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자신을 괴롭혔던, 산에서 원죄를 만든 그날부터 서진은 죄책감으로 폐쇄적인 사람이 돼 버렸는데, 한번도 그 죄를 정면으로 바라보고 식구들과 나누고 분출하지 않았어. 그러기엔 자존심이 너무 세고 자아가 강하기 때문에. 이런 사람들은 스스로 자신을 나쁜 놈이라고 규정짓고 자신을 벌하지. 타인이 자신을 심판하게 두지 않아. 환이가 누누이 말했듯이 식구들에게 죄를 고백하고 심판하게 뒀으면 서진은 이미 오래전에 용서받고 평화를 찾았을거야. 자신의 죄에 대한 자각은 분명한데 이걸 다른 사람 앞에 어떻게 내려놔야 할 지 모르고 자존심상 내려놓을 생각도 못하기 때문에 오히려 스스로를 더 벌하면서 불행해지는 경우.
이 드라마 내내 서진한테 가장 중요한 문제는 산에서의 원죄로부터 어떻게 벗어나느냐 그거야. 예지의 사랑을 쟁취하는 게 아니라. 서진은 예지한테 반한 순간부터 사랑으로 구원받고 안정을 찾으려고 하지만 그건 해결방법이 아니야. 왜냐하면 서진의 죄는 다른 곳에서 태어났고 용서를 구해야 할 사람도 예지가 아니니까. 그런데 서진은 막연하게 예지한테 정착하면 행복해질 거고 그걸로 충분하겠지 생각했어. 하지만 충분하지 않았어. 이미 사고 나기전 5화에서부터 둘 사이에 균열이 생기잖아. 결혼 전만 해도 만난지 얼마 되지도 않은 예지한테 묻지도 않았는데 불편한 가정사 술술 불더니 결혼하고 나선 자기 문제에 대해 말을 안 해. 난 내 얘기 하는 거 그만둔지 오래라면서. 분명히 예지한테 기대고 싶다고 했으면서 결혼 후에는 혼자 문제 끌어안고 끙끙대지. 생각해보면 결혼 전 예지에 대한 태도가 더 기적같은 일. 그 때 예지가 누군가를 가지는 게 절실했던 것처럼 서진도 누군가한테 정착함으로써 마음의 불행을 극복해보려고 노력한 거 아닐까.
사고가 안 나서 결혼생활 문제 없었어도 마지막회에 드디어 환이한테 용서해 달라고 말 하는 그런 순간이 없다면 서진 인생에 완벽한 안식은 없었을 걸? 그래서 예지와의 이혼으로 성숙하는 게 너무 완벽한 전개야. 평생 예지없이 살 미래를 마주하고 나서야 자기를 바꾸고 내려놓고 용서를 구하잖아. 예지나 환이처럼 끝없는 절망과 슬픔 속에서도 그래도 긍정적으로, 꿋꿋하게 버텨나가는 사람들과 서진은 결이 달라. 어떻게 보면 더 비극적인 인물이지. 난 서진이 남은 인생을 평생 예지에 대한 후회로 살 것 같은데, 사랑만으론 부족하고 고통과 절망, 후회가 더해져야만 완성되는 사람이라는 게 참..... 잘못된 선택으로 불행을 자초하는 사람이라는 게 불쌍함.
7년동안 연락 안 하고 다른 여자랑 살고 온 건 너무나 치명타였음.. 그걸 어떤 배우자가 참아줘ㅠ 재깍 돌아왔다면 예지 성격에 서진이 어떻게 망가지더라도 끝까지 품고 갔을 텐데... 마지막에 헤어지면서 서진이 그러지. 사고 나고 바로 돌아와서 그 시간만이라도 같이 있었다면 좀 덜 아쉬웠을 것 같다고. 자기도 깨달은 거지. 설사 돌아와서 둘이 같이 불행 겪다가 볼 꼴 못 볼 꼴 다 보고 정 떨어져서 헤어지더라도 이런 식으로 끝나는 것보다는 훨씬 나았을 거라는 걸. 그게 두려워서 7년을 끌었다는 게 더 바보같은 짓이었다는 걸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