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이름 모를 선생님께


 선생님, 안녕하세요. 선생님께 편지를 보낸다면 어떤 고민도 해결된다고 하길래 제 고충을 써보려고 해요. 어떤 답장도 필요하지 않아요, 그냥 들어주시는 것만으로도 충분하거든요. 

 사람은 넘어지고 구르고 깨진다는 말은 맞는 것 같아요. 저만 유독 더한 것 같긴 하지만요. 그냥 발을 헛디뎌 넘어져 무릎이 까진 것마저도 저에겐 무릎이 부서진 것 같아요. 결국 남들보다 감정적으로 더 구르고 깨지는 셈이죠. 아무렇지 않은 일에 속을 썩이고 별것도 아닌 일에 예민하게 굴어요. 스스로마저 짜증날 정도로요. 그럼에도 결국 저는 어찌저찌 삶이란 숙명을 받아들여요. 도망가고 싶어하면서도 도망가지 않죠. 넘어지고 구르고 깨져도 저는 또 어찌저찌 살아가지만요. 물론 그게 제가 괜찮다는 건 아니에요. 그냥 남들이 하는 말대로 사는 게 맞기에 사는 걸지도 모르겠네요. 사실 살아야 하는 이유는 잘 모르겠거든요.

 제가 살아온 삶은 순탄치 않아요. 아니다, 순탄하던가? 적어도 돈은 있었으니 견딜 만하다 해둘게요. 저보다 상황이 안 좋은 사람들은 널리고 널렸어요. 그리고 저는 누구에게도 제가 살아온 삶을 보며 동정하길 원치 않아요. 선생님마저도요. 제가 그렇게 살아오긴 했고 그 상처들은 제 정신상태를 무너뜨리긴 했지만 그것마저 저인 걸로요. 선생님껜 알량한 자존심으로 보일 수도 있겠네요. 그래도 저는 그렇게라도 저 자신을 감싸고 싶어요. 그러니까 제가 여기서 얘기할 것은 제 현상태에 대한 거예요.

저는 현재 대학에 다니고 있는 중이에요. 제가 다니고 있는 학교는 제 맘에 썩 들지 않아요. 그래도 정신질환에 짓눌려 공부를 몇 년 동안 놓았으니 어쩌겠어요. 그 당시 가족들도 제 말은 들어주려 하지 않았죠. 그래도 전 늦게나마 학교에 들어갔고 지난 학기엔 장학금도 받았어요. 물론 이 지긋지긋한 정신질환과 싸우면서요. 그렇다고 제가 잘났다는 건 아니에요. 그냥 전 버티는 중인 거죠.

 최근엔 새로운 학문을 공부하고 있어요. 누가 추천해줘서 공부를 시작했는데 썩 마음에 들지 않네요. 너무 어려워서 수업 끝나면 항상 울 것 같거든요. 그래서 열 받아서 단 것도 막 사먹고 그래요. 그래도 해야지 어쩌겠어요. 제가 아는 분은 버티는 자가 이기는 거랬어요. 저도 그렇게 버틸 거예요.

  그러고 보니 제 편지엔 인간관계가 그다지 등장하지 않네요. 맞아요. 저는 친한 사람들이 별로 없거든요. 몇 있긴 하지만 그들을 믿지 못하겠어요. 저를 이용하려는 게 아닐까 걱정도 되고 저를 그다지 신경 써주지 않는 느낌에 혼자 상처를 받기도 해요. 제가 너무 예민한 건가봐요. 그리고 저는 어릴 때부터 사람들하고 그렇게 친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거기에 익숙해진 게 아닐까 싶기도 하네요. 그래도 버티는 자가 이기는 거라고 말하신 분은 나름 믿을 만해요. 하지만 그뿐이죠. 가족마저 저의 숨통을 가끔 조이게 만드는걸요.

 다시 돌아가서 가족은 제가 대학을 바꾸길 원해요. 그래요, 제가 창피한 거죠. 하하. 하지만 슬픈 건 저 자신도 그런 스스로를 부끄럽게 여겨요. 대학이라는, 너무도 남들이 정한 게 뻔한 가치에 휘둘리는 자신이 싫지만 어쩔 수 없어요. 차별의 대상자가 어릴 때부터 차별을 접하면 당연히 자기검열을 내재화하잖아요. 그런 거겠죠. 그래서 대학을 바꾸려고 공부도 할 생각이예요. 주어진 것만으로도 바쁜데 그럴 시간이 있으면 좋겠네요. 그리고 동기가 싫은 것도 있어요. 저만 소외되는 그런 느낌이 싫어서 빨리 도망치고 싶어요. 다시 한 번 말하자면 제가 너무 예민하게 구는 것뿐이에요. 한 가지 위안이 되는 점은 제가 성공만 한다면 가족들에게서 도망칠 수 있다는 점이겠죠. 제가 공부하려는 가장 결정적인 이유기도 하구요. 그래도 그런 날이 올 수 있을까 의심이 들기도 해요.  

 어제는 영화를 보러 갔어요. 좋아하는 영화가 마지막으로 걸리는 날이었거든요. 그 날 하루가 미치도록 우울해서 영화를 보면서 기분을 전환하고 싶었어요. 그러나 옆 사람 때문에 결국 영화엔 집중할 수 없었죠. 덕분에 더 우울해져 집으로 가는 길엔 정말 죽고 싶었어요. 너무도 힘들었거든요.

 제 이야기를 들어주셔서 고마워요. 선생님.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선생님께 조언을 구하려고 한 건 아니었어요. 그냥 누군가에게 제 힘든 걸 털어놓고 싶었거든요. 요새 감기가 유행하던데 조심하세요. 저도 덕분에 일주일 넘게 집에 오면 바로 쓰러져 잠들거든요. 부디 선생님은 저보다도 행복하셨으면 좋겠어요. 그럼 안녕히 계세요. 


-넘어지고 구르고 깨지는 사람 올림

  • tory_1 2018.03.16 01:03

    넌 나중에 꼭 빛을 볼 수 있을거야 이렇게나 이쁜 사람인걸

  • W 2018.03.16 01:24

    토리야 답장 고마워! 이쁜 건 모르겠지만... 그래도 좋은 말 들으니까 기분이 좀 나아지네ㅠㅠ 고마워ㅠㅠㅠㅠ 읽어줘서도 고마워!

  • tory_3 2018.03.16 04:32
    스스로를 부끄럽게 여긴다는 말이 참 마음이 아프네.. 나도 지금 그렇거든ㅎㅎ 그래도 토리는 잘 버티고 있는 것 같아! 스스로가 생각하는 것 보다 우리는 더 나은 사람일 수도 있잖아. 그리고 그렇게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잖아ㅎㅎ 좀만 더 버티자! 힘내~
  • W 2018.03.16 20:05

    토리도 그렇구나...ㅠㅠㅠ 잘 버티고 있다니 고마워ㅠㅠㅠ 맞아 우린 우리 생각보다 훨씬 나은 사람이고 또 노력하고 있어ㅠㅠㅠ 우리도 좀만 더 하면 되니까ㅠㅠㅠ 톨이도 힘내자!!! 읽어줘서 고마워ㅠㅠ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날짜 조회
전체 【영화이벤트】 라이언 고슬링 X 에밀리 블런트 🎬 <스턴트맨> 대한민국 최초 시사회 48 2024.03.27 1422
전체 【영화이벤트】 “드림웍스 레전드 시리즈!” 🎬 <쿵푸팬더4> 시사회 65 2024.03.26 1111
전체 【영화이벤트】 웰 컴 투 세포 마을 🎬 <유미의 세포들 더 무비> 시사회 52 2024.03.21 4807
전체 【영화이벤트】 4.3 특별시사회 🎬 <돌들이 말할 때까지> 시사회 11 2024.03.20 4346
전체 디미토리 전체 이용규칙 2021.04.26 556273
공지 창작방 공지 29 2017.12.15 14072
모든 공지 확인하기()
1167 만화 [BL]애정(愛情)전선 2화 05:15 21
1166 그림 수채화식으로 그려본것. 3 2024.03.23 105
1165 그림 동물 캐릭터 연필 드로잉 8 2024.03.16 162
1164 만화 [BL] 애정전선 7 2024.03.15 117
1163 만화 흑단나무성-베개 6 2024.02.28 148
1162 만화 흑단나무성-차가운 손 4 2024.02.18 140
1161 만화 흑단나무성-탈주매애 8 2024.02.17 124
1160 만화 흑단나무성-친구 2 2024.02.14 136
1159 그림 플레이브 팬아트 3 2024.02.12 245
1158 그림 2024 새복많이 받아라!~ 6 2024.02.09 209
1157 소설 [열시십오분/BL][센티넬버스] 윤지호 가이드입니다 完 1 2024.01.31 100
1156 소설 [열시십오분/BL][센티넬버스] 윤지호 가이드입니다 24 2024.01.30 62
1155 그림 프린세스메이커Q 카렌 6 2024.01.25 329
1154 소설 [열시십오분/BL][센티넬버스] 윤지호 가이드입니다 23 2024.01.24 44
1153 소설 흑단나무성 3 4 5 2024.01.21 72
1152 소설 [열시십오분/BL][센티넬버스] 윤지호 가이드입니다 22 2024.01.17 55
1151 소설 흑단나무성 1 2 2 2024.01.16 101
1150 그림 뉴진스 민지 7 2024.01.14 398
1149 소설 [열시십오분/BL][센티넬버스] 윤지호 가이드입니다 21 2024.01.10 63
1148 그림 그림 좀 봐줄래?어떤지 학원을 다녀야 할지... 4 2024.01.09 427
목록  BEST 인기글
Board Pagination 1 2 3 4 5 6 7 8 9 10 ... 59
/ 59

Copyright ⓒ 2017 - dmitory.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