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두유워너빌더 스노우맨~의 리듬에 맞춰 조심스럽게 문을 두드렸지만 역시나, 평소처럼 작은 목소리로 꺄르륵 웃는 기척(들어와도 된다는 암묵적인 허락)은 들려오지 않았다. 방 안에 들리지 않을 정도로 조심스럽게 한숨을 쉰 유진은 흠- 하고 목을 살짝 가다듬고 최대한 평정심을 가장한 온화한 말투로 물었다.


  "혜진아~ 아빠 왔어요. 우리 혜진이 보고 싶어서 이렇게 일찍 왔는데 벌써 자니?"

  한쪽 귀를 방문에 바싹 붙이고 주의를 기울여 봤지만 이불 자락 부스럭거리는 기척조차 나지 않았다.

  "혜진아? 아빠 잠깐 들어가도 돼?"

  역시나 묵묵부답. 앞길이 여간 깜깜하지 않을 것 같다는 불길함이 몰려왔다. 그래도 일단 어쩌고 있는 지는 눈으로 직접 봐야하겠기에 유진은 문고리를 잡고 조심스럽게 돌리며 말했다.

  "아빠 들어간다?"

    


  열린 문틈으로 고개를 빼꼼 넣어서 들여다 본 방 안은 어둑했다. 창의 블라인드가 암막 모드로 다 내려간 상태에서 침대 위에 봉긋하게 솟은 자그마한 실루엣이 등 뒤의 거실에서 비치는 전등빛을 받아 희미하게 드러났다. 유진은 방의 전등을 켜지 않은 채 조심스레 침대로 다가가서 가장자리에 걸터앉았다. 매트리스의 진동을 느꼈을텐데도 이불 속에 웅크린 작은 실루엣은 옴짝달싹도 하지않았다.


  "혜진아.."


  어스름한 어둠 속에서 눈을 가늘게 뜨고 찬찬히 보니 '여기가 머리구나' 하고 알아보겠어서 유진은 손을 뻗어 가만히 그 부분에 얹고 토닥이며 조용히 아이의 이름을 불렀다. 이불 속에서 움찔 하는 기척이 느껴지더니 희미하게 참았던 숨을 조용히 색색 내쉬는 소리가 들렸다. 혹시 그 사이 진짜 잠이 들어 버린 건가 했는데 그건 아닌 모양이었다. 


  "혜진이 배 안 고파? 아빠는 배고픈데. 아빠랑 샌드위치 먹을까?"

  "......"

  "아무것도 안먹고 자면 기운이 안 나요. 그러면 내일 춤추다가 쓰러질수도 있는데?"


  애나 어른이나 속이 허하면 마음이 풀리는 것도 더디기 마련. 일단 뭔가를 좀 먹이면 상황이 나아질까 싶어 조심스레 권해봤지만 잠시 동안의 침묵 뒤에 이어진 반응을 통해 유진은 본인이 지뢰를 제대로 밟았음을 직감했다. 이불 속에서 새액- 새액- 숨소리가 거칠어지더니 기어이 물기어린 훌쩍이는 소리가 이어졌던 것이다!! 아이가 우는 기척에 마음이 다급해진 유진은 더 이상 차분함을 가장할 수가 없었다. 정신없이 아이를 이불에 싸인 채로 품에 끌어안고 등을 토닥이며 연신 이름을 불렀다.  

   

  "혜진아...혜진아...우리 혜진이..뭐가 이렇게 속상했을까..? 응? 혜진아..."


  여느 아이들 같으면 '으아아아앙-'하고 시원하게 울음보를 터트릴만도 한데, 이 조그만 녀석은 엄마를 닮아 자그마한 등과 여린 어깨를 들썩이며 애처롭게 흐느끼는 것이 다였다. 품에 안긴 이불 뭉치가 작게 들썩이는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이 자그마한 녀석의 자그마한 속이 대체 무엇 때문에 이렇게 상했나 싶어 걱정을 넘어 슬슬 화가 치밀기 시작했다. 그래도 일단 원인이 뭔지 정확히 알아야 거기에 대고 화를 낼 수 있으니 아이의 울음을 달래어 말을 들어보는 것이 순서였다.







  "...ㅈ세요."

  "..응? 혜진이 뭐라고?"

  울음소리가 잦아들 때까지 한참동안 등에 이불뭉치를 업은 채로 어두운 방 안을 서성이던 유진은 조금 전에 들려온 목소리를 잘못 들은건가 싶어 조심스레 되물었다.

  "....."

  "혜진아?"

  "......"

  '역시 잘못들었구나' 하며 이미 족히 예순 바퀴는 더 돈 방 안을 한 바퀴 더 돌려고 한쪽 발을 떼는 찰나, 물기가 어려있지만 또렷한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렸다.


  "내려주세요. 물 마실꺼에요"

  "!!! 어, 그래. 그래 잠깐만. 아빠가 물 가져올게요."


  침대에 걸터앉아 고개를 돌려 어깨너머를 보니 열린 이불자락 사이로 빼꼼히 아이의 발갛게 부은 오똑한 코가 보였다. 조심스레 등에 들쳐업었던 이불 뭉치를 내려놓은 유진은 단숨에 주방으로 달려가 아이의 양손빨대컵에 정수기 물을 가득 받아 가져왔다. 침대 위에 양 무릎을 끌어안은 채로 앉아 여전히 이불 한자락을 머리 위에 뒤집어 쓰고 있던 아이는 자그마한 손을 내밀어 컵을 받더니 야무지게 빨대를 입에 물고선 물을 마셨다. 아이가 성에 찰 때까지 물을 꼴깍꼴깍 삼키고 컵을 내려놓자, 앞에 서있던 유진이 잽싸게 컵을 받아 침대 옆의 협탁위에 올려놓고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서 아이의 얼굴을 곁눈으로 슬쩍 올려다보았다.


  엄마를 닮아 말그레하니 하얀 얼굴과 동그란 두 눈이 지금은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 평소엔 차분하지만 아이 특유의 생기가 도는 표정인데 지금 그런 생기는 온데간데 없었다. 그래도 울고 나니 기분이 약간은 풀어졌는지 이불로 얼굴을 가리거나 하지 않고 슬며시 자기를 올려다보는 제 아빠의 눈길을 피하지 않고 말갛게 가만히 쳐다보고 있었다. 그 모습이 제 엄마를 쏙 빼닮아 있어서 유진은 순간 '혜준아'라고 이름을 잘못 부를 뻔했다.



  "...혜진아.."

  "....."

  "혜진아."

  "....네?"

  "아빠한테 이야기 좀 해줄래? 무슨 일 있었는지. 우리 혜진이 왜 울었는지."

  "........"

  "...혜진이가 아무 말도 안해주면 아빠 너무 걱정돼서 아야할거 같은데. 그러면 안되잖아. 내일 우리 혜진이 춤추는거 보러 가야하는데...!"



  !!!! 이거구나! 내일 행사를 입에 올리자마자 아이의 얼굴에 스쳐간 찰나의 울먹임이 결정적인 실마리를 던져주고 있었다. 여차하면 아이가 또 울지 몰라서 유진은 입을 다물고 가만히 기다렸다. 


  평소라면 그놈의 '결정적인 키워드'가 뭔지 알아내느라 혼자서 브레이크 댄스를 추며 밤새 백고개를 넘어야 했을텐데, 오늘은 벌써 이만큼의 수확을 얻었으니 절반의 성공이었다. 남은 숙제는 최대한 아이의 심기를 더 건드리지 않고(=울리지 않고) 사건의 퍼즐 조각을 얻어내어 맞추는 것이었다.


  "오지 마요. 내일."

  "!!!...."


  헌데, 아이의 입에서 흘러나온 조각은 그 내용이 전혀 범상치가 않았다. 유진은 충격을 받은 상태로 적당한 말을 찾으려다가 말문이 막혀 잠시 멈칫했다. 


  "......"

  "아....혜진이....아빠가 혜진이 보러 가는 거 싫어?"

 

  아이는 대답 대신 자그마한 머리를 도리도리 흔들었다. 그 단호한 기세에 뒤집어쓰고 있던 이불자락이 스르륵 등뒤로 미끄러져 아이의 머리가 전부 드러났다. 유진은 혼란스러운 머릿속과 섭섭한 가슴을 달래느라 원초적인 되물음 밖에 던질 수가 없었다.


  "그럼 왜 아빠가 가면 안돼?"

  "......엄마도..다 오지 마세요."

  "왜?"

  "엄마....바쁘니까." 


  다섯 살 딸아이의 애어른같은 핑계에 머리가 멍해진 유진은 정신을 차리고 해답을 찾아보려 애썼다. 뭔가 분명 촉이 서기는 섰다. 불길한 쪽으로. 필경 내일 행사 관련으로 오늘 어린이집에서 단단히 마음 상하거나 서러운 일이 있었을 것이다. 혜진이는 내일 어린이집에서 열리는 발표회에서 무대 위에 올라가 춤을 출 예정이었다. 종종 휴일에 집에서 연습하는 것을 보니 독무는 아니고 둘씩 짝을 지어 추는 그룹댄스인 모양이었는데, 무대 위에는 다섯 커플만 올라가고 자기가 그 중 제일 중앙에서 추게 되었다고 자랑스러운 얼굴로 말했던 것이다. 해서 일년 중 제일 바쁠 때지만 시간을 내어 엄마도 보러온다고 잔뜩 들떠 있었던 아이가 별안간 '바쁘니까 안 와도 돼요'라는 말을 한다는 건....이건..? 보통 일이 아닌건데?


  굳이 서러움을 감추고 '엄마 아빠 바쁘니까'라는 핑계를 대는 아이에게 어떻게 물어봐야 울리지 않고 정답을 확인할 수 있을지 감이 안 왔다. 엄마 아빠는 하나도 안 바쁜데? 우리 혜진이 보러 꼭 갈건데? 이따위는 정말 하수고.. 유진은 살면서 이 정도로 상대방의 속내를 자극하지 않고 짚어보려 애 쓴 적이 없었다. 도발해서 토해내게 하거나 혹은 빤히 드러나보이는 속내에 맞춰주거나. 그도 아니면 상대방 속내야 어쨌든 이쪽이 원하는대로 밀어붙이거나 하는 것이 대부분의 경우였다. 예외라곤 이혜준이 유일했는데..



  "아....그렇구나...우리 혜진이가 엄마 걱정돼서 그랬구나."

  "...네."


  언제 울었냐는 듯, 의젓한 얼굴로 속내를 숨기고 대답하는 다섯 살...고작 다섯 살(!!) 딸아이를 등 뒤에 두고, 바닥에 주저앉은 채로 유진은 저도 모르게 한숨을 푹 쉬었다.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건 내 능력 밖이다. 이 시점 이후로 아이를 울리지 않고 차분히 정답을 확인할 수 있는 사람은 아이 엄마, 혜준 뿐이었다. 유진은 혜준이 오늘 몇 시쯤에 퇴근할 수 있을까 가늠하는 동시에, 그 시간까지 아이의 기분을 상하지 않게, 대화가 가능한 상태로 깨워둘 수 있는 방법이 뭐가 있을지 열심히 고민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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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고 참..고작 다섯살짜리 애기가 입이 겁나 무거워서 힘드네..ㅠㅠ

아가야...니네 아빠는 말이야; 니네 엄마가 뭐 물어보면 있는거 없는거 내장까지 탈탈 털어서 불고 그랬는데 그런 거 좀 닮으면 안되겠니?


+

어우..자꾸 짧게 짧게 토끼똥 싸는 거 같아서 민망...ㅠㅠ 3으로 올리려다가 그냥 뒤에 붙여보았음.

스아실 별거 없는데 자꾸 늘어지는 것 같아서 OTL 하지만 이왕 시작한거 끝까지 가봐야지...

  • tory_1 2020.03.01 21:40
    뭐야...귀엽자나....
  • tory_2 2020.03.01 22:01

    으악 기여워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혜준이 닮았으면 너무 귀여울 듯 ㅜㅜ

  • tory_3 2020.03.01 22:05
    으앙 너무귀여웡 ㅠㅠㅠㅠㅠㅠ
  • tory_4 2020.03.01 22:22
    혜준이미니미구나ㅜㅜㅠㅜㅜㅜㅠ뭐가 속상했어ㅜㅜㅜㅜ
  • tory_5 2020.03.01 22:48
    흡 ㅜㅜ 너무 귀엽따 ㅜㅜㅜㅜㅠ
  • tory_6 2020.03.01 22:54

    이름도 혜진이라니....

  • tory_7 2020.03.01 23:21
    이름도 완벽해ㅠㅠ
  • tory_8 2020.03.02 00:08

    귀여워ㅠㅠㅠㅠㅠㅠㅠ

  • tory_9 2020.03.02 01:07
    맞아 니네 아빠는 돈도 털렸다구~
  • tory_10 2020.03.02 02:26
    혜진아ㅠㅠㅠㅠㅠ 뭐야 왜뭐가 그렇게 속상했어ㅠㅠㅠㅠㅠㅠㅠㅠ 아이구 우리 혜진이ㅠㅠㅠ
  • tory_7 2020.03.02 02:52
    혜진아 좋아하는 친구가 너랑 춤 안춘대? 너네 아빠 닮아서 짝사랑?
  • tory_11 2020.03.02 09:52
    리틀혜주니 왜 우러쪄ㅠㅠㅠㅠ 아 나야말로 애기 왜울었는지 궁금해미치겠다 ㅋㅋㅋㅋㅋㅋ
  • tory_12 2020.03.02 19:50
    귀여워서 심장아포 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
  • tory_13 2020.03.02 23:52
    귀여워 ㅠㅠㅠㅠㅠㅠㅠㅠㅠ
  • tory_14 2020.03.10 17:34
    아가도 유진이도 너모 귀여운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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