 헉헉거리면서 몇 걸음 더 가니까 또 골목에서 희멀건한 게 튀어나와서 앞을 가로질러 지나가. 걔는 또 살랑거리지 않고 통통통 튀어서 가더라. 

그냥 그 주변엔 계속 그런 게 있었어. 그게 소름끼치거나 해를 끼칠 것 같이 느껴지지 않았어. 그저 어른어른하게 지나다녔고 그게 이상(?)하게도 좀 재밌더라고. 갑자기 더윌 먹었는지.

그래서 앞선 일행한테 "여기 기운이 되게 신기허다" 그랬는데, 그때부터 딱 향냄새가 솔솔 나기 시작하는 거야. 나톨 혼자 오 뭐야? 하고 계단 올라가면서 계속 두리번거렸는데 오른쪽에 작게 사당?이 있더라고. 빨간 등과 삿갓처럼 생긴 향들이 주렁주렁 달려있는 진짜 작은 사당이었어. 여자애가 앞에서 기도도 하고 있더라고.
나톨에겐 이모저모한 타이밍이 딱 들어맞기도 했고, 그 직전까지 알짱알짱거리던 게 사당을 지나자마자 빗물에 씻겨간듯 보이지 않았던 것도 그렇고 지금도 여전히 그 밥집 찾아가던 길목에서의 일이 흥미롭게 느껴져. (물론 그뒤로 마카오에서 별일없었기 때문에 지금까지 흥미롭게 여길 수 있었어….)



준비한 이야기는 여기까지야. 시시하지? 그래도 읽는 동안 즐거웠기를 바라. 아, 나톨은 아직도 해질녘엔 경복궁 근처는 안 가. 어떤 횡단보도는 특히. 그때 그 목소리 들었을 때 뒤돌아봤었거든. 톨들도 예상할 수 있겠지만 내 뒤에, 



누가 있었겠어
  • tory_1 2023.06.21 23:09
    삭제된 댓글입니다. (삭제일시: 2023/08/28 18:50:10)
  • tory_2 2023.06.22 00:03
    토리 왜구랭 ㅠㅠㅠㅠㅠㅠㅠㅠ. 오 재밌었다 하고 만족스러웠다가 급 거실로 텨나갔자낭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ㅜㅜㅜㅜㅜㅜㅜ
  • tory_3 2023.06.22 07:13
    삭제된 댓글입니다. (삭제일시: 2023/10/24 06:42:53)
  • tory_4 2023.06.22 10:11
    경복궁 얘기 존무ㅠㅠㅠ
  • tory_5 2023.06.22 10:26
    필력 뭐야... 개무서워....ㅠㅜㅠ 겁나 소름끼친다ㅠㅠ
  • tory_6 2023.06.22 10:55

    무섭다아악!!!!!

  • tory_7 2023.06.22 13:37
    넘 재밌다~~
  • tory_8 2023.06.22 13:47

    으아..으아아ㅏㅏㅏㅏㅏㅏㅏ뭐야 무서워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내 뒤에 뭐있지? 라는 말에 대답했으면 큰일날 뻔 했겠다 ㄷㄷㄷㄷㄷㄷㄷ와....ㅠㅠㅠㅠㅠㅠㅠㅠㅠ

  • tory_9 2023.06.22 15:50
    삭제된 댓글입니다. (삭제일시: 2023/06/22 17:19:09)
  • tory_10 2023.06.22 18:46
    헐..뭐냐고 물어봤던게 일행이 아니었던거야..? 그 귀신이 일행한테 빙의됐던거야..?뭐였을까🤔암튼 소름끼친다ㄷㄷ
  • tory_11 2023.06.23 06:24
    삭제된 댓글입니다. (삭제일시: 2023/07/27 10:29:08)
  • tory_12 2023.06.23 09:18

    엄청 무서운데 재밌어ㅠㅠㅠ

    두 번째 얘기는 예전에 읽었던 일본 소설 분위기 생각도 나고 

  • tory_13 2023.06.24 09:22
    와 넘 신기하고 재밌다 막줄 정말 무서웡 ㄷ 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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