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토 히나 (배우 김민정)
조선 이름 ‘이양화’에 먹물이 마르기도 전에 친일파 아버지의 남다른 혜안(?)으로 일찍이 결혼해 ‘사토 히나’가 되었다.
그녀의 어머닌 딸의 혼인을 볼 수 조차 없었다. 조강지처였으나 조선인이란 이유로 아버지에게 내쳐졌기 때문이었다.
팔아치울 수 있는 게 있다면 제 딸이든 나라든 다 팔아치우는 아버지를 둔 덕에,
팔리기 전에 자신을 팔아야 했고, 치워지기 전에 자신을 세워야했던 여자다.
아버지가 일본인인 늙은 거부에게 히나를 시집보냈을 때 히나는 울기보다 물기를 택했다. 약한곳을 노리고, 물고, 쓰러뜨렸다.
히나의 기도가 먹혔는지, 늙은 남편은 혼인 2년 만에 저 세상으로 갔고 히나는 생기 없던 청춘을 보상받듯 막대한 유산을 상속 받았다.
바로 호텔 ‘글로리’였다. 호텔을 상속 받자 제일 기뻐한 이는 아버지 이완익이었다.
히나는 아버지의 속이 뻔히 보였고 호텔을 뺏기지 않기 위해 고집스레 남편의 성을 썼다.
한성 바닥에서 젊고 아름다운 미망인은 호텔을 찾는 이들에게 또 하나의 유흥거리였다.
모던보이, 댄디보이, 룸펜, 조선의 보이란 보이들은 죄다 호텔‘글로리’로 몰려들었고 히나는 연일 최고 매출액을 경신했다.
히나는 나라님도 부럽지 않았다. 조선의 모든 권력은 사내들에게 있었으나 그 사내들은 언제나 호텔 ‘글로리’에 있었으니까.
히나는 매일 밤 제국주의자들의 세치 혀에 처참히 찢기는 조선을 웃으며 지켜보았다. 조선도 울기보단 물기를 택해야 할 텐데 안타까웠다.
언제나 두 번째의 삶이었다.
두 번째 이름이 진짜 이름이 됐고, 두 번째 나라가 진짜 나라가 되었으며,
이제 저 두 번째 남자만 자신의 남자가 되면 완벽한 삶이었다.
그 남잔 다름 아닌 유진이었다. 헌데 저 남자, 딴 여자를 보고 있다. 사대부댁 애기씨랬다.
김희성 (배우 변요한)
빛날 희, 별 성. 사람은 이름 따라간다고 희성은 어디에서나 눈에 띄었다.
다정하고 재밌고 돈 많고 잘생기기까지 했으니 늘 목하 열애중이다. 자칭 박애주의자 타칭 바람둥이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고들 하지만 희성의 경우는 반대였다. 윗물이 워낙 더러웠다.
고약하기로 소문난 조부와 비겁하기로 소문난 아버지를 둔 덕에 열정 없이 사는 ‘시시한 놈’으로 살고 있는 중이다.
제 핏속에 흐르는 피가 무서웠다. 힘이 생기면 잘못 휘두를지도 모르니까.
어머니의 성화에 못 이겨 십년 유학생활을 청산하고 혼인을 하러 조선으로 들어온다.
혼인을 미룬 것도 포악했던 제 조부가 정해준 여자니 아련할까 싶어서였다.
헌데, 저 빛나는 여인이.. 내 정혼자라고?
희성은 일본에서의 십년이 후회되었다. 너무 늦게 왔다.
이미 그녀의 마음속에 자신이 들어갈 자리는 없어보였다.
그녀 속의 조선을 몰아낼 수도, 저 이방인 사내를 몰아낼 수도 없었다.
희성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애신과 약조된 혼인을 늦춰 주는 것.
허나 절대 혼인하지 않겠다는 아이러니한 약조를 하는 것.
그런 슬픈 것일 뿐일 줄이야.
구동매 (배우 유연석)
태어나보니 백정의 아들이었다.
백정은 사람이 아니었다. 백정의 딸과 아내는 보란 듯이 욕보여졌고 백정의 사내들은 칼을 들었으나 아무도 벨 수 없으니 날마다 치욕이었다.
마주치면 기겁했고 빗겨 가면 침을 뱉었다. 막무가내의 매질이 외려 덜 아팠다. 소나 돼지만도 못한 존재, 그게 동매였다.
소, 돼지로는 살 수 없어 각설이패를 쫓아 부락을 나왔다. 춘궁기는 길었고 형들의 매질은 모질었다.
양반의 횡포보다 천민이 천민에게 부리는 행패가 더 잔인했다. 조선 바닥 어디에도 백정의 아들 동매에게 더 나은 세상은 없었다.
동매는 스스로 조선을 버렸다. 아니, 조선은 처음부터 동매를 가져 본 적도 없었다.
일본으로 건너간 동매는 흑룡회 간부의 눈에 들었다. 열 살부터 칼을 잡았던 동매였다. 동매의 칼은 급소만 노렸고 깔끔하고 신속했다.
동매의 나라는 조선도 일본도 아닌 흑룡회였다. 흑룡회의 이익과 흑룡회의 번영을 위해서만 동매는 움직였다.
동매는 짐승을 잡는 짐승 같은 놈으로 제 앞을 막는 모든 것들을 찢어발기고 집어 삼켰다.
흑룡회는 동매에게 새로운 이름을 내렸고 그건 아비가 자식에게 하는 일이었다.
그날부터 동매의 마음속에 흑룡회는 아버지였다. 흑룡회는 조선으로 세력 확장을 꾀했고 동매는 그 선봉에 섰다.
동매가 조선에 돌아 온 이유는 딱 하나였다. 유일하게 자신을 응시해주던 한 여자의 눈동자.
그녀의 눈빛엔 경멸도 멸시도, 하물며 두려움조차 없었다.
바로, 조선 최고 사대부댁 애기씨, 애신이었다.
사람구실을 하면 할수록 고애신, 그 이름 하나만 간절해졌다.
그러면 안 되는데, 세상 모두가 적이어도 상관없겠다 싶어진다.
그런 애신 앞에 자꾸 알짱거리는 미국놈이란 사내가 심히 거슬린다.
꼭 새치기 당한 기분이었다. 가진 적도 없는데.
오직 애신을 사랑해서, 사랑에 미친, 사랑해서 미친, 동매는 그런 사내다.
근데 왜 남주가..... ㅠㅠㅠ