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는 예전에 사당역 지나서 가야 하는 곳에서 과외를 했었어
그 친구가 부심 부리는게 시계 안 보고 숫자 세기 같은거 잘함
그래서 평소에 지하철 타면 역 갯수도 속으로 세고 시간도 속으로 재서 어디 역인지 안 보고도 잘 내린대
그리고 할 일 엄청 미루는 성격이라 과외 가는 길에는 항상 과외 준비(채점)을 막간에 지하철에서 하다가 내리는데
가끔 지하철역 하나를 더 세서 실수할 뻔한 일이 가끔 있었어
이제 나이 들어서 가물가물한가 슬펐대 이 얘기 나한테도 해줬는데 듣고 놀렸어 술처먹어서 그런거 아니냐고
알고보니 사당역 지나가는 그 구간에만 실수하는거야
평소 안 가는 길이라 그런가보다 생각하고 그때부터 사당역 지나가는 구간에만 역 도착 알림 방송(?)할 때 집중해서 세고 멈출 때마다 고개 들어서 역 안이 어떻게 생겼는지 보고 그랬대
그러던 어느날
전날 술 진탕 마시고 거의 사흘간 열시간 자고 최악의 컨디션으로 과외를 가는데
그날도 지하철에서 공책을 무릎에 올려놓고 채점하고 있었대
여느때처럼 역 도착 소리가 나서 고개 들었는데
안내방송도 끝나서 멈춰도 10초 전에 멈춰야 할 지하철이 여전히 터널 안을 쌩쌩 달리고 있는거야
그리고 그런거 있잖아 분명 나는 뭔가를 들어서 역에 도착했다는 결론까지 내렸는데
5초 전에 들은게 무슨 멜로디인지 무슨 언어였는지 하나도 기억 안나는 결론만 머리에 남은 상태?
그리고 자기 눈이 갑자기 침침해진 것처럼 지하철 안이 어둑어둑한 느낌이었대
쨌든 도착소리는 들었으니 속으로 역 하나 지났다고 셌는데 지하철은 쌩쌩 가고 있어서 갑자기 길을 잃은 기분이었대
잠을 못자서 그런가 아님 지하철 고장인가 하고 주위를 둘러보는데
건너편 대각선 창밖에 그 일본 인형탈 같이 계란형에 하~얗고 미소짓는 얼굴이 유리창에 코를 붙이고 달라붙어서 지하철 안을 들여다보고 있더래
진짜 뽀얗게 티 한 점 없이 하얗고 사람 같지는 않은데 그렇다고 인형이라고 하기엔 표정도 움직이고 진짜같은
거의 눈 마주칠 뻔한 순간 무릎에 색연필이 떨어져서 줍느라 아슬아슬하게 피했는데
줍는 그 순간에도 그 인형이 자길 쳐다보는게 곁눈질로 보이더래
그리고 그전엔 그냥 실눈?으로 미소지었는데 지금은 흥미진진한 듯이 눈이 사람 일수 없을 정도로 비정상적으로 커져서 자길 쳐다보는 게 곁눈질로 보이더래
이미 온몸이 떨리는데 절대 그게 보인다는걸 들키면 안 될 것 같더래
일단 안경을 벗었대
그 친구가 눈이 안 좋아서 안경 벗으면 3미터 넘는게 안 보이거든?
그러니 그 얼굴이 하얀 동그라미로 보였겠지?
그때부터 그냥 저건 비닐봉지다. 어쩌다 창문에 달라붙었는데 내가 착각했다 이렇게 마인드컨트롤을 하기 시작했대
상식적으로 사람일수가 없을 정도로 하얗고
사람이어도 창문에 붙어있지 않는 이상 계속 달리는 지하철을 속도 맞춰가며 안을 들여다볼 수는 없잖아
그렇게 마인드컨트롤을 해도
집요하게 그 얼굴이 자길 쳐다보는게 느껴져서 도저히 아무것도 못하겠더래
너무 무서워서 바닥쪽으로 사람들 발을 봤는데
보통 열차 도착 소리 들리면 일어날 사람들 일어나잖아
그런데 아까 전부터 아무도 안 일어나고 그냥 평범하게 앉아있었대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혼자 그걸 겪고 있다는게 더 무서워서 문제집 가방에 집어넣는데 가방을 무릎 위로 올리려면 고개를 살짝 들수밖에 없잖아
이때 까무러칠뻔한게
그 하얀 동그라미 밑에 하얀 손모양의 타원이 두개가 보이더래..
누가 밖에서 들여다보고 있다가 두 손바닥을 창문에 댄 것처럼
그리고 그 존재가 유리창을 계속 손바닥으로 치는 것처럼 손바닥이 떼졌다 붙었다..
그리고 마치 머릿속에서 유리창을 손바닥으로 치는 소리도 울리는 것 같았대
너무 무서워서 폰 꺼내고 헤드폰 끼고 좋아하는 아이돌 노래 틀고 갤러리 들어가서 최애 사진 계속 보고
지하철 알림방송 들릴 때마다 사람들 일어서는지 나만 들리는 건 아닌지 신경 곤두세우고 있었는데
최애 사진을 보니 너무 귀여워서 맘이 편해졌대
그렇게 도착할 때가 돼서 고개를 드니까 그 이상한 분위기가 사라지고 얼굴도 사라졌대
얼굴 나타난게 사당역 근처인지 그 전인지 잘 모르겠는데 (그 전에 역 몇개를 셌는지도 다 까먹었대)
어쨌든 그 분위기?가 풀린건 사당역이라고 들었어
그 날 너무 무서워서 과외 끝나고 택시 타고 집 갔고
그 후부터는 지하철에서 무슨 소리를 들어도 폰에서 눈을 떼지 않는대
이 얘기 듣고 나도 지하철 타면 진짜 ㅠㅠ 폰만 한다
사실 그 전부터도 폰만 하긴 했는데
혹시 그 존재는 사당역을 지나가는 모든 지하철에 붙어서 창문 안을 보고 있는데 우리가 폰하느라 눈치 못 채는거 아닌가 싶고
쨌든 그랬대.. 허무하게 끝나서 미안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